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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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재림을 소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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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2월호>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집필한 <전쟁과 평화>는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은 러시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류 역사의 한 단편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 톨스토이는 작품 줄거리를 통해 전쟁과 평화로운 삶을 번갈아서 보여 주는데, 그는 이것을 책 제목 <전쟁과 평화>에서 암시한다.

"전쟁"과 "평화"는 인류 역사를 간편하게 정의한다.

역사는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이원적 구조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그친 뒤에 오는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는데, 이는 전쟁이 그치고 찾아든 평화는 또 다른 전쟁으로 다시 깨어지기 때문이다. 뱀과 여자의 씨 사이에 전쟁이 선포된 창세기 3:15 이후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라는 정의가 가능해졌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끼어 있는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라 전쟁으로부터의 "휴식"일 뿐이다. 인간은 다시 일어나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숨을 쉬는 한 전쟁은 계속된다. 옛 프러시아 속담대로 "비가 오면 전쟁은 체육관에서 일어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항구적인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UN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UN으로 인해 "평화"를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UN 평화유지군). "평화를 위한 인간의 마지막이자 최선의 희망"으로서 UN이 1945년 설립된 이래로 전쟁은 177차례 이상 있어 왔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지구 변두리로 옮겨갔다. 인도차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걸프전, 시리아ㆍ이라크ㆍ보스니아ㆍ우크라이나 내전들,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들에 이는 걷잡을 수 없는 내전들, 이슬람과 북한의 테러, IS의 정복 전쟁 등 인류는 각종 지역 분쟁과 테러, 내전의 역사를 쓰고 있다.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하신 것이 된다. 교회 시대와 대환란과 관련된 세상 끝의 표적으로서(마 24:3) 주님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것이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24:6,7).

특히 오늘날은 핵무기가 국제 관계의 핵심적 화두이다. 핵무기가 없어지면 인류에 평화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인류는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협상과 북핵을 둘러싼 6자회담,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의 끝에 평화가 있을 것 같지만,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죄성을 지닌 인간은 동료 인간에게 평화(peace)를 가져올 수 없다. 악인에게는 화평(peace)이 없기 때문이다(사 48:22). 성경에 따르면 평화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속칭 "평화주의자들"(Pacifists)은 성경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를 근거로 세계 평화를 호소한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악에 저항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도 돌려 대라』(마 5:39).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천대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그들은 이것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산상설교는 앞으로 주님께서 가져오실 천년왕국의 헌법이며, 그것은 주님께서 UN의 2억 명의 군대를 괴멸시키시고 천년왕국의 화평을 이루신 상황에서 지켜야 할 말씀이기에 현대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로마서 12:17-21 역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인용된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정직한 일을 도모하라. 가능한 한 너희 편에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만일 그가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 이렇게 함으로써 네가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을 것이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보다시피 이 말씀은 『너희』 곧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것이며, 박해와 고난이 닥칠 때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 드리라는 내용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결코 전쟁 금지 구절이 될 수 없다. 적국이 미사일을 날려 자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면,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선으로 악을 이기려는가? "오른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도 돌려 대라." 하셨으니 다른 곳에도 미사일을 날려 달라고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평화는 절대적으로 "예루살렘"과 관계가 있다. 예루살렘은 "화평의 도성"을 뜻한다. 그것이 성경에 최초로 등장할 때에는 『살렘』(창 14:18), 곧 "화평"으로 불린다. 『아브람이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후,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에서 그를 맞이하러 나왔으며, 살렘 왕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7,18). "화평의 도성" 예루살렘은 성경에 최초로 기록된 "전쟁" 문맥에서 등장한다(창 14:2). "살렘"이던 것이 『예루살렘』(수 10:1)이라는 완전한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역시 "전쟁"과 관련 있다(수 10:1-4).

그럼에도 예루살렘이 "화평의 도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화평의 통치자』(사 9:6)께서 마침내 "땅 위에 화평"(눅 2:14)을 가져오실 때 바로 그 『위대한 왕의 도성』(마 5:35)에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조금 있으면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내가 또 한 번 흔들 것이요, 또 내가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리니 모든 민족들의 열망이 이르리라. 그러면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우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 나중 집의 영광이 먼저 집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곳에 내가 화평을 주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6-9). 학개의 이 구절들은 『모든 민족들의 열망』인 "평화"를 다루고 있다. 이 평화의 도래는 『은』이나 『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주』께서 가져오실 때에만 가능하다. 『만군의 주』께서는 모든 민족들의 열망인 평화를 주시되 천년왕국 성전이 세워질 예루살렘에 먼저 주실 것이다. 참된 평화는 재림 때 "예루살렘"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평화를 위한 인류의 모든 노력은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평화"가 이르기 전, 모든 민족들이 "진동하는" 일이 선행된다는 점에 주목하라. 『또 내가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리니 모든 민족들의 열망이 이르리라. 그러면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우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7). 즉 성경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는 평화 전에 모든 민족들이 진동하는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주님은 "전사"이시다(출 15:3). 그분께서는 193개 UN 회원국들을 "흔들어 버리신" 뒤 그들이 바라던 평화를 주실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2억 명의 UN 군대와 치르시는 아마겟돈 전쟁 이후 이뤄진다. 그때가 되면 『그들이 자기 칼들을 두들겨서 보습을 만들며, 자기 창들을 두들겨서 낫을 만들 것이요,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어올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사 2:4)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시 122:6). 학개 2장에 따르면 이 말씀은 『만군의 주』께서 예루살렘에 가져오실 화평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된다.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재림을 소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화해를 위해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고후 5:20)이지 세상의 화평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그곳의 화평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가 그의 매일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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