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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백성과 하나님의 임재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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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1월호>

독특한 백성과 하나님의 임재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율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 와서 율법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율법 시대가 시작되는데, 출애굽기와 레위기는 모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 섬기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제사법부터 시작해서 율법의 세세한 조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출애굽기에서는 십계명을 비롯하여 율법의 개괄적인 면과 약간의 사회적인 법조항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출애굽기에서는 다른 율법책들과 달리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막, 즉 경배에 관한 법이다. 성막과 그 섬김에 관한 부분은 출애굽기 25장부터 끝까지 이르는데, 사실상 출애굽기는 율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제시되는 율법을 크게 나누어 보면 십계명과 성막이다.

십계명

십계명은 율법의 시작이요, 또 전체 개요라고 할 수 있다. 그 각각의 계명들은 매우 중요하여, 신명기 5장에서도 그 내용은 반복된다. 그러나 십계명이 주어지는 상황을 자세히 언급한 것은 출애굽기이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주어지는데, 19장부터 백성들은 시내 산에 이르러 그 법을 받을 준비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모두를 성결로 준비하게 하시어, 모두 옷을 빨고 아내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출 19:14,15). 이 언약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지만, 결국 백성들 모두와 맺는 언약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 언약을 받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으로 내려오시는 그 날, 천둥과 번개와 나팔 소리가 산 위에서 났으며, 모든 백성은 그것을 들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산기슭까지만 다가갔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계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는다. (아직 돌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핵심은 이스라엘을 "독특한 보물"로 삼은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제사장들의 왕국"과 "거룩한 민족"이라는 지위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런 지위는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 법은 이 세상 어느 민족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에게 이와 같은 위대한 지위를 주셨다. 율법은 그 지위와 책임을 확인시키는 언약의 도구인 것이다.
십계명의 뒷부분, 즉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이웃에게 거짓을 행치 않고, 탐내지 않는 것(5-10계명) 등은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도덕법이지만,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 것,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1-4계명)에 대해서는 오직 이스라엘만이 지킬 수 있는 의무요 또 특권이었다. 후반부 여섯 계명에 대해서도 단순한 도덕법을 뛰어넘는, 이방인들과 성별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십계명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에게 주시는 거룩한 요구 사항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참으로 이스라엘 되게 하는 것, 모든 민족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보물"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율법은 신약 교회를 향한 교훈이 된다. 우리는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적어도 제4계명, 즉 안식일 계명은 절대로 지킬 수 없다. 주일 날 경배드리는 것을 이 계명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주일"이 안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십계명 외에서도 강조하고 있거니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표적이기 때문이다(겔 20:12,20). 안식일은 신약 교회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계명들, 즉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계명들은 그분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 할 계명들이다. 이 역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법이다. 우리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의 지위를 받았는데, 베드로 사도가 강조하고 있는 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독특한 백성"이 되었다(벧전 2:9). 물론 율법과는 상황이 다르다. 율법 안에서는 그것을 지켜야 이 지위가 보장되지만, 우리는 이 지위를 받았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계명들을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마 22:37,38)으로 제시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특하게 성별된 백성으로서 이 계명들을 지키되, 육신적인 열심으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지켜야 하며, 법 조항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선택해 불러 내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

율법의 예표에 대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재림의 예표이다. 율법이 반포되던 그 날을 성경은 "셋째 날"이라 묘사한다(출 19:16). 호세아 6:2에서도 예언적인 "셋째 날"에 대해서,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고 언급한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셋째 날에 살아나신다는 예언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부활하는 셋째 날이다. 즉 재림의 날인 것이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셋째 날이란, 일단 시내 산에 도착한 지 셋째 날이라는 말이지만, 예표적으로 재림의 셋째 날(셋째 천 년)을 예표한다. 19:11에서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에 산 위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셨고(강림), 16절에서는 "천둥과 번개와 짙은 구름과 나팔 소리"와 함께 내려오셨고(재림에 대한 분명한 예표), 또 그때 시내 산이 진동할 정도로 무서운 상황이 펼쳐졌는데(18절), 히브리서 12:26은 이 상황과 연관해서 재림 때 하늘과 땅에 진동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학개 2:6,7 참조). 따라서 율법은 천년왕국 때 반포되는 왕국 헌법의 예표가 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고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어서 출애굽기 22,2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추가적인 여러 법들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나 아직 돌판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24장에서 모세는 지금까지 받은 말씀들을 책에 기록하고 그 책에 언약의 피를 뿌린다(출 24:3-8).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다시 산으로 부르셨는데(출 24:12), 이때 모세는 여호수아를 대동했으며, 40일을 금식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성막에 대해 자세한 지시를 주셨고, 또 십계명의 돌판을 주셨다.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지만 돌판에 기록된 것은 십계명뿐이다. 그 사이에 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 사건이 벌어졌고,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노하여 돌판을 깨뜨린다(출 32장).
만약 돌판을 받음으로써 십계명의 내용을 처음으로 접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숭배에 대해서 크게 징계하실 수 있었을까?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돌판을 받기 이전에 이미 십계명의 말씀을 들었다. 이미 율법은 시작되었다. 비록 돌판은 아직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첫째와 둘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모두를 멸하시려고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로 징계를 약화시키어 소수의 무리를 죽이는 것으로 끝내셨다(32:28).
우리는 출애굽 전체 상황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은 백성임을 충분히 본다. 그들은 그들의 죄들로 말미암아 지속적인 징계를 당한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부터 불평했고, 지속적으로 반역했다. 하지만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크게 징계하지 않으셨다. 아직은 은혜로 다스리시는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진 후에는 각 범죄들에 맞는 형벌을 받게 된다.
율법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율법은 행한 대로 갚는 법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가져오는 법이다. 하지만 은혜는 생명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수없는 죄들을 범할지라도 일일이 책망받지 않고 용서받는 것은 그분의 은혜의 법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때때로 징계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법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살게 되면 복을 받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받는다는 영적 원리는 어디에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백성들은 그 지위와 특권에 맞는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독특한 보물이라는 지위를 받은 이스라엘이 그 지위를 던져 버렸을 때 징계받았듯이, 독특한 백성이라는 지위를 받은 우리가 그 지위에 맞지 않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율법 속에서 발견하는 진리인 것이다.

