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하나님의 나라 분류
영원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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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6월호>
1. 인류의 마지막 시험 기간인간의 역사는 배교의 연속이었다. 에덴의 동산을 꿈꾸는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그와 같은 이상적인 상황이 주어질 것이다. 이 시험은 마지막이고, 인간의 최후의 변명조차 없애 버릴 것이다. 그 변명의 여지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은 그의 실패와 죄를 늘 사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 왔다. 인간은 “사탄만 없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고 실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탄을 제거해 주십시오. 그의 능력을 마비시키시고, 그의 악한 행동들을 중지시키시며, 그를 결박하여 우리를 그의 다스리는 영향력으로부터 구출하소서. 그래서 사람이 근본적으로는 선하고 착하며, 단지 악한 환경의 피해자임을 보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항변한다. 하나님은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응답하신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이루실 때 그 “천국”은 제대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계 20장). 그 때가 되면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평화로운 세상, 곧 전쟁이 그치고 사자가 풀을 뜯으며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는 그러한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사 11장).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며 이루려고 노력하는 “천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세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사람들을 속이지 못하게 천년 동안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가두어 두신다. 그리고 인간들의 죄악된 습성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서 단시간에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천년이란 긴 시간을 주신다. 인간은 그 천년이란 검증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완벽한 환경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년왕국의 끝에 사탄이 풀려날 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반역하는 피조물임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년이 끝날 때,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던 사탄은 잠깐 풀려나와 그의 천사들, 마귀들, 그리고 그의 권세하에 있는 인간들과 함께 오래 전에 예비된 “불못”에 던져져 거기서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계 20:7-10, 마 25:4). 이처럼 이 세대(천년왕국)도 예외 없이 배교로 끝맺게 된다. 천년왕국 기간인 천년이 끝나면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혔던 사탄이 잠시 풀려나오고 엄청난 배교가 있게 되며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악한 자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 후에 하늘과 땅은 불살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며, 영원한 하나님의 날이 시작될 것이다(벧후 3:12).
천년 기간이 끝난 후에 현재의 땅은 불로써 타버리며 의(righteousness)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다(벧후 3:13).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칠 완전한 왕국이 될 것이다(고전 15:24,28). 왜냐하면 “천년왕국”에도 죄가 있기 때문에 완전한 곳이 될 수 없으며, 그 마지막 역시 “배교”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완전한 “왕국”은 “때가 찬 경륜”(엡 1:10)이라고 하는 그 세대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계획들의 머릿돌이 되실 것을 정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오는 시대들”(Ages to come)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천년왕국과 그 후에 있을 영원한 시대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엡 2:7).
2. 백보좌 심판
의인과 불의한 자의 부활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의인이 먼저 부활하고, 1000년 후에나 불의한 자가 부활하게 된다(계 20:4,5). 우리는 요한계시록 20:4-6을 통해 선을 행한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 사이에 “일정한 시간적 격차”(1000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계 20:5,6).
최후의 큰 백보좌 심판은 미래에 일어날 것이며, 이 심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요한계시록 20:11-15에 있다. 이 심판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이 있은 후 천년 뒤에 ‘큰 백보좌’ 앞에서 진행될 것이다. 큰 백보좌는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자에 대한 “큰 백보좌 심판”은 하늘들과 땅이 소멸된 직후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심판을 베드로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3:7)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큰 백보좌” 심판석은 죽었던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석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 받는 것이다.
가장 먼저 심판 받는 자는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다(요 8:44). 그는 모든 불순종의 자녀들, 진노의 자녀들의 아비이며, 거짓말의 아비이다. 모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루시퍼가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것이다.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도 우주 공간에 펼쳐져 있는 백보좌 심판에서 심판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 이들을 심판할 권세도 부여받게 된다.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3). 『또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주께서 영원한 사슬로 묶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두셨느니라』(유 6). 이들 천사들은 백보좌 심판 때까지 갇혀 있다. 타락한 천사들은 사탄을 따랐던 천사들이며(겔 28:12̵19, 사 14:12̵17, 계 12:4), 백보좌 심판에서 심판 받을 것이다. 즉 사탄을 따랐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교회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에게 심판받는다(벧후 2:4, 고전 6:3, 계 20:13, 유6).
바울은 사도행전 17:31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이 심판의 근거는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아닌가로,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계 20:12).
