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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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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3월호>
타락의 계단『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의 행위로 채워지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만족하리라.』(잠언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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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노라면 지금 세상은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고후 4:4) 아버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고, 이 세상의 통치자(요 12:31)로 죄 위에 군림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으며,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 역사하는 영으로서(엡 2:2) 성령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인인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반면에 마귀가 관장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부류가 있으니 그들을 필자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를 즐거워하는 것이거늘(시 35:9)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타락하여 통치권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전쟁을 선포하셨다. 이 전쟁이 바로 “영적 전쟁”이며 요한계시록 20:5에 가서야 비로소 끝날 것이다. 참으로 기나긴 전쟁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중에서 크리스천이 아폴루온(계 9:11)과 싸운 것은 불과 3시간 정도였지만 자신과의 싸움은 처음부터 시온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은 곧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늘 따라다니는 세 가지 적이 있으니 사탄과 세상과 육신일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와 싸우는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중립은 없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이 전쟁에서 지게 되면 그는 마귀에게 점유당한다. 점유당하면 점유한 자(마귀)의 종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벧후 2:19, 요 8:34).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양심, 의지를 공격하며 지성과 감성으로 접근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서서히 그를 점유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타락의 계단으로 접어든다.
타락이란 무엇인가?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이 말하는 타락은 “부패하고 악하고 그릇된 혹은 비뚤어진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행위나 인간이 나빠질 수 있을 대로 나빠진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타락에 대한 기준이 없다. 단순한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기준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본 타락은 조직신학에서 실천신학의 한 과목이며 신약 용어는 아니지만 구약적인 용어로 잠언 14장과 예레미야 2장에서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개인의 타락과 민족적인 타락). 마귀는 성도로 하여금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를 저지하고 자신을 지키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로마서 10:17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이 말씀에서 또 그리스도인의 호흡인 기도에서 멀어지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되어 하나님과 등을 돌려 버린 상태가 된다. 즉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는 믿음에서 떠난 자요(고전 10:12) 넘어진 자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타락(backsliding)이다.
어떤 설교자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에는 사악한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타락은 한 번에 순간적으로 되어 버리지 않는다. 타락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작고 사소한 불신앙과 죄들이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아 움이 트고 서서히 번지고 난 후에는 급기야 충격적인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다. 『마음이 타락한 자는 자기의 행위로 채워지겠고』(잠언 14:14) 자신의 자랑은 결국 자신의 파멸을 가져온다. 필자는 한 지역 교회에서 담임목회자로 주님을 섬기면서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는 과정과 그 종말을 목도해 왔다. 짧은 지면이나마 타락하는 과정을 한번 짚어보았으면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타락의 계단”이라고 말한다.
타락의 첫 단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다. 첫 번째 징후는 그의 첫사랑이 떠나 버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에서 멀어지면 당연히 냉랭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다소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첫사랑을 저버린 것 때문이라』(계 2:4).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그 첫사랑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감격이 식어지면 곧 복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어 있다. 혼에 대한 연민이나 구령의 열정도 식어진다. 구령을 해도 형식화되어 버린다. 주님의 사역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높임을 받으려 하는 경향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눅 16: 15). 성경 읽기와 기도의 시간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단계로서 실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시작 단계이다.
① 찬양을 해도 영으로 하지 않고 입으로만 한다.
② 첫사랑이 식어지면 동시에 서로 사랑하라는(요일 4:7) 말씀도 멀어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용서도 없게 된다.
③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도 무감각해지는 단계이다.
④ 첫사랑이 식으면 모든 것이 식어져 냉랭하게 된다.
타락의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서 시기가 발동한다. 고린도전서 13:4에서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시기는 사랑이 식어지고 대신 탐욕(탐심)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어난다.
내가 가져야 할 부를 다른 지체가 가지고 있을 때, 내가 누려야 할 행복을 다른 지체가 누릴 때, 내가 가져야 할 좋은 외모, 재능, 학식 등을 다른 지체가 가지고 있을 때 시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에서 탐욕은 금물이다(히 13:5). 이 시기심은 질투심이라는 친구와 절친한 관계이다. 이 둘이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험담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그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른 지체를 시기하거나 질투를 느낀다면 그것은 스스로 타락의 길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고린도후서 11:2의 『경건한 질투』만 있어야 한다.
