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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빈치 코드에 현혹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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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4월호>

누가 다빈치 코드에 현혹되는가?


요즘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다빈치 코드>라는 책에 대해서, 그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 해도 그 명성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연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책은 일종의 스릴러물류의 소설이다. 최근까지 2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는 가늠하고도 남는다. 이 책의 지은이는 댄 브라운이라는 미국인인데, 그는 역사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캐내는 방식으로, 그것도 사람들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인 종교를 도구로 삼아 추리적인 글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필자는 굳이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잠깐 그 내용을 언급한다면, 남녀 두 주인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 예를 들면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들에 숨겨진 암호(code)를 해독해 나가면서 성배(聖杯)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역사적으로 숨겨 놓은 사실들을 비밀 결사 단체들의 해석에 따라 밝히는데,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느니, 그리스도는 마리아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했는데 베드로가 가로챘다느니, 그래서 마리아는 프랑스 땅으로 도망쳤고,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 후손은 또 프랑스 귀족이 되었고... 대략 이런 내용들이다.
보다시피 이 책은 거듭나지 않은 소설가가 성경 내용을 곡해해서 쓴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학교를 나오고 베스트셀러 작가라 하더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성경을 알 수 없는데, 그는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성경을 마구 난도질해 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소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 역시 거듭나지 않은 자들로서 쭉정이에 불과하며, 믿음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독당하시는 것이 분명하며, 또 이것은 이 마지막 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소설을 통해 현혹되는가? 앞에 제시한 말도 안되는 내용들에 왜 속아 넘어가는가?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가?
첫째, 저자는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가 아니냐고 제쳐놓을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 두 비밀 단체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서문에서부터 못박아 놓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 역사에서 많이 감추어졌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여기에 저자의 추리력을 동원하여 다빈치의 작품을 암호화, 해독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 비밀 단체들이나 다빈치의 역할에 대해 신뢰하게 된다. 이때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그리고 그 내용은 고대의 여러 문헌들, 특히 사도들의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교회가 의도적으로 감추고 정경에서 제외시켜 버렸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 같은 거짓말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의 전개 방식만 소설(허구)이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저자의 소설 전개는 전적으로 중세 신비 종교의 방식에 따른다. 신비 종교라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는 종교이다. 예를 들면 신비스런 문양이나 상징들을 통해 영적 상태로 들어간다든지, 그런 것들을 숭배하기도 한다. 오각형 별()이나, 육각형 별(), 혹은 피라미드 모양 등을 통해 신비적 의식을 취하는 것은 그런 것들 중 한 예이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상징이기 때문에 문자도 암호로 전달된다. 일반적인 단어도 그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의 조합을 달리함으로써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들로 신비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들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였는데, 이것은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 그룹인 카발림파들이 사용했던 바로 그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해석을 “아나그램”(anagram)이라 하는데, 예를 들면 “모나리자”(The Mona Lisa)를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라고 바꿔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경우는 같은 알파벳들을 가지고 서로 다른 조합을 하였다.) 이 책이 “다빈치 코드”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호”(code)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빈치의 작품들의 많은 것들을, 그리고 성경의 여러 사건들을 이와 비슷한 암호로 풀어 나간다. 그 안에서 음모와 비밀들을 발견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을 신비주의 안으로 끌어들인다. 오늘날 신비주의는 뉴에이지 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결국에는 마귀 숭배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이다.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비주의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마법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얼마 전 유행했던 “해리 포터” 같은 책들은 직접적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이 역시 신비주의적인 사상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는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을 신비주의로 전락시켜 성경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독자들에게 신비주의를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결국에는 마귀 숭배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셋째, 이 책의 저자가, 아니 이 책 뒤에 있는 마귀가 바라는 궁극적인 것은 기독교 신앙의 파괴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신비주의적 요소와도 관련되어 있는데, 신비주의를 채택하려면 성경만 갖고는 안 되며 반드시 전통이나 신화적 요소가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겨냥한 표면적인 대상은 로마카톨릭이다. 무대 배경도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이며, 등장하는 비밀 단체들도 수도원들이고, 성배 역시 카톨릭에서 숭상하던 성물이다. 특히 성배는 중세 카톨릭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서, 바로 이것이 저자가 신비주의적 요소를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인데, 그래서 저자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카톨릭만한 종교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성경 자체를 불신하게 만드는데, 베드로 복음서나 마리아 복음서 같은 위작들을 성경보다 더 권위있게 취급하며, 심지어 그런 책들이 진실이고 성경이 거짓이라고 말해 버린다. 결국 독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거짓 위에 세워진, 완벽한 사기극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예수님은 완전한 “페미니스트”(여성우월주의자)였다.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제일 사랑하셔서 그녀와 결혼했으며, 그녀 위에 교회를 세우려 하셨는데, 남성우월주의자인 베드로가 방해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패배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남신(男神)들로 이루어진 현대의 종교들에 여신(女神)들을 되돌려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떤 여신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늘의 여왕, 바빌론 신비 종교의 여신 세미라미스를 말하는가? 사탄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빈치 코드와 로마카톨릭은 서로 통한다. 사실 카톨릭은 이 책 때문에 갈등할 것도 없다. 원래 그들이 믿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런 거짓말에 속는가? 당연히 거듭나지 않고 진리에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속는다. 그들은 그럴듯한 언변으로 성경과 그리스도를 깎아 내릴 때,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곧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편에 선다.
이러한 사람들은 늘 새로운 이론들(행 17:19)과 꾸며낸 이야기들(딤후 4:4)을 쫓아다니기 마련이다. 사탄은 그들의 간지러운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능한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신비적인 이야기들, 전설, 마법, 용과 마귀, 또 그들과 싸우는 영웅들, 그리고 거기에다 종교나 명상의 요소까지 갖추게 되면 이야기의 흥미는 극에 달한다. 이것이 바로 뉴에이지 사상의 표현들인데, 사탄이 사람들의 혼을 사로잡기에 가장 적절한 내용들이다.

오늘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이다. 마귀가 그 마지막 때를 알고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간악하고 치밀하게 하나님을 대적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는 그 대적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탄이 제공해 주는 이와 같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붙잡는다. 속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리고 건전한 교리로 양육받는 것이다(딤후 4:2,3).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 가운데 숨겨 있지 않다. 몇 해 전 한 유대인이 <바이블 코드>라는 책을 써서, 성경 안에 숨겨져 있는 “암호”(code)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 바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암호로써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쉬운 언어로 우리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 주셨다. 암호란 자기들의 사상을 박해하는 누군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혹은 비밀 집단의 신비적인 메시지를 간직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왜 그런 암호를 그분의 말씀 가운데 집어넣으셨겠는가? 성경은 누구라도 기록된 그대로 읽고 믿으면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감추시는 분이 아니라 밝히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반면
사탄은 어둠의 세력의 왕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추고 암호화시킨다. 따라서 <다빈치 코드>는 철저하게 사탄적인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는 어떤 유익도 얻을 수 없으며, 이와 같은 부류의 모든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종류의 책들을 통해 혼란스러워한다면, 그에게 영적 전쟁의 실체를 가르치라. 마귀의 존재와 그의 활동에 대해 분명한 성경 말씀들로 가르쳐 주라. 마귀는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말이다. 군사로 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굳게 서라(고전 16:13). 진리의 허리띠를 두르고 무장하라(엡 6:13-18).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약 4:7). 그러면 마귀의 속임수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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