큰 백보좌 심판은 마태복음 25장의 민족들의 심판과는 달리 개인적인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문하시고 피고인은 하나님께 질문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는 로마서 3:4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던지시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던진 모든 질문에 답변해 내실 것이다.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공부해 보면 주님께서는 질문을 받으실 때마다 대답을 예비해 두셨고, 반대로 그분이 질문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구원받지 못했고, 거듭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거부했으며,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죄인의 상황인 것이다.
성경은 이 마지막 심판을 가장 많이 경고하였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말하는 어떠한 빈말이라도 심판 날에는 그에 관하여 해명하게 되리라』(마 12:36). 『가려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이는 숨겨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막 4:22). 『죄악의 일꾼들에게는 자신들을 숨길 수 있는 암흑도 없고, 죽음의 그림자도 없도다』(욥 34:22).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4). 다니엘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았더니 보좌들이 넘어져 있고, 옛날부터 계신 분이 앉으셨는데, 그 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전한 양모같더라. 그분의 보좌는 불타는 불꽃 같고, 그 분의 바퀴들은 타는 불 같더라. 불같은 강이 흘러 그분 앞에서 나오니, 수백만 명이 그 분을 섬기고, 수천만 명이 그분 앞에 섰는데, 심판이 준비되었고, 그 책들이 펼쳐졌더라』(단 7:9-10).
백보좌 심판에 선 자는 누구든지 그의 행동, 말, 생각의 모든 기록들을 눈 앞에서 보게 될 것이다. 눈을 감고 얼굴을 가려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계획을 왜 고의로 거부하였는가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질문에 답변하도록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불못으로 던져질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
아담부터 천년왕국 끝까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이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들의 운명은 그들의 왕과 함께 불못에 떨어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계 20:10). 이 고통
은 영원하며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를 통해 두 번째 부활 때 매우 적은 수의 의로운 “어떤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환란과 천년왕국 때 구원받은 사람들로 이 심판에서 심판받고, 보상 받는다(계 11:18).
3. 새 하늘과 새 땅
요한은 “백보좌”심판을 설명하고 거기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계 21:1).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이사야 65:17; 66:22)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벧후 3:13). 분명히 베드로와 요한은 같은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경건치 아니한 자의 심판과 멸망의 날”은 바로 악한 자가 죽어 심판받는 “백보좌 심판석”이기 때문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나타날 때(계 21:1,2) 하나님께서 구분하여 다루신 세 그룹(이방인, 유대인, 하나님의 교회)은 모두 성경에 따라 그들 각자에게 맞는 위치에 있게 된다.
첫째는 유대인(요 4:22)이다. 유대인은 실제 그대로의 물리적이고 눈에 보이는 지상의 상속지에 거주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의 구역을 영원히 갖게 된다. 이스라엘은 천년왕국시대에 이어 이 때에도 커다란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씨와 너희 이름도 항상 있으리라』(사 66:22). 유대인은 새 땅에서 영원히 있게 된다. 바빌론, 카이로, 아라랏 산을 잇는 피라미드 형태의 땅에서 이스라엘은 민족들 위에 우뚝 서서 최고 민족으로 다스리게 된다. 이들 모두는 자연적인 인간의 몸을 입고 산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33세 반의 나이가 되면 정해진 달에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죄로 저주받은 옛날 아담의 본성을 치유받는다. 가는 것을 거절하거나 반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죽는다. 복종하면 그들은 영원히 산다. 그들은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울 것이다.
두 번째로 이방인은 영원 속에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의도하셨던 대로 지상에서 12나라로 존재할 것이다(신 32:7,8). 새 예루살렘에는 12대문이 있는데, 각 대문은 각각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계 21:24,26). 이 이방인들은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로 대환란과 천년왕국 기간에 구원받은 민족들과 그들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새달”과 “안식일”에 주께 경배드리러 거룩한 도성으로 오는 것이다(사 66:22-24). 도성의 한 가운데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솟아 나오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다. 에스겔 44-48장에 기록된 천년왕국의 모습과 이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원에서 일어날 모형이 천년왕국 기간에 땅에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에는 성전이 있으며 그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나,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 양이 친히 성전이 되신다. 그들은 도성으로 들어와 마침내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를 다시” 얻는다.
