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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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가 울며 통탄할 ‘감리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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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2월호>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웨슬리의 영성을 이어가기 위한 감리교 수도원, 즉 ‘메도디스트 수도원’을 건립한다고 <뉴스미션>이 보도했다. 뉴스에 따르면 기감이 발간한 ‘감리교회 성숙과 부흥을 위한 백서’에 교회의 세속화로 인한 도덕적 권위의 상실, 교회 자신의 각성과 청빈의 영성 회복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웨슬리 영성을 실천하는 훈련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메도디스트 수도원’의 필요성이 제시되어 있고, ‘수도회’가 감리교회의 신앙과 전통 속에 존재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뉴스는 백서가 기도, 자기성찰, 성경탐구, 공중예배, 성만찬, 성도의 교제 등 영성수련의 심화를 위해 수도공동체가 필요함을 언급하면서, 기존 시설의 활용방안 모색과 더불어 수도원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과 같은 구체적인 설립 방안까지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감리교회 하면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를 떠올린다. 영국 국교회 사제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와 어머니 수잔나 사이에 15번째 자녀로 출생한 그는 1728년 영국 국교회 사제로 안수를 받았다. 1729년 동생 찰스 웨슬리가 옥스퍼드대학에 창립한 ‘거룩한 클럽’(Holy Club)의 지도자가 되어 모임을 이끌었으며, 주 1회 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금식을 하는 등 매우 규칙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형식을 갖춘 규칙적인 활동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형식주의자’ 또는 ‘규칙주의자’(Methodist)라 불렀고, 여기서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되었다.
영국 국교회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신학과 교리에 카톨릭의 의식과 체제의 옷을 입힌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교회이다. 일명 성공회라고도 하는 이것은 웨슬리 당시 카톨릭적 성향의 교인들과 프로테스탄트적 성향의 교인들로 양분되었는데, 결국 카톨릭적 성향이 우세하여 프로테스탄트적 성향의 교인들이 추방되거나 스스로 분리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요한 웨슬리와 함께 추방되거나 분리된 이들이 모여 감리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의 신학과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된 감리교회는 카톨릭의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며 타락해가는 성공회와 함께할 수 없다는 신앙적 판단에서 분리한 모임이었다.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 동지들과 규칙적인 모임을 갖고 말씀과 기도에 힘을 썼으며, 그의 신앙노선은 지극히 반카톨릭적, 반성공회적이었다. 수도원 제도는 이교도 로마카톨릭을 비롯해서 그들의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성공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배교한 기독교계 중 일부가 카톨릭의 교회성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수도원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한 웨슬리는 성공회의 친카톨릭적 타락에 반기를 들고 나온 대표적 인물인데, ‘수도회’가 감리교회의 신앙과 전통 속에 존재한다는 모순된 표현으로 카톨릭·성공회의 이교도적 수도원 전통을 웨슬리의 신앙 노선과 결부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카톨릭의 7성사(세례,견진,성체,성품,혼배,병자,고백)를 그대로 답습하는 성공회와 결별한 웨슬리의 신앙 행보는 성공회로부터의 철저한 성별이었다.
요한 웨슬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는데, 첫째는 ‘나의 교구는 전 세계요, 세계는 나의 일터이다.’이고, 둘째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단 한 사람만 남아 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땅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이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장장 50년 동안 말을 타고 다니면서 순회설교하였다. 거리로 치자면 지구 10바퀴가 넘는 거리였고,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셈인데,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려 주고, 입에 과자부스러기 넣어 주는 카톨릭·성공회의 사제들은 엄두도 못 내고 꿈도 못 꿀 사역을 한 것이다. 이처럼 역동적인 순회설교자였던 요한 웨슬리에게서 비롯된 감리교회의 신앙과 전통 속에 수도회가 존재했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된 논리인 것은, 보다시피 웨슬리의 삶과 신앙은 수도회적 수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웨슬리 형제의 ‘거룩한 클럽’의 규칙적인 모임을 감리교의 ‘수도회’적 기원으로 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데, 만일 그러하다면 그것은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으니, 성공회의 카톨릭적 성향에 반대한 그들이 수도회적 모임을 가졌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개신교계에 이교도들의 수도원 운동을 벌이려는 이와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요한 웨슬리의 명언이 있으니 들어보도록 하자.
“로마 교황권이 바로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이다.” 1)
요한 웨슬리는 이교도 로마 교황권을 죄의 사람(살후 2:3), 곧 적그리스도로 보았고, 그 사실을 강조했다. 이런 그가 수도회라는 카톨릭·성공회의 이교도 전통을 실행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요한 웨슬리를 자랑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살아 있다면, 과거 성공회로부터의 성별을 오늘날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상대로 벌였을 것이다.
성경은 과거로의 퇴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2). 감리교를 비롯한 오늘날 개신교계에서는 외형적 성장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수도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마틴 루터도 카톨릭에서 나왔고, 요한 웨슬리도 성공회에서 분리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가지고 나와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그들은 단순한 ‘일탈’과 성경적 ‘성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틴 루터와 요한 웨슬리를 한때의 비행으로 정상을 일탈한 사람들 정도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계를 다시 품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로마카톨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카톨릭·성공회처럼 교회가 아닌 곳들을 흉내내어 부패한 현실을 타개해 보고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씻고 나서 진창 속에 뒹구는 격이며, 퍼냈던 오물을 다시 담아 들여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수도원 운동은 이미 개신교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많은 교회들이 도미노 조각들처럼 쓰러져 가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카톨릭·성공회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지 말고(계 17:2) 요한 웨슬리처럼 성별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믿는 자가 따라야 할 성경적 원칙이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기도와자기성찰, 성경탐구, 공중예배, 주의 만찬, 성도의 교제는 성도의 기본 의무이지 결코 육신적인 “수련”의 대상이 아니다. 언제부터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그와 같은 일들을 “수련”한다며 수도원으로 들어갔던가? 성경이 그 일을 명하고 있는가? 성경은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살전 5:22)고 말씀한다. 세속화의 반대는 이교도의 수도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올바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올바로 나누어(딤후 2:15) 거기에 기록된 것을 믿고 신약 교회에 명하시는 것들을 그대로 실행하면 올바른 신약 교회의 믿음과 실행을 세워 나갈 수 있게 되고, 교회의 세속화를 치유하고 또 막을 수 있게 된다. 길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지만, 그들은 손에 닿는 해결책을 찾지 않고서 스스로 이교도화되려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BB
주석)-----------------
1) John Wesley, “Antichrist and His Ten Kingdoms,” p.110, [200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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