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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일곱 신비들”은 신비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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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3월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에게는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하나님을 찾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영생에 대한 희구가 어떤 알지 못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잘못 표출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했던 말은 그러한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잘 알려 주고 있다. 『지나다니다가 너희가 섬기는 대상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놓은 제단도 있었노라』(행 17:23).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들락거리던 아테네 시장터에는 아테네인들은 물론 타국인들까지 모여들어 어떤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듣는 데 모든 여가를 쓰고 있었다(행 17:16-21). 그들의 광기에 대한 바울의 판단은 그들이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까지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비주의가 반영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신비주의"는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과 유대교의 카발라, 불교의 밀교(密敎), 이슬람교의 수피즘, 힌두교의 요가, 기독교의 "은사주의" 같은 종교 영역뿐 아니라 철학과 문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성경도 신비주의를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신비주의가 아닌 "신비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신비들은 신비주의처럼 감추어지고 비밀스런 어떤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계시된 것들로서,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믿고" 증거해야 할 성경의 핵심 진리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1,2). 이 『하나님의 신비들』은 "일곱 신비들"로 불리는데, 이 신비들을 설명할 줄 알아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일꾼은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이므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곱 신비들을 오류 없이 정확히 가르칠 때 그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
일곱 신비들 중 첫 번째는 디모데전서 3:16의 "경건의 신비"이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신약의 위대한 구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고 말씀할 뿐 아니라, 이 신비가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일을 온전하게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아기부터 성인까지 인간으로 사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경건의 신비"인 것이다. 이 신비는 논쟁거리가 아니라 다만 믿어야 할 진리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신비를 부인하는 자는 다름 아닌 적그리스도이다(요일 4:3; 2:22).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시기에 『영원하신 아버지』(사 9:6)로도 불리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요일 2:22)의 이 신비적인 관계를 읽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게 된다.
두 번째 신비는 골로새서 1:27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 이것은 죄로 인해 죽어 가는 우리의 육신 안에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더러운 죄의 몸 안에 사신다는 것은 결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죄와 반역, 고집, 정욕, 탐심이 가득한 옛 사람이 있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 옛 사람과 동거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광의 소망』을 소유한 것이며, 이 죄의 몸이 죽고 썩어도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세 번째 신비는 에베소서 5:31,32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이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서 한 몸이 될지니라.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 남녀가 부부로 결합했을 때 그 "두 사람"은 "한 몸"이 된다. 바울은 이 신비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몸 됨을 『위대한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과 "수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몸"이 되는 진리를 인간의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은 거듭남과 동시에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지는데(고전 12:13),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그리스도를 『한 남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한 순결한 처녀』로 제시할 뿐 아니라(고후 11:2), 그 한 남편과 한 순결한 처녀의 결합을 "한 몸"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으니,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 신비 중의 신비인 것이다.
네 번째 신비는 로마서 11:25,26의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복음의 원수"임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롬 11:28).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이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결별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1,900여 년 동안이나 나라도 없이 전 세계를 유랑하면서, 특히 히틀러에 의해 6백만 명이나 살해당했지만 1948년에 극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왔다. 이제 곧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 불리는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그 수는 극소수로 줄어들 터인데, 그 "남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해 내셔서 주님께로 회심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천대받던 민족이 민족들의 머리가 되어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중동의 천덕꾸러기"가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다섯 번째 신비는 요한계시록 17:5의 "큰 바빌론의 신비"이다.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 큰 바빌론이라 일컬어지는 "창녀"는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18절)이라 불리며, 『자주색과 주홍색 옷... 금과 보석과 진주... 손에는 금잔』(4절)으로 상징되는 "성모" 교회, 곧 로마카톨릭이다. 지리적으로는 "일곱 산 위에 앉은" 것으로 묘사되므로(9절)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이다. 그들은 "암흑시대"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6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이 신비는 여지없이 로마카톨릭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이 창녀가 탄 주홍빛 짐승을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3절), 이 짐승은(적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2:3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커다란 붉은 용"(사탄)과 관련이 있다. 계시록의 창녀는 님롯의 "바빌론 종교"가 로마 제국으로 숨어들어 로마카톨릭으로 신비롭게 부활한 존재다. 그렇기에 『큰 바빌론』이라 불리는 것이며, 또한 그 창녀의 이름을 『신비』라고 지은 것이다.
여섯 번째 신비는 데살로니가후서 2:7의 "불법의 신비"로서, 위의 큰 바빌론의 신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이 신비는 『큰 바빌론』의 수장으로 등장할 적그리스도에 관한 신비이기 때문이다.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현재는 막는 자가 있어 막을 것이나 그가 그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만 그리하리라.』 적그리스도는 그의 불법을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 뿌려 놓았다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는 신비의 인물이며,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많이 논의되는 인물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으로 나타나셨듯이, 사탄도 이를 흉내 내어 적그리스도로 육화될 것이다. 이 역시 신비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의 저서 <짐승의 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신비는 고린도전서 15:51,52의 "휴거의 신비"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지상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한날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이곳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신비이다. 이들뿐 아니라 그들보다 앞서서 주 안에서 잠든 성도들도 썩지 않는 몸을 입고 무덤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다. 지상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은 채 동일한 몸을 입고서 뒤따라 올라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입은 그들은 죽지 않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된다(살전 4:14-17).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바, 사망도, 음부도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고전 15:54,55) 신비인 것이다.
성경의 신비들은 감춰지지 않았다. 모두 계시된 것들이며, 다만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 존재이시지만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위의 일곱 신비들은 인류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핵심 진리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