이제 더이상 사탄에게 유혹받을 가능성이 없게 되자, 인간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에게 금지되었던 생명의 나무에 참여하도록 허락된다. 새 예루살렘의 정식 시민인 교회는 부활하신 구세주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반면(죄에 대한 구세주의 피의 속죄를 믿음으로써), 영원에서 이방인들은 믿음과 행위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이 행위로 인해 그들은 생명 나무에 참여할 자격을 갖게 된다. 계 11:18; 12:17; 14:12; 22:14 참고) 아담에게서 혈과 육을 받은 죄없는 인간이 재생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는 명령을 받게되고 지구를 다 채우면 무한한 우주의 구석까지 가게 된다(사 9:6-7). 유대인들도 다른 민족들처럼 번성하여 그들과 함께 외계로 나아갈 것이다(렘 33:19-22). 영원에서도 유대인들은 모든 민족들의 중심에 있게 될 것이며, 그것은 새 땅뿐 아니라 새 하늘에서도 마찬가지다.
4. 새 예루살렘
세 번째로 교회도 적절한 곳에 있게 된다(물론 “교회”는 주 예수님의 몸을 의미한다. 고전 12장, 엡 2,3장, 롬 12장). 교회는 “새 예루살렘”인 하늘의 도성(갈 4:26)을 받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완전히 영적인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때문에, 그들이 상속받는 도성(계 21:22)에는 문자적이고 물리적인 눈에 보이는 성전같은 것은 없다. 더군다나, 이 도성에는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눈에 보이는 해나 달(“하늘들!”)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것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요한복음 14:2에서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나와 있으며, 고린도후서 1장에 따르면 하늘은 빌딩과 같고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곳이다. 현재의 하늘인 태양계는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하늘로 대체될 것이다.
우리의 미래의 처소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될 것이다(고후 5:1). 하나님의 건축술로 설계되고 건축되어진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완벽한 처소이다. 그곳은 여기의 설명을 훨씬 능가하는 장소이다. 그곳은 하늘을 기원으로 하며,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하늘 자체는 아니다. 새 예루살렘 도성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하늘로 돌아가서 그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준비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처소이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준비된 사람들을 위한 준비된 장소이다. 요한복음 14:2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계속해서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요한은 “큰 도성”이라고 하였다. 새 예루살렘은 실제적인 장소이며,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으며, 모두 일만 이천 스타디온(약 2,400km)이다. 정육면체는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데, 동일한 길이를 갖는 기하학적인 모양은 바로 이중피라밋 형태이다.
새 예루살렘은 오순절부터 휴거 때까지의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아내요, 신부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신부로 갖는다. 그녀는 아내이면서 도성이다(사탄도 바빌론을 신부로 갖는다. 그녀도 아내이면서 도성이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 계신 이곳은 높고 거룩한 곳인데, 이사야 57:15은 주 하나님께서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신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다. 왜냐하면 시편 20:6에 보면 이곳을 거룩한 하늘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행복한 곳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계 7:17).
Bible Believers / 39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늘은 죽음,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곳이다(계 21:4). 그곳에는 밤도 없고 어둠도 없다(계 22:3̵5). 새 예루살렘은 배고픔, 목마름, 혹은 지나친 더위도 없는 곳이다. 계시록 7:16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다시는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열기도 그들 위에 내리쬐지 못할 것이라.』 마귀는 그곳에 없으며(계 22:10), 도둑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눅 12:33), 두려워하는 자들(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그리스도 대신 자기들의 종교를 붙드는 자들), 그리고 가증스런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마술하는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결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한다(계 21:8). 새 예루살렘이야말로 완전한 사귐이 있는 곳이다. 계시록 22:4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완전한 소유의 장소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게 될 것이며 성경에 따르면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이마에 있게 될 것이다. 완전한 충성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될 것이고 그분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솔 6:5).
그곳은 영원한 영광이 있는 곳이다. 인위적인 빛도 필요 없다(계 22:5). 죄 없고 완전한 존재들이 영원토록 영원한 기쁨으로, 영원한 평안 가운데, 영원한 행복 가운데 다스리는 곳이요, 악을 생각하도록 시험 당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24시간 내내 생각해도 잘못된 생각을 할 염려가 없는 그런 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다.
5.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라
잘 알다시피 창세기 1장의 일곱째 날을 보면 앞에서 여섯 번이나 반복된 “저녁과 아침”이란 표현이 빠져 있다. 일곱째 날은 끝이 없다. 이 일곱 번째 천 년은 곧바로 영원 세계와 연결되기 때문에 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시록 20:10에서 영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말 4:2, 마 13:43, 계 20:7, 계 21,22장). 이와 같이 전천년주의는 성경의 정확한 해석체계이다. 일곱째 날은 끝이 없다. 천년왕국에서의 통치는 영원까지 이어진다(단 7:14,18). 천년통치는 땅에서 1000년을 시작했다가 멈추지 않고 영원까지 계속된다(이것이 성경에서 영원 무궁토록의 의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히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