타락하는 세 번째 단계는 불평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이라고 이름 붙여진 특이한 책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가 있었다. 하루는 어떤 성도가 그에게 와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일과 불평을 떠벌렸다. 그러자 목사님은 “좋아요 성도님, 여기에 ‘불평책’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당신의 말을 모아 써넣을 테니까 서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게 될 때 당신이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 안돼요! 나는 여기에 서명할 수 없어요” 이 목사님은 그 책을 50년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주었지만 단 한 사람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①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험담하기를 좋아한다. 불평은 불만이라는 친구와 단짝이다. 악한 사귐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킨다고 했다(고전 15:33). 이 단계쯤 내려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②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비평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같은 동지가 생기면 오늘날 우리에게 유용한 도구인 전화기는 교회에 대한 불만과 목자의 흠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필자는 이런 전화를 “devil-pho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당하게 목자에게 와서 말하지 않고 항상 수군거리는 자들이다(롬 1:29). 이들이 오직 바라는 것은 그 어떤 때이든지 영적 지도자(목회자)가 실수할 때를 기다린다. 참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주범들인 것이다.
타락의 다음 단계로 내려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타락하는 네 번째 단계는 “교만”이다. 잠언 6:16에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가증한 것 중 하나가 교만이다. 역시 사탄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교만은 멸망에 앞서 있으며 거만한 영은 몰락에 앞서 있느니라』(잠 16:18).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성도이기를 거부한다.
① 주일 오전 성경공부를 한두 번 빠지더니, 수요 기도모임조차 빠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주일에 주일 오전예배만 드리고 그냥 없어진다. 교만은 거만이라는 친구와 단짝이다.
② 이제는 목자를 공공연하게 비방하고, 약점을 찾아내려고 기를 쓴다. 마치 민수기 12:2에서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느냐?』를 보는 것과 같다. 당신 같은 사람이 사역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느냐? 우리는 그간 10년 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최일선에서 받들고 일했던 사람들이 이 계단까지 내려와 급기야 교회를 파괴하고 분열을 계획하는 일을 수없이 보아 왔다. 철저히 잘못 배운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후서 1:5-7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의 순서를 망각하고 모두 믿음도 덕도 없이 지식 위에 기반을 잡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이 단계까지 내려오게 되면 이미 강력하고도 악한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성경적인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룩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은혜의 보좌로 다시 나와서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전혀 가망이 없다.
타락의 다섯 번째 단계는 거짓말(거짓 증인)이다. 이 단계까지 내려오면 해독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다. 고기로 말하자면 이미 부패되어 썩은 냄새가 풀풀나는 상태이다. 나무의 푸른 잎이 아니라 이미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①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선동해서 미혹한다.
② 목자를 비방함은 물론, 교회의 분열과 파괴를 위해 갖가지 거짓말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목자의 설교에 대해서는 교만으로 인해 귀를 막아 버린 상태이다.
③ 예배시에 목자를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못한다.
④ 자신을 표적으로 설교한다고 동조자들에게 성토한다.
⑤ 교회에서 갖는 공식적인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며, 목자가 인정하지 않는 모임을 갖는다. 유다서 16절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은 원망하는 자들이요, 불평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또 그들의 입으로는 과장하는 말을 하고, 유익을 위해 사람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자들이라.』
타락의 마지막 계단은 교회를 대적하고 파괴하는 짓이다. 사실 이 단계까지 오기 전에 이들은 교회에서 출회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① 성도들과 목자의 관계를 이간질시키고 목자의 과거를 들추거나 캐내기까지 한다. 역시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이 가장 잘 써먹는 수법인 것이다.
②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움직인다. 마치 지역 교회에서 민주주의가 통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③ 그리스도인의 간증과 열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령은 물론 찬양도 입으로만 한다. 물질을 드리는 것에서는 이미 손을 떼었다.
④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지도 않고 사역에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뽑아서 버리신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마 15:13).
이러한 것들이 타락의 계단이다. 타락하고 배교한 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처방은 없다. 오직 심판밖에 없다. 그것은 성경 신구약에서 증명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역이 위축되는가? 아니다. 더 융성하게 된다. 남은 자들을 데리고 그분의 사역을 지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타락할 수 있다. 성도도 집사도 목자도 예외는 없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써 주님과의 교제의 끈을 놓지 않으면 타락하지 않는다. 말씀과 기도에 충실하면 영적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교회의 수요 기도모임은 생선을 부패시키지 않기 위한 소금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 자신도 모르게 이 계단들로 내려올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고 자백의 기도를 드리면 된다(요일 1:5-9). 이것이 빛 가운데 행하고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그를 찾을 만한 때에 너희는 주를 구하며 그가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악인은 자기의 길을, 불의한 사람은 자기 생각들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사 55:6,7).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요나는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지만 불순종함으로써 욥파로 내려갔다. 욥파에서 타시스로, 타시스에서 배로 내려갔다. 배에서도 배 밑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배 밑층에서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바다 속에서 땅의 심장 속까지(마 12:40) 내려갔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계속 내리막길이다. 하나님은 타락의 길에서 돌이키면 누구든지 기회를 주신다. 요나에게도, 다윗에게도, 시몬 베드로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주님은 당신에게도 기회를 주신다. 혹 우리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면 우리는 다시 겸손히 주님을 섬기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 3:1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