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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새포도주(wine, new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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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6월호>
성경에서 포도, 또는 포도주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한 상징이고, 또 하나는 피의 상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때 곡식과 포도주를 약속하셨다(신 6:11; 7:13; 8:8; 11:14). 물론 이 축복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 조건부로 주어진 것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그 때를 맞추어 너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너희 땅에 내릴 것이니, 네가 네 곡식과 네 포도주와 네 기름을 거둘 것이요.』(신 11:14)이었고,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네가 아내와 정혼할 것이나, 다른 사람이 그녀와 동침할 것이며, 네가 집을 지을지라도 네가 거기에 살지 못할 것이며, 네가 포도원을 가꿀지라도 네가 그 포도를 거두지 못할 것이니라.』(신 28:30)였다.이처럼 축복의 상징인 포도, 혹은 포도주가 저주로 사용될 때도 있으며, 특히 이방인들을 향한 저주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신명기 32장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저주함에 있어서 『그들의 반석이 우리들의 반석과 같지 않음을,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는도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들에서 나온 것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들은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용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신 32:31-33)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포도주가 성경 예언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것은 “피”이다. 특별히 재림 때의 대살륙을 말하는 장면에서 원수들이 피흘리는 모습이 포도즙틀을 밟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나는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고, 백성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도다.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밟고, 나의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사 63:3). 요한계시록 14:18-20에는 한 천사가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틀에 던져 넣으니 그들의 피가 말고삐에 닿을 정도로 흘러 나온다고 말한다. 재림 때 지상에 있는 주님의 원수들에 대한 대살륙을 말하는 것이다.
포도와 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창세기 49:11과 신명기 32:14에 나온다. 특별히 신명기 32:14은 예수님의 피를 예언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의 버터와, 양의 젖과, 어린 양들의 기름과, 바산에서 기르는 숫양들과, 염소들
과, 기름진 밀알로 먹이셨으며, 또 너는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 문맥적으로는 포도즙을 말하는 부분인데 “포도의 순수한 피”라고 말하여 포도와 피를 연결시켰다. <개역한글판성경>에는 “포도즙의 붉은 술”이라고 되어 있어, 포도와 피에 대한 이러한 연결이 사라졌고, 따라서 이 구절에서 발견되는 교리를 찾을 수 없다.
포도 열매에서 나온 액체를 “포도의 순수한 피”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말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새 포도주”(new wine)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새 포도주”라는 말 자체가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65:8은 새 술, 즉 새 포도주가 병이나 가죽 부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송이”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포도송이에서 짜서 아직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 그것이 “새 포도주”인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으나(신 29:6), 이 “새 포도주”는 마셨다(신 32:14). 술에 대한 신구약의 전체적인 교훈은 “술취하지 말라.”(엡 5:18)일 뿐 아니라 마시기는 커녕 “쳐다보지도 말라.”(잠 23:31)였으나, 이 술, 즉 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허락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술을 즐기는 자라고 모함했으나(마 11:19) 예수님은 결코 술을 마시지 않으셨으며,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포도주는 “새 포도주”였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6:29에는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of THIS FRUIT of the vine)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마태복음 26:29에서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것은 술병이 아니라 “포도 열매”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사야 65:8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새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그분의 피는 순수하다. 그 피는 인간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다(행 20:28). 그분의 피는 인간의 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피는 죄 없으신 피고, 정결케 하는 피며, 영원하신
피다. 만일 예수님의 피가 단순한 인간의 피라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다. 성경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한다(신 12:23). 그리고 예수님 안에는 영생이 있다고 말한다(요일 5:11).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 안에 있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바로 그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히 구속받은 것이다(히 9:12, 골 1:14). 구약의 동물의 피는 사람들의 죄를 일시적으로 덮을 뿐이었으나(히 9:13),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한 번 뿌려짐으로써 죄인들의 양심까지 영원히 정결케 하셨다(히 9:14). 예수님의 피는 죄를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제거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보통 인간의 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분의 피를 상징함에 있어서도 보통 포도주와는 다르게 “포도의 순수한 피”인 “새 포도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성찬식)에 사용되는 포도주도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함에 있어서 발효된 술을 사용하는 것은 그분의 피에 대한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새 포도주”가 상징하는 또 하나는 성령이다. 술(포도주)은 종종 성령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에베소서 5:18은 『술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한다. 물론 여기서 술과 성령은 반대되는 입장에서 사용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명령하는 것은 술이 자신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자신을 주관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2:13에서 사람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도들을 보고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말했다.
특별히 마태복음 9:17에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펼쳐지는 새로운 경륜, 즉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사역하시는 경륜에 대해 예언하는 부분에서 “새 포도주”라는 말이 사용된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그렇게 하면 가죽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망가지게 되나,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부으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마 9:17). 구약시대에 성령은 몸에 들어오셨다가 나가시기도
했다(사 63:11, 출 31:3, 민 27:18, 느 9:30). 그러나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영은 구속의 날까지 내주하신다(요 14:16, 엡 4:30). “새 포도주”가 성령을 말한다면 자연히 “새 가죽 부대”는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백성”을 말한다.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로 묘사되는 이스라엘은 이 요구, 즉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받아들여야 하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새 포도주(성령)가 새 가죽 부대(새로운 백성)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터지지 않고 포도주를 보존하게 된다(“내주하시는 성령”을 간직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9장에서의 “새 포도주”는 새로운 경륜 속에서 새롭게 사역하시는 성령을 예언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 포도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새 포도주인 성령님께서 내주하신다는 것이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번영과 축복으로 주신 포도주보다 더 큰 축복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 새 포도주(그리스도의 피든지 성령님이든지)는 영원한 것이며, 따라서 그 축복도 영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