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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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주기도문”을 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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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0월호>

장준익 / 솔로몬성경연수원 강사


본 코너는 솔로몬성경연수원 교재들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 주신 지식의 보화들을 담고 있다.

마태복음 6:9-13에는 많은 교회들이 잘못 암송하고 있는 소위 “주기도문”이 나온다. 그러나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던 중 유대인 열두 제자에게 가르쳐 주신 “대환란 때 드릴 기도”이다. 대환란은 천년왕국 이전에 있게 될 전무후무한 대재앙으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로 묘사된다. 야곱, 곧 이스라엘의 고난의 때라면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 고난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기도에 있어서 도움을 주셔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주님께서 “유대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마태복음 6장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해석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번 호에서는 소위 “주기도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마 6:5) 기도하는 위선자들의 기도를 경고하시면서 “골방에서 드리는 은밀한 기도”(6절)를 강조하신다. 자선 및 기도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위선자들”을 언급하셨는데(2,5절), 주로 바리새인들을 겨냥하셨던 “위선자”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첫째, “배우”(actor)이다. 위선자란 배우처럼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숨기고 거짓을 꾸며 실감나게 연기하며 겉으로만 선하게 보이려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 앞에서 자선을 행하고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하는 등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고 행한 행위들은 배우들의 연기처럼 아주 그럴듯했다. 둘째, “극단적인 비평가” (hyper-critics)이다. “hypocrite”(위선자)라는 단어는 “hyper”(극단적인)와 “critical”(비평적인)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특성이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비난했으며, 그리스도께서 능력 있는 일들을 행하실 때조차도 그 모든 기적을 무시하고 주님을 “극단적으로 비평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선자인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기도가 아닌, 왕국을 눈앞에 둔 왕국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기도를 제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목하신 “너희”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문맥상 십자가 이전에 여전히 율법하에 있던 “유대인 제자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민족적으로” 낳으신 “한 아들”이기에(출 4:22), 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개인적으로 “나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우리 하나님』(수 24:24, 삼상 7:8, 왕하 19:19 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9절)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민족적으로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이다. 이처럼 이 기도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여기서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는 “Thy kingdom come,” 즉 장차 주님의 왕국(Thy kingdom)이 오는(come) 것을 말한다. 이것은 대환란 직후 도래할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지상 왕국으로서, 결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이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고 말씀하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즉 이 기도는 자신들의 메시아 왕께서 가져오실 지상 왕국을 바라는 유대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이것은 매일의 양식을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먹어야 할 유대인 환란 성도들을 위한 것이다. 유대인 환란 성도들은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해 광야로 가서 후 삼 년 반 동안 초자연적으로 부양받게 된다(계 12:14). 그때는 정말 하루하루의 양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미래의 사건을 예표했던 것이 출애굽기 16장에서 광야의 이스라엘이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로 매일 공급받던 일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들과 같이 다시 한번 초자연적으로 부양해 주실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해 놓으셨다(시 74:14, 미 7:14,15). 이 기도는 미래의 그때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들도 용서해 주시오며』(마 6:12). 누가복음 11장에서는 이 구절에 대한 참조 구절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들도 용서하여 주시오며』(4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로써 우리는 “빚졌다”는 것이 “죄의 빚을 지었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환란 시대의 유대인들이 죄를 용서받는 방식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누군가의 죄를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사역을 근거로 그분의 보혈을 통해 죄 용서를 받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이렇게 구원받은 뒤에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자백함으로 용서받게 된다(요일 1:9).


말하자면 누군가의 죄를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은 분명 행위 구원이다. 마태복음 6장의 기도는 교회 시대 이후에 닥칠 대환란 때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더하여 끝까지 견디는 행위가 뒤따라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계 14:12, 마 24:13). 실로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하게 되어 구원을 잃어버리는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구원을 위해 믿음뿐 아니라 행위까지 요구되는 대환란 때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마 6:13). 대환란을 통과하는 환란 성도들은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의 시험의 날과 같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죄를 짓고 구원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히 3:8). 또한 환란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같은 “악에서 구해 냄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목을 베려고 쫓아올 것이니,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믿음이 약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마 6: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0절에 이어 또다시 “왕국”을 언급하시면서 기도를 종결지으신다. 이 기도는 그 시작과 끝이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상에 세우실 “왕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라는 말씀은 왕국을 세우시고 소유하시어 영광스럽게 통치하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마태복음 6장의 “제자들의 기도”는 적그리스도의 박해 아래 있는 유대인 환란 성도들이 그들을 구원하실 메시아 왕의 지상 왕국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드려야 할 효과적인 기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는 신약 그리스도인들은 교리적으로 이 기도와 완전히 무관하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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