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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을 어렵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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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8월호>
우리 주위에 복음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복음을 어렵게 만드는가? 복음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며, 복음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은 진리를 잘 모르고 전하는 사람들이다.이 시대의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다. 복음을 접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알기 이전에는 복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죽음을 향하여 분주히 발길을 옮기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허물과 죄로 점철된 인생을 그런 것이려니 하고 살아온 것이다.
자기 의를 이루려고 술도 끊고 담배도 끊어보았던 사람들도 있고, 남의 여자에게 곁눈질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삼가하고자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모 형제에게 못 다한 사랑을 베풀어 보자며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실수로 인하여 감옥 생활을 한 사람들, 남의 사업을 파산하게 한 사람들, 남의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사람들, 심지어 자기의 잘못으로 남의 생명을 잃게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통한 구원은 어떤 사람의 과거의 신분과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미래의 신분과 행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인류의 죄를 위한 것으로써 모든 사람(자신을 포함한)의 죄를 완전히 용서해 놓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이요 그 사실을 믿었던 사람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
이 사실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생각에 따라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그 사실을 믿었기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8,9).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잘 이해했다고 해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서너 살 된 어린 아이가 엄마가 말하는 대로 믿고 따르는 것과 같은 자세가 믿음이다. 자기의 뜻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대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나무에 매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으니』(신21:23)라고 하신 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신 것이다(갈3:13).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은 나무에 매달려 죽으셔야 했다(벧전2:24).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9:22).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기록된 그대로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이 4번이나 반복되는 것이다(롬1:17, 갈3: 11, 히10:38, 합2: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제시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요, 사탄의 복음일 뿐이다 : 최선을 다하라. 주의 종을 섬기라. 황금률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안식일을 지키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정직해야 된다. 침례를 받아야 한다. 자선사업을 해야 한다. 이웃 사랑, 아프리카 사랑, 새벽기도, 금요 철야기도를 해야 한다. 일곱 가지 헌금 봉투에 헌신적으로 바쳐야 한다. 등등.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고 이런 것만을 행한다면 죽고 난 후에 곧바로 지옥에 가게 된다.
사람이 선을 행하는데 나쁘다고 할 사람도 없고 선을 행하는데 금할 사람도 없다. 다만, 인간의 자선이나 선행을 구원과 관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제시한 구원계획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지 그 사람이 어떤 선행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평가해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 기력이 다해서, 피를 다 흘리신 후였기 때문에 죽어 간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에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큰 음성으로 소리 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더라』(마27:50, 막15:37, 눅23:46). 십자가 위에서 피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이 어떻게 큰 소리를 지를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국가를 위하여, 직장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글자 그대로 죽은 것이다. 용감하게 죽었건, 스스로 죽음을 택했건, 남에게 죽음을 당했건 간에 그들은 한 번 목숨을 잃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버렸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이 다시 못 돌아올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피 울며 애석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사실 것을 알고 죽으셨다.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요10:17). 부활할 수 있음을 알고 생명을 내놓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이 부활하는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인간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그래서 이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롬1:16). 인종에 관계없이, 죄의 과다에 관계없이, 죄의 종류에 관계없이, 행위에 관계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명령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요10:18). 주님의 죽음은 유대인들의 항거와 로마인들의 권세에 못 이겨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섭리적인 계획에 의하여 여러분과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것은 A.D.30년에 종교적, 정치적 기류에 휩쓸려 나사렛의 젊은 목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해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주님께서 태어나시기 1천 년 전에 예언하신 일이 정확한 시점에서 성취된 사건으로 이 우주가 창조된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것이 곧 사람이 구원받으면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요11:25, 26). 이 말씀을 믿을 믿음이 있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인간의 행위와 구원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인간의 행위는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는 구원받고 난 사람들의 상과 유업에 관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며,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양심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행위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믿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일단의 행위만 하고 나면 만족하려 한다. 사람들은 자기 의를 이룩해서 그 의로 자기가 의롭게 되었음을 자랑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인간의 의를 걸레같이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사64:6). 하나님께서 존중하시는 것은 사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해 놓으신 일에 쉬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행위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다.
믿음이 없으면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이방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며, 믿음이 없으면서도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함으로써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완성해 놓으신 일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아직도 자기가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무엇인가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신다고 말씀하시고, 죽음에 순종하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그 일을 다 이루신 것을 증명해 보이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고 한 사람의 종교 지도자였더라면 그 분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는 것으로 끝났다면 그분을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왜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애써 길가에서 설교하고 구령하겠는가?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삯이 사망이기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격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기 위해서는 처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죄인임을 시인하고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요1:12,13).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효과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같은 효과인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고, 병든 사람을 치유해 주고, 주일에 일을 하지 않고, 사역을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완성해 놓으신 그 일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고 싶은가? 그러면 그 분이 당신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하늘로 가는 열차를 타라. 그러면 가게 된다. 그런데 당신은 내려서 그 열차를 밀고 있지 않은가? 그 열차는 당신의 힘으로는 단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은 하늘로 가는 열차에 올라타면 된다. 그럴 힘도 없는가! 지금 십자가의 예수님을 쳐다보라. 열차를 당신의 힘으로 밀려 하지 말고 그 열차에 타면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믿고 그 분이 완성해 놓으신 그 일을 신뢰하면 된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많은 죄들 중에서 단 한 가지 죄라도 해결하지 못한 죄가 있었다면, 그 분은 부활하지 못하고 무덤 속에 갇혀 썩어버렸을 것이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4).
이렇듯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약속하신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노력이 아니라 믿음만이 요구되는 것이다. 구원받으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요8:32).
당신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주님의 말씀대로 그 분이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사실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