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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공부하는 축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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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7월호>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1:19).
이 글은 성경의 “확실한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전천년주의적 성경해석 체계를 살펴보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신앙은 무엇인지를 확실히 점검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이름있는 학자들, 목사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제각기 성경을 나름대로 풀고 있다. 억지로 성경을 푸는 자들로 인해 성경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책으로 오해되었고, 특히 종말론과 관련해서는 각종 이단들이 난무하여 올바른 성경적 교리마저 매도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무오한 그분의 말씀을 통해 확정하신 완전한 왕국을 알고 기다리며 소망하기보다는 그들의 힘(과학, 종교, 교육, 철학 등)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천년주의는 후천년·무천년주의처럼 종말론에 대한 여러 이론 중 하나가 아니라 이것만이 올바른 성경적 교리이다. 전천년주의를 알면 성경에 나타난 “확실한 예언의 말씀”에 눈을 뜨게 되며,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성경의 3분의 2 이상을 바로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러면 창세기 6장의 “노아의 날”과 19장의 “롯의 날”이 의미있게 되며,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이 대환란 때 있을 재앙들의 유형임을 알게 된다. 또한 레위기 26장의 축복들과 저주들이 천년왕국의 축복과 대환란의 저주들임을 알게 되며, 민수기 21-24장이 재림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명기 27-29장도 대환란 때 이스라엘이 실제로 겪을 저주들이며, 여호수아서 전체는 재림의 유형임을 알게 된다. 왜 성령님께서 두 번이나(행 7:45, 히 4:8) “여호수아”를 “예수”라고 하셨는가도 깨닫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판관기 7장은 아마겟돈 전쟁과 재림으로 상징되며, 욥기 42장 전체는 다니엘의 칠십째 주의 후 3년 반, 즉 42개월을 의미한다. 시편 69,72,74편은 환란을 다루고, 시편 68,78,110,114편은 재림을 다루며, 시편 45편은 어린양의 혼인식을, 시편 99편은 천년왕국을 보여 준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의 대부분도 대환란, 아마겟돈 전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을 보여 준다. 이같이 명백한 성경의 주제(왕국과 재림)를 무시하는 자들은 눈과 귀와 머리를 가지고 있어도 결코 성경을 보거나 듣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은 다음의 주제들을 다룰 것이다.
1. 휴거
2. 그리스도의 심판석
3. 어린양의 혼인식
4. 대환란
5. 그리스도의 재림
6. 천년왕국
7. 사탄의 최후의 반란과 백보좌심판
8. 새 예루살렘
예언을 공부하는 축복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누군가가 답해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늘 이런 질문들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첫째, 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인 왕국을 지상에 세우실 것을 기대하는가? 다윗은 그의 위대한 자손이 그의 왕국을 이 땅에서 영원히 이어갈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때에 다윗의 아들이 일어나 유대의 권좌를 세울 것을 기대했다. 현자들도 “유대인의 왕”을 찾으러 왔고, 심지어 헤롯도 태어날 왕이 이스라엘에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계했던 것이다. 또한 사도들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이스라엘의 왕국이 회복되길 기다렸다(행 1:6).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땅에서 문자적인 왕국이 세워질 것을 기대할 만한 원인들을 제공하셨는가?
둘째, 전쟁으로 찢긴 이 세상에 진정하고도 영원한, 전세계적인 평화가 올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노력은 모두 실패했고, 그들의 평화 조약들은 공격용 무기들로 대체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문화, 문명, 그리고 과학은 전쟁을 더욱 잔인하고 흉학하게 만드는 데만 성공했을 뿐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과연 평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 어떻게 가능한가?
셋째, 죄 때문에 이 세상에 있게 된 저주가 제거되고 사람들은 새로운 에덴 동산에서 살게 될 것인가? 여전히 잡초는 곡식보다 더 쉽게 자란다. 과학은 끔찍한 천재지변이나 각종 난치병에 속수무책이다. 질병은 갈수록 늘어가며, 가뭄이나 홍수, 지진, 태풍의 위력은 이 땅을 할퀴고 지나간다. 이 모든 지구의 신음소리와 진통은 죄 때문에 왔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은 에덴에서 모든 동물들과 자연 속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한 적이 있는가?
넷째, 이스라엘의 영광은 영원히 떠나 버렸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그리고 사도들의 민족을 영원히 버리셨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셔서 그들의 땅인 카나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게 하실 것인가?
다섯째,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데, 천국은 영원 동안 어디에 있을 것인가? “천국”은 몸이 없는 영들만 모이는, 신비스럽고 불확실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실 왕국을 말하는 것인가?