성막의 제정

성막은 모든 율법에 따른 규례의 핵심이다. 성막은 경배와 희생제, 즉 죄의 용서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막에서 드려지는 희생제의 종류와 그 내용들에 대해서는 레위기에서 더 자세히 강조되며, 출애굽기에서는 성막 제정에 대한 명령들, 그리고 그 명령들이 이행되는 내용이 다루어진다. 또한 성막에서의 규례를 온전히 행하기 위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성별시키는, 즉 제사장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이 자세히 제시된다.
성막은 경배의 장소이다. 따라서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백성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또 그곳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지시하셨다.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성막 중심으로 모이고 생활했다. 그들이 행진할 때도, 멈추어 있을 때도 성막을 중심으로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막에는 많은 기명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연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일 것이다. 그 안에는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증거판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치리하신 증거가 되는 것들이다. 그 중에 증거판은 "기록된 말씀"이다. 따라서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삶은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다. 또한 언약궤 위에는 그룹들이 있는 자비석(mercy seat)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인데, 번제단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제물이 바쳐지지만, 그 용서와 자비는 지성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이름이 "자비석"인 것이다. 따라서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삶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가운데서 사는 삶이다. 비록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까다롭고 지키기 어려운 법들 가운데 살았을지라도, 그 법에는 자비와 용서의 법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얻는 귀한 교훈인 것이다.
성막론은 주로 구원과 성도의 삶에 대한 예표로 다루어지곤 한다. 그것은 비록 율법에 속한 성막이지만, 그것은 용서와 구원을 이루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막 안의 구체적인 구조물들이 각각 큰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 짧은 글에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각 구조물들의 기본적인 영적 의미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번제단 :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한다.
2. 물대야 : 구원받은 성도들은 날마다 말씀의 물로 자신을 씻어야 함을 의미한다.
3. 차려 놓은 빵 : 영적 양식인 말씀을 상징한다.
4. 금촛대 : 하나님의 일곱 영, 즉 성령님을 예표한다.
5. 향제단 :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
6. 휘장 : 그리스도의 찢긴 몸을 상징한다.
7. 언약궤 : 하나님의 임재, 영광 그 자체이다. 하늘의 보좌를 예표한다.
그러나 성막은 임시적인 장소였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로서의 "하나님의 집"은 성막 이후에 성전으로 바뀌었고(솔로몬 성전), 그 성전이 파괴되고 재건된 후에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분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 그분은 예루살렘에 세워질 천년왕국 성전에 계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우리는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성별의 임무를 갖게 되었다. 구약의 성막은 철저히 거룩하고 성결해야 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귀한 영적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막은 또한 하늘에 있는 참 성막의 모형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산에서 보여 주신 모양에 따라 지었다. 성막의 원형은 하늘 자체인 것이다(히 9:24).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들어갔듯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인 셋째 하늘에 들어가셨다. 우리의 소망은 휘장 안 지성소에 계신 그분 안에 닻처럼 박혀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우리로 하늘의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모형이기도 한 것이다.

출애굽기 율법의 의의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비교해 볼 때, 출애굽기는 광야 생활 초기를 다룬다. 시내 산까지의 여정만 다루고 있으며, 몇 번의 불평과 죄악이 발견되기는 했어도, 반역으로 인한 40년간의 형벌이 주어지기 이전이다.
따라서 용서와 자비의 상황이며, 이때까지의 광야 생활의 고난은 하나님의 의도에 따른 훈련 과정이었다. 이들은 이 짧은 광야 생활에서 "생명의 빵"(만나, 출 16장)과 "생명의 물"(반석의 물, 출 17장), 언약의 규례와 경배(출 25-40장),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법도(출 20-24장) 등 모든 것을 체험했다. 전쟁도 경험했다(출 17장).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목적이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것만 남았다.
출애굽기는 이러한 역사적 상황이 더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그래서 율법의 내용도 자세히 기록하는 레위기와 달리 간단하고, 신명기와 달리 책망과 근본적인 내적 개혁에 대한 언급은 적다. 단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신정국가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들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율법을 시작한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의 중요성이 크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경배에 관련된 내용이 출애굽기 율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경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배우게 된다. 경배는 출애굽의 첫 목적이었고, 따라서 이집트(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성도들은 그분께 온전히 경배할 의무를 갖는다. 또한 그것이 광야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오늘날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경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배는 주일에 모이는 공식적인 예배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생활 가운데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다(롬 12:1).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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