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분류

배교한 교회들의 세속화된 사역들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교회사의 악순환”은 다섯 개의 “M”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한 “사람”(Man)이 나타나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알게 함에 따라 “운동”(Movement)이 일어난다. 그러나 후계자들이 사역을 제도화하고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기계”(Machine)적으로 수행하면 “기념비”(Monument)만 남고 원래의 복음 전파와 성경적 교육은 온데간데없어져 배교가 일어난다. 기념비마저 세월 속에 스러지고 나면 복음이 아예 전파되지 않았던 시절처럼 “물질주의”(Materialism)만이 만연한 지경이 된다.

위와 같은 악화일로의 과정을 역행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처음부터 “운동” 다음의 단계인 “기계”적 수행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운동”과 “기계”적 수행 사이의 어딘가에서 시작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기념비”의 상태, 즉 “배교”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의 교회들은 “기념비”마저도 치워 버리고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다. 내적인 상태는 물론, 심지어 외적으로도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완전한 세속화”로 말이다.

교회들이 “사역”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면, 세속화가 얼마나 심각한 정도로 진행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지난해에 교수, 목사, 교사,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크리스천 오피니언 리더” 140명을 대상으로 향후 한국 교회가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중복응답 가능). 여기서 1위를 차지한 응답은 “목회자의 도덕성 강화”(71%)였다. 그들 스스로도 목사들의 부도덕을 자인한다는 점은 쓴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성경(복음)에 토대를 둔 사역과 설교”(44%)가 고작 4위로 꼽혔다는 것이었다. “다음 세대 계승을 위한 사역 활성화”(56%)가 2위, “지역사회 돌봄 활동 강화와 저출생 극복 운동 전개”(46%)가 3위로 “성경(복음)”을 앞질렀고, “기후 위기, 인구 감소 등 국가적·국제적 위기에 대한 해법 모색”(41%)이 간발의 차이로 5위에 위치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이 말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마 12:34),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일의 중요성보다 “이제 우리가 다 망하게 생겼다.”라는 위기감을 훨씬 더 크게 느끼고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었다. “다음 세대,” “돌봄 활동,” “저출생,” “기후 위기,” “인구 감소” 등을 운운하는 것은 기독교라는 “껍데기”마저 상실해 버린 응답이었다. 한국 교회는 정말로 “기념비” 단계를 저 멀리 벗어나 버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교회들이 위와 같은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국민일보는 「영어 태권도에서 문화센터까지... 젊은 도시 교회가 사는 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세종시에 있는 모 교회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의 목회 철학이 “아이들이 오고 싶은 교회를 만들어야 부모도 따라 온다”고 밝힌 이 교회의 담임목사는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 20명과 함께 “영어동요모임”으로 교회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300명 넘는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 교회에서는 이제 평일에 “영어 태권도”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한다. 교회들이 이야기하는 “다음 세대 사역”이란 바로 이와 같은 “사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돌봄 활동”은 이미 성업 중이다. 경향신문은 「‘저출생 극복’ 앞세워 ‘돌봄 공백’ 파고드는 개신교... 교회의 ‘선’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상북도가 예산 2억 5천만 원 규모의 “종교 시설의 돌봄공동체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학생도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하라고 안내한다”는 포항시 관계자의 말을 함께 전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첫째를 출산하면 200만 원, 둘째는 300만 원, 셋째는 500만 원, 넷째 아이부터는 1,000만 원씩을 교인들에게 지급한다는 사실은 조선일보, 매일경제 등에 보도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그렇게 최근 5년 동안에만 총 27억 9천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매일경제는 이영훈 담임목사가 “저출산 문제는 단지 국가의 행정 과제가 아닌, 교회가 복음의 생명을 지키며 실천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라면서, “앞으로도 정부와 손잡고 생명을 존중하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CBS 뉴스는 지난 6월 「탄소중립을 위해 ‘지역 교회-지자체’ 협력모델 나온다」는 소식을 보도했는데, 서울 동대문 지역 교회들과 동대문구청,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교회 활동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유미호 센터장은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하여 교회가 배출한 탄소량만큼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면 탄소 중립을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떳떳하게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유 센터장의 설명이었다.

이상의 “사역”들은 세상 기업들이 수행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차이가 없다. 이는 교회들의 목표가 기업들의 목표와 같다는 증거다. 각종 사회 문제에 돈을 투자하여 사람들에게 우선 박수를 받고, 그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사탕이나 커피와 함께 주보를 나눠주며 “전도 활동”을 하던 예전 교회들의 세속적 행태는 이제 귀여운 수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기업들과는 달리 교회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2023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21.0%에 지나지 않았다. 2020년에 발표한 31.8%보다 10.8%나 하락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비슷한 현상에 대해 말씀하신 바 있다. 『네 음란함에는 다른 여인들과 반대되는 것이 네게 있으니 음란한 짓을 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아무도 없음이며 네가 대가를 받지 않고 대가를 줌이라. 그러므로 네가 다른 음녀들과 반대되는 것이라』(겔 16:34). 즉 교회들은 세상과 뒤섞이면 뒤섞일수록 오히려 더욱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해갈되지 않는 인기에 대한 목마름만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별된 자리에서 세상을 향해 호령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할 때에만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하고, 그 메시지를 수용한다. 교회는 세상의 죄인들을 향해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고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사 57:21)라고 외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과 친구가 되기 위해 기꺼이 세상과 원수가 되어(약 4:4), 세상을 향해 누구라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타는 지옥으로 간다는 “혐오 발언”을 일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복음 전도자들이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미국을 휩쓸었을 때, 세상은 교회 앞에서 벌벌 떨었다. 빌리 선데이가 순회 설교를 다녀간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술집들이 문을 닫기까지 했다. 샘 존스가 복음을 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샘 존스가 지나가고 나면 술집, 극장, 도박장 등이 폐업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강단에서 복음과 진리를 외친 것밖에 없었지만, 그 사역의 힘은 그렇게나 강력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란 그런 것이다(히 4:12). 작금의 교회들의 귀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사역, 곧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고 정의하셨다(요 6:29). 따라서 누군가 “사역”을 하려거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교회에 와 주세요.”라고 구걸할 게 아니라, 오히려 “교회에 오는 건 둘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구주에 대해 더욱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요 5:39). 배교한 교회들의 시시껄렁한 삯꾼 짓에 동참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역을 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받은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그렇게 함으로써 회중들도 그와 똑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하라(딤후 2:2). 그 “옛 길”(렘 6:16)에서 벗어나 꾀를 부릴 생각일랑 접어 두고, 바로 그 “하나님의 일”을 하라! BB

전체 989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