1. 이 질문들은 성경에서 답해 주고 있다
성경은 이 질문들에 대해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여러 번에 걸쳐 답변하고 있다. 앞에 있는 다섯 가지 질문들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성경에서만 제시된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라 하더라도 이 질문들에 대해 정확히 답변할 수 없다. 성경은 너무나 분명히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2. 성경의 예언 중 절반 이상은 앞으로 성취될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 미래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의 초림, 그의 탄생, 그의 고난,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몸의 변화, 그리스도의 심판석,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식, 지상에서의 대환란, 세계를 지배하는 적그리스도의 등장, 땅에서의 마지막 큰 전쟁, 그리스도의 왕국의 세워짐, 약속된 땅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모임, 유대인들의 회심, 다윗의 왕국의 회복, 사탄의 최후, 죄인들의 심판, 많은 저택들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대한 수백 가지 상세한 부분들을 알지 못한다.
성경의 예언 중 절반 이상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이미 성취된 예언과 같이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쉽게 이해될 수 있게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림과 같이 분명히 예언되었다. 예수님의 초림과 관련된 48가지의 예언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것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것 등은 모두 문자적으로 예언되었고,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성취된 예언들의 파노라마를 간단히 펼쳐 보자. 메시야가 은 30에 팔리고(슼 11:12), 친구도 그를 대적하며(시 41:9),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슼 13:7), 거짓 증인이 그를 고소하며(시 35:11), 그를 참소한 자 앞에서 그 입을 열지 않을 것이고(사 53:7), 매를 맞으며(사 50:6), 겉옷이 나뉘어지고(시 22:18), 원수들이 조롱하며(시 22:7,8), 원수들이 쓸개를 주고 초를 마시게 하며(시 69:21), 뼈가 꺾이지 아니하고(시 34:20), 범죄자와 함께 죽으며(사 53:12), 그를 배반한 값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살 것(슼 11:13)과 부자의 묘에 장사될 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언했으며, 이 모든 것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어떤 예언도 은유적이거나 풍유적으로 성취되지 않았다.
무천년, 후천년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명백한 성경구절들을 부인하고 은유적인 해석으로 풀려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들의 불신앙이다. 자기들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들이 나왔을 때 그들은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이나 창세기의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무지 때문이다. 구약성경에는 같은 장, 심지어 같은 절에서도 초림과 재림이 함께 다뤄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예를 보여주셨는데, 누가복음 4:19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2의 일부분만을 인용하시고 멈추셨다. 이는 “주의 기뻐 받으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복수의 날” 사이에는 약 2천 년의 교회시대가 있는 것이다. 같은 성경 구절에 있지만 하나는 초림을 또 하나는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복수”로 가득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중보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복수의 날”이라고 예언한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택하신 백성 유대인”을 적그리스도로부터 구원하러 오실 재림의 때를 말하고 있다
성경의 예언을 연구하는 중요한 이유는 성경의 ⅔가 모형, 상징, 직접적인 진술로 된 예언들이며, 구약 예언의 ½ 이상과 신약의 거의 대부분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사건들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어두운 세상이어서 베드로후서 1:19의 말씀처럼 우리들에게는 이 “어두운 세상”을 비춰 줄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3. 성취되지 않은 예언도 미리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의 예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이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믿었던 현자들(마 2:1,2)이나 시므온(눅 2:26), 안나,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이전에(요 7:31) 예수님을 고대하고 있었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초림 이전에 미리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들도 성경의 예언에 관한 연구를 무시하고 거절한다면,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예비되지 못할 것이다. 무지와 불신앙으로 가득찬 학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들은 요한에게 주신 예수님의 계시를 전적으로 무시해 버린 것이다. “계시”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것을 보여 주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펼쳐 보이셨지만 그들은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언된 그리스도”이자 제자들이 사랑했던 “역사적 그리스도”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시고 성경을 펼쳐 주셨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눅 24:32). 어려운 수수께끼도 정답을 알고 나면 얼마나 쉬운가?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해질 것인가? 왜냐하면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다(계 19:10). 다시 말해서, 성경의 모든 예언의 목적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는 신약뿐 아니라 구약, 즉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그렇다면 예언에 대한 연구는 얼마나 중요한가?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마태복음 24:37-42과 누가복음 17:26-30에서 노아의 날과 롯의 날에 비유하셨다. 예를 들어 이 두 사건만 살펴보더라도 노아나 롯과 아브라함이 모두 앞으로 될 일들에 대해 확실히 알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노아는 홍수에 대한 예언을 무시하거나 비유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고, 문자적이고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알았기에 홍수 이전에 방주를 지었던 것이다. 소돔 밖에 있던 아브라함도 악한 성읍들을 불태울 줄 믿었기에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드린 것이며, 소돔 안에 있던 롯도 그 예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기에 가족들을 이끌고 황급히 피하였던 것이다.
4. 예언을 공부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특별한 축복들
주님께서는 예언들을 읽고, 듣고, 이해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너희 눈은 볼 수 있고 또 너희 귀는 들을 수 있으니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기 원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기 원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6-17).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겸손하고 예언에 관한 그의 가르침에 주의하는 자들에게 주실 복을 예비해 두셨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거기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니라』(계 1:3). 계시록의 영감받은 제목은 첫 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기억하라. 예언은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언들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언들을 읽고 들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