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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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70주에 대한 세대적 조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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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10월호>

2. 다니엘 ‘칠십 주’의 목적

『칠십 주가 네(다니엘) 백성(유대인)과 네(다니엘) 거룩한 도성(예루살렘)에 정해졌나니,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화해를 이루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성전)을 기름 부으려 함이라』(단9:24).
다니엘의 칠십 주는 오직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땅에 거하는 기간만 해당되는 것으로서 현재 그들이 ‘흩어져 있는 이 세대의 기간’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유대인의 독특성과 ‘칠십 주’의 대상은 유대인에 한한 것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칠십 주’의 목적을 살펴보자.

1. 허물을 끝냄
2. 죄를 종결시킴
3. 죄악에 화해를 이룸
4. 영원한 의를 가져옴
5. 환상과 예언을 봉인함
6. 지극히 거룩한 성읍이 기름부음을 받음

주의할 점은 다니엘 9:24은 대의적이고 포괄적이며, 일반적인 목적들을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5-27절은 이 개괄적인 목적들을 크게 삼등분하고(7주+62주+1주), 각 구분에 관하여 세부적으로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24절의 목적들은 정해진 칠십 주가 끝날 때 위의 6가지 항목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소위 “메시야적 해석을 시도한 한국 최초의 주석”이라고 추천하는 간하배 교수의 <다니엘의 메시야 예언>이라는 저서에서는 ‘칠십 주’가 끝난 후에 이 6가지 항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기간 동안, 즉 69주 이후 메시야가 끊어질 때에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으며(pp.190-191), 또한 “이것이 일차적으로는 육체를 따라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역사적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인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이 구절이 메시야적 사역(초림!!)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사죄함과 깨끗함을 받은 하나님의 참 백성(그리스도인?)에 관한 언급이다.”(p.191)라고 적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모든 예언이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으로 성취되고, 마지막 한 주(70째 주)의 중간에 “제사나 예물을 금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함으로써 ‘적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버렸다!!(pp.210-214). 아마 그는 계시록 6장의 “흰 말 탄 자”인 적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호에서 살펴 보았듯이 다니엘서에서는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주님 승천 후 오순절 때 탄생되었고 창세전부터 감추어져 왔던 ‘신비’로서 사도 바울에 의해 에베소서 3장 이전까지는 교회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해서 는 계시되지 않았다! 이 역사적, 문법적, 교리적인 해석 방법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무천년, 후천년,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다.
서달석 목사는 <바이블 예언 뉴스, 1992. 4, p.18>에서 “‘칠십 주’는 다니엘의 기도 응답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응답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24절을 자세히 보면 그 응답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이 끝나고 그들이 회복되며, 영원한 의가 오고 예언과 환상이 봉인되어지며, 메시야가 직접 통치하시는 ‘왕국’(KINGDOM)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다니엘 2장, 7장과도 연관되어짐을 알 수 있다.
이제 각 항목별로 목적을 깊이있게 다루어 보면서 비교해 보도록 하자.

1. 허물을 끝냄(To Finish The Transgression)
26절에서 ‘메시야 왕(그리스도)의 끊어짐’의 경우는 히브리서 10:12의 “죄를 위하여 드려진 것”과 에베소서 2:1, 로마서 5:6-10에 말하는 것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드려진 것”을 말한다고 광의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항목은 ‘온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가 아니다. 여기 ‘허물을 끝냄’은 오직 ‘유대인들의 허물을 끝냄’을 말한다. 구약 예언과 약속들에 비추어 볼 때 유대인들은 아직 하나님과 화해 관계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약속이 그들에게 성취되지 않았다(겔38:23). 이사야 59:20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구속주가 시온에게, 야곱 안에서 허물로부터 떠난 자들에게 오시리라. 주가 말하노라.』
또한 에스겔서에서도 약속하고 있다.
『그들의 불결함과 그들의 범죄함에 따라 내가 그들에게 행하였고 내 얼굴을 그들로부터 숨겼느니라.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제 내가 다시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데려오고 이스라엘의 온 집 위에 자비를 베풀 것이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질투하리라』(겔39:24-25).

