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의 비유들 분류

다윗의 죄를 책망한 “나단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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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7월호>

사무엘하 12장에 등장하는 나단의 비유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간음을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한 죄를, “부자에게 빼앗긴 가난한 자의 암양”에 빗대어서 지적하는 비유다. 다윗의 양심에 호소했던 이 비유는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범하고도 버젓이 아이를 낳고 살고 있을 때 주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나단에 의해 제시되었다.

『주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기를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였나이다』(1절). 이 비유는 한 성읍의 부자와 가난한 자를 언급함으로써 시작한다. 나단이 다윗을 방문한 것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이미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으므로(삼하 11:27; 12:14) 범죄한 지 최소 10개월이 경과한 때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철저하게 육신적인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과는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는 그의 죄들이 그와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기 때문인데(사 59:2), 하나님께서는 나단의 비유를 통해 다윗을 일깨우셔서 돌이키려 하시는 것이다.

『그 부자는 심히 많은 양떼와 소떼를 가졌으나 가난한 자는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나이다. 그 암양 새끼가 그와 그의 자식들과 함께 자라고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고 그의 잔을 마시고 그의 품에 누웠으며, 그에게는 딸같이 되었는데』(2,3절). 나단은 “가난한 자의 품에 딸처럼 누워 있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를 가난한 자의 전 재산처럼 묘사한다. 그 암양이 “가난한 자”에게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가난하기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샀을 “작은 암양 새끼”는 가난한 자의 마지막 희망이자 전 재산이었음이 분명한데, 밧세바가 그녀의 남편 우리야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야는 힛인 용병이었다(삼하 23:39). 그렇기에 밧세바는 그가 타국 땅에서 그의 품속에서 누리는 유일한 위로였다. 주님께서는 우리야와 밧세바의 관계를 그렇게 보신 것인데, 다윗이 바로 그 “암양”을, 우리야가 타국 땅에서 누리던 유일한 안식을 “어느 여행자”를 위해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어느 여행자가 그 부자에게 오니, 그가 자기의 양떼와 소떼를 아껴 자기에게 온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을 위하여 잡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새끼 양을 잡아 자기에게 온 그 사람을 위하여 조리하였나이다.” 하니』(4절). 여행자는 말 그대로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부자는 잠시 후면 떠날 사람을 위해 짐승을 잡았는데, 자기 양떼와 소떼가 아까워 가난한 자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 조리해 버린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 사악한 행위에 대해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윗이 그 부자에 대하여 크게 노를 발하여 나단에게 말하기를 “주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자가 반드시 죽으리라』(5절). 다윗은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의 악행에 대해 강렬한 분노를 나타냈다. 죽어 있던 그의 양심에 죄에 대한 각성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을 잊고 밧세바와 아기에게만 푹 빠져 살던 죄의 삶에 드디어 참회의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다윗은 심지어 『주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자가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함으로써 간음과 살인죄를 범한 자신에게 스스로 형벌을 선고하고 말았다. 간음과 살인이 어떤 죄인가?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즉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음한 자와 그 간음한 여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4:17). 간음과 살인은 율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들이다. 이 두 죄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희생제가 없고 오직 죽어야만 하는 죄들인데, 다윗은 자신에게 닥친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깨달았을 때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 혀가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리이다. 오 주여, 주께서는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면 내 입이 주의 찬양을 보이리이다.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4-17). 간음과 살인죄에 대한 율법의 원칙은, 주님께서 어떤 희생제나 번제도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절대적인 사형죄를 지었음을 깨닫고서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취했는데, 즉 『상한 영』을,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주님께 보여 드려 용서를 구한 것이다. 이에 다윗은 그에게 이미 확실한 자비가 내려졌기에(사 55:3, 행 13:34), 용서받지 못할 사형죄를 저질렀음에도 율법의 원칙을 초월하여 죄 용서를 받게 된다.

다윗은 부자의 악행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 갔다. 『그가 불쌍히 여김도 없이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는 그 새끼 양을 네 배로 갚아야 하리라.” 하더라』(6절). “새끼 양을 네 배로 갚아야 한다”는 말은 율법에 관한 다윗의 해박한 지식을 보여 준다. 즉석에서 율법이 규정한 배상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소나 양을 훔쳐서 죽이거나 팔면 그 소 한 마리를 소 다섯 마리로, 양 한 마리를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출 22:1). 다윗은 성경을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에(시 119:11) 율법책을 펼쳐 보지 않고서도 한 구절의 절반을 인용할 수 있었다. 다윗은 이후에 그가 말한 대로 “네 마리의 새끼 양들”을 갚아야 했는데, 밧세바가 “사람”이므로 이 네 마리의 새끼 양들도 “사람들”이어야 했다.

