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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을 제거하는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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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3월호>
필자가 성경과 신학을 어설프게 알던 시절, 종말론에는 세 가지 학설이 있다고 들었다. 하나는 천년왕국 이전에 주님이 오신다는 전천년주의요, 또 하나는 천년왕국 이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후천년주의요, 다른 하나는 주님이 오시기는 오시되 천 년이라는 기간은 문자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무천년주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학설들은 모두 신학 이론들로서, 어떤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았다.그러나 그 후 성경과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그분의 신부된 성도들의 매우 중요한 신앙이요, 이 신앙을 오도하는 이론들은 거짓 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교리들이 언제 누가 어떻게 주장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전천년주의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케 하는 참된 교리요, 나머지 둘은 재림을 기다리지 않게 만드는 거짓 교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종말론은 단순히 하나의 이론으로 그치지 않고, 성도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참된 신앙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관한 논쟁은 단순한 논쟁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성경의 핵심 교리로서, 또 성도들의 신앙자세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지난 2월 4일자 교회연합신문의 「현대인을 위한 신앙 길라잡이」라는 코너에는 「천년왕국에 대하여」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스도신대 류장열 교수라는 사람이 쓴 글인데, 이 사람은 지난 번에 침례에 대해서도 엉터리로 말하다가 비평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천년왕국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천년왕국이나 종말론에 대해 그 중요성은 전혀 모른 채 단지 사회학적 관점으로만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절에는 주님의 통치를 대망하는 천년왕국사상이 교회 내에서 크게 발흥하였다... 전천년설은 고난의 시대에 등장한다. 이 학설은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던 사도 시대부터 제4세기까지의 지배적인 종말론이었다.”라고 말한다. 반면 무천년주의에 대해서는,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교회가 천년왕국과 동일시 되었기에 생겨난 이론이라고 결정짓는다. 즉 교회가 고난을 받으면 전천년주의가 고개를 들고, 교회가 발전하면 무천년주의가 고개를 들게 된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종말론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게 되면 전천년주의는 순전히 고난의 산물일 뿐이고, 이 시대에는 과거의 케케묵은 이론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사회 현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진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된다. 류교수 스스로도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이루어질 것이냐 아니면 재림 후에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끊임없는 논쟁은 천년왕국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게 한다.”라고 말하듯이, 전천년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요한계시록 20:1-6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천년주의가 단순히 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라고만 이해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사실은 재림의 시기뿐 아니라 재림의 목적까지도 포함하는 것인데,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야만이 그분의 지상 왕국이 세워지고 세상이 개혁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의 목적은 그분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지상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이 성경의 진리는 시편 2,46,72편, 이사야 11,40,65장, 다니엘 2,9,11장, 요한계시록 등, 신구약 성경의 수없는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죄악으로 치달아 심판에 처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극악한 상황이 전개될 때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천년주의라는 성경적 교리는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데 있어 여하한 인간의 노력이나 역할도 인정치 않는다. 교회가 고난을 받을수록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교회가 융성해진다 할지라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렸던 것은, 이 세상 자체는 항상 악하고 점점 더 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천년주의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이 영적으로 천년왕국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세상을 점점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려 하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이론이다. 후천년주의는 인간의 노력으로 점점 발전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면 그 정점에서 주님이 오신다고 말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이론이며, 이 둘은 모두 진화론적 관점을 취하는 이론으로, “신학적 진화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천년주의, 혹은 후천년주의 이론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전천년주의를 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 자세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무 · 후천년주의를 택하게 되면 복음 전파나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신앙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 세상을 개혁하려 하고 사회복음을 전하게 되는 반면, 전천년주의를 택하면 어차피 세상은 버릴 것이기에 그 멸망해 가는 세상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사역을 함과, 또 성경의 예언에 따라 확실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신부의 자세로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천년주의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고 영적 해석만을 하는 가운데, 문자적인 예언들을 비유화시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본질을 흐려 버리고, 단순히 우리가 삶에서 취할 영적 교훈들만을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전천년주의는 성도들의 삶에 필요한 영적 교훈들은 물론이요, 모든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며, 영적 지식을 더욱 추구하게 한다.
그러므로 전천년재림이냐 후천년재림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류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종말론을 역사· 사회적으로 설명해서 객관화시켜 버리는 것은 그 자체가 무천년주의의 이론이며, 궁극적으로는 재림신앙 자체를 말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불행이다. 어디 류교수 뿐이겠냐만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의 행보도 모른 채 무지한 성도들을 계속 오류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들로 교인들의 길라잡이로 자처하고 나서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들이 더욱더 눈먼 소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