2. 죄를 종결시킴(To Make An End Of Sins)
여기서 의미하는 바도 ‘이스라엘의 죄’이다. 이것은 로마서 11:26-27에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이스라엘의 모든 죄들을 없애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롬11:26-27).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신다’는 말씀대로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올 때까지는 이 항목은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요1:29)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다. 무천년주의자들이나 후천년주의자들은 그 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으므로 이 항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인한 죄의 종결’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그러나 24절을 자세히 보면 아예 죄를 ‘완전히 끝낸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대로 한다면 심각한 신학적 오류를 낳게 된다.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위하여’,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으셨지만 ‘죄 자체’를 없애버리시거나 그 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가 우리에 대하여 죽은 것’이 아니다(롬 3,4,5,6,7,8). 그 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의 형벌’로 부터의 구원하심은 될 수 있지만 아직도 ‘죄의 세력’과 ‘죄의 법’ 자체로부터의 구원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왜 아직도 이 세상은 갈수록 범죄율이 증가하며 죄악이 만연되고 있는가? 그들의 주장이 타당성하다면 위에서 말한 “죄의 종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다니엘의 칠십 주를 ‘그리스도의 초림’에다 쑤셔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달석 목사와 간하배 교수, 그리고 후천년, 무천년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숨어야 할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항목에 대한 의미는 다음 구절들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짙은 구름같은 네(이스라엘) 허물을 구름같은 네 죄를 지워버렸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이는 내가 너를(이스라엘) 구속하였음이라』(사44:22).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맺을 언약이 되리니, 그 날들 이후로 나는 내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주를 알라.”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모두가, 즉 그들 가운제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기 때문이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할 것이며 그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34). (스카랴 13:1 참조)

3. 죄악에 화해를 이룸(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
이사야 53:5-6은 가장 축복된 말씀 중의 하나이지만 이 세대(교회시대) 가운데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유대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교회시대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로서 개인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차별이 없다. 그러나 유대인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구원받고 구속함을 받는 것은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회개와 침례를 받음으로서이다. 침례인 요한이 준 침례가 바로 메시야의 왕국(무천년, 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적인 왕국이 아니다!)의 도래(천국복음)를 위해 행해야 하는 “회개의 침례”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로 구원받거나 침례가 구원의 필수 요건이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르다. 그들 민족이 구속함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의 침례’는 반드시 선결되어져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이것이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 2:38에서 전했던 멧세지이다.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 구절의 대상은 사도행전 2:36에서 보면 분명히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구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멧세지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마땅히 구원받기 위해 ‘회개의 침례’를 받아야 한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받지 아니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교리적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하여 침례를 주는 자는 요한복음 10:1에 있는 도둑이요, 강도며,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는 이리다(마7:15). 38절은 구약에 속한 유대인들에게 준 말씀으로서, 아직도 율법 아래 있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통치자를 죽였다는 사실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시해 준 멧세지이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 10:43-47, 11: 15-18, 15:7-11에서 사도행전 2:38의 멧세지와는 다르게 전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교회가 휴거되고 난 후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그들은 스카랴 12:10-14과 계시록 1:7의 말씀대로 그들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직접 보고, 민족적으로 회개하게 되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이다.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볼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통함같이 할 것이요, 그들이 그를 위하여 비통에 잠기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첫아들을 위하여 비통에 잠기듯 하리라.』(슼12:10).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으리요? 누가 그러한 일들을 보았으리요? 땅이 하루에 생겨 날 수 있으며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그 자녀들을 낳았도다.』 (사66:8).
유대인들은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전 민족적으로 재림 때 그들이 찔렀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하나의 민족(나라)”으로서 “단 하루만에” 개심하여 태어날 것이다. 그런 후 『그 날에(주의 날 - 재림) 죄와 더러움을 씻는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의 거민을 위하여 샘이 열려질 것이라』(슼13:1).

4. 영원한 의를 가져 옴(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 이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인의 “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재림 때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서 “의”를 얻게 된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리니 한 왕이 치리하고 번성하여 지상에서 심판과 정의를 실행하리라. 그의 날들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거하리라. 이것이 그의 이름이니 그는 ‘주 우리의 의’라 불리리라.』(렘23:5,6).
이 “영원한 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직접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 세워질 때까지는 오지 않는다. 이에 앞서 먼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곧 ‘허물을 끝내고, 죄를 종결시키며, 죄악의 화해를 이루는 것’이 선행되기 전까지는 “영원한 의”는 오지 않는다. 그런 후에 주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새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맺을 언약이 되리니, 그 날들 이후로 나는 내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 그들은 각기 자기 이웃과 각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주를 알라.”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모두가, 즉 그들 가운제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기 때문이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할 것이며 그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34).
히브리서 8:10-11절이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 히브리서는 믿지 않는 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교리로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통해 이를 명확하게 밝혀 주고 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롬11:26-27).<다음호에 계속>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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