다윗이 첫 번째로 갚아야 할 새끼 양은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삼하 12:18)였다. 두 번째로 갚아야 할 새끼 양은 “암논”(삼하 13:28,29)이었는데,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를 겁탈했다가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다. 세 번째로 갚아야 할 새끼 양은 “압살롬”(삼하 18:15)이었는데, 이 아들은 자기 아비에게 반역했다가 아비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죽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갚아야 할 네 번째 새끼 양은 다윗의 조카인 “아마사”(삼하 20:10)였다. 베냐민인 비크리의 아들 시바의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 유다 사람들을 삼 일 안에 모아 오라는 다윗의 명에 늑장을 부리다가 그만 그를 시기한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였으므로 이 네 사람 모두 죽어야만 했다. 그 죄의 대가는 쓰디쓴 사망이었다(롬 6:23).

다윗은 주께 범죄치 않기 위해 말씀을 암송했던 사람이다. 그 말씀을 전심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다. 『나에게 명철을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법을 지키리니 정녕, 내가 전심으로 그것을 준수하리이다... 교만한 자가 나를 대적하여 거짓말을 날조하였으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규들을 지키리이다』(시 119:34,69). 하지만 본인의 다짐이 이러할지라도 마음에 탐욕을 품은 순간 그러한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즉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성도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기는 수단일 뿐 마음에 새겨진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것과 별개다. 비록 성경 전체를 암송했다 해도 마음속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외우지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말씀을 많이 암송한 것에 대해 자랑하지 말고 자신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다윗이 스스로를 성경적으로 정확히 정죄하자, 주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의 죄들을 일일이 지적하셨다.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 사람이니이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기름붓고 사울의 손에서 구해 내어 내가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 집을 네게 주었느니라. 만일 그것이 너무 적었더라면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네게 더 주었으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주의 계명을 업신여겨 그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힛인 우리야를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으며 암몬 자손의 칼에 그를 죽게 하였도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힛인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이제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7-10절).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니이다.』(7절)라고 말함으로써 비유에 나오는 “부자”가 바로 “다윗”임을 그의 면전에서 지적했다. 따라서 비유 속 “부자”가 “다윗”이라면 그 부자에게 잠깐 들렀다가 떠난 “여행자”는 누구인 것인가? 그것은 목욕하던 밧세바를 왕궁 지붕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일었던 “다윗 자신의 정욕”이었다! 다윗은 이 “정욕”이라는 여행자를 위해 우리야의 아내와 간음을 저질렀다. 이로써 “가난한 자”는 다윗이 칼로 죽인 “우리야”이며, 그의 “암양 새끼”는 다윗이 우리야에게서 빼앗은 “밧세바”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세 가지 죄를 지적하셨다. 첫째, 주의 계명을 업신여겨 악을 행했다는 것이고(십계명, 출 20:3-17), 둘째, 밧세바와 간음하고(출 20:14)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남편 우리야를 죽였다는 것이며(출 20:13), 셋째, 힛인 우리야를 칼로 죽인 뒤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다는 것이다(출 20:17).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목을 지적하실 때 가장 먼저 언급하신 것은 그가 “주의 계명을 업신여겼다”는 사실이었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주의 계명을 업신여긴 것을 그가 주님을 업신여긴 것과 동일시하셨는데(9,10절), 이는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삼상 3:21). 주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는 말씀들을 한 권의 책, 곧 “성경”에 담아 놓으셨고, 그 성경을 통해 사람과 교제하시며 그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신다(고전 13:12, 고후 3:18). 그 계시는 점진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성경은 정교하고 모순이 없으며 시종일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는 거룩한 책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딤후 3:16) 그 말씀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분의 뜻에 날마다 순종하는 것, 이것이 죄를 짓고 육신적인 삶에 탐닉하는 것을 방지하는 길이다.

결국 다윗은 나단의 비유를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 『다윗이 나단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 하더라』(13절).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용서하셨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주께서도 왕의 죄를 제하셨으니,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13절). 이때의 상황을 기록한 시편 51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죄에 대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시 51:4,5). 다윗은 이 대목을 기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짓는 것이며 몹시도 슬픈 것이다. 지금도 정욕이라는 뜨내기 여행자를 위해 수많은 죄들이 저질러지고 수많은 죄인들이 지옥으로 던져지고 있다. 날 때부터 희망 없이 태어난 죄인에게는 자신이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음을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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