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 분류

틀린 성경이 개혁의 불길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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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2월호>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은(1522년) 그에게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한 사람은 영국 색슨족 출신으로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렸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였고 또 한 사람은 보헤미아의 존 후스(John Huss, 1369- 1415)였다. 위클리프는 1366년 왕궁의 궁전 목사가 되었고 1374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384년 구라틴 역본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는데 우리에게는 위클리프 성경으로 알려져 있다.
위클리프는 안티옥의 그리스도인들처럼 모든 문제에 있어서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로 믿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성경에 일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으며 성경과 상치되는 것은 그것이 누구의 말, 누구의 책, 누구의 설교든 거짓되다고 믿었다. 당시에는 로마카톨릭이 그들 신도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고 성경을 읽지 못하게 했던 암흑 시대였기에 많은 신도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구원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죽어 낙원에 가고 지옥에 가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면서 제도에 묶여 교회만 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 교황, 추기경, 대주교, 사제들은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것은 오늘날 교단 교회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경은 생명의 양식이며 기도는 호흡이기에 성경을 읽지 않고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 해도 고사(枯死)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우리 나라도 구원만을 강조하는 구원파들이 있는데 그들은 기도도 하지 않는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며 개역성경만 뒤적거리고 있으나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교황은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경은 물론이요 그의 모든 저작들을 정죄하여 금서 조치했다. 위클리프는 1384년 교회에서 예배 도중에 죽었다. 그가 죽은 지 약 30년이 지난 후에 라테란 공회(1413)는 그의 유해를 파헤쳐 불태웠으며 1415년에 열린 콘스탄스 공회에서는 그의 책들을 불태우도록 명했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겠다며 이행했던 마귀의 짓들이 하나님께 영광이란 이름하에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들인가?
당시에는 로마카톨릭밖에 없었기에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곧 저주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카톨릭이 교회를 그들 방식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가리는 일이요, 신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깨우치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런 방식은 마치 공산주의 집단이 인민들을 막스와 레닌의 이론으로 세뇌시키는 것과 같다. 세뇌는 교육이 아니다. 세뇌는 마귀의 교리로 마귀의 추종자를 만드는 마귀의 술책인 것이다. 대부분의 교단 신학교들은 성경 전체를 가르치지 않고 그들의 교단 교리로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보헤미아의 존 후스(John Huss, 1369 -1415)는 위클리프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후스는 1398년 프라하 대학에서 신학 강사로 일했으며 1401년에는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후스는 존 위클리프의 책들을 모국어로 번역했으며 카톨릭 미사를 거부했다. 성당과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 설교했으며 그는 설교에서 사도적인 교회에는 교황, 추기경, 대주교들이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참된 교회는 베드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신 32:4, 고전 10:4, 벧전 2:8). 이 때문에 후스는 당시 제도 교회의 모든 교리와 그 영적 지도자에게 대항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마귀의 세력들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 진리의 지식이 전파되는 일에 견딜 수 없어 한다. 종교행위와 믿음은 언제나 여기에서 구분되며 판단된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교회를 들고 나오지만 그들 안에는 구원의 복음도 없고 진리도 없는 빈 건물뿐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바른 성경과 그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진리의 지식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겨오는 혼들도 아니며 구원받은 혼들을 바른 성경으로 양육하는 교육도 아니다.
로마카톨릭이나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이 바른 성경을 정착시키고 바른 교리를 정립시키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 교회들은 록 카페니, 영화 상영이니 하는 문화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은 곳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 세상이 살기 좋은 곳으로 된다는 설교를 해야 인기를 얻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말씀이 심겨지지 않으면 육신에서 얻을 것이란 썩은 열매밖에 없다는 것을 쉬 알게 된다. 복음은 순교의 피로 자랐기에 진리란 에어컨이나 히터 켜진 방 안에서는 결코 자라날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려면 『너희는 가서...』(마 28:19)라고 한 것처럼 해야 한다. 교회 안에 몇천 명이 있어 아무리 떠들어대도 복음은 전파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려면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가서 전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려면 세상이라는 시장으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왕 되심을 외쳐야 한다. 진리란 폭정이나 압제에 의해서도, 거짓 교리나 교세에 의해서도, 거짓 수단과 방법에 의해서도 가려질 수 없는 것이다.
1415년 존 후스는 교황 요한 23세와 시그스문트(Sigsmund)에 의해 화형당했다. 존 후스의 순교는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전 국민이 한때 후스를 따랐던 것이다. 교황은 이들을 제압하려고 독일에서 군대를 데려와 이들을 쳤으나 그들은 번번이 패배하고 말았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독일 군대는 한꺼번에 팔만 명에서 십오만 명까지 동원되어 공격했지만 한 전투에서 삼만 명 이상을 잃는 대신 보헤미아에서는 단 삼십 명의 희생자만 잃은 정도였다. 마치 여호수아가 카나안 일곱 족속들과 치렀던 전투와 같았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보헤미안의 무리들을 철저하게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교황은 독일군을 일으켜 다섯 번이나 공격하였지만 전쟁은 매번 패배하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보헤미안의 지스카(Ziska)라는 영웅을 전쟁 지휘관으로 세우셨다. 지스카(Ziska) 장군은 맹인이었다. 어린 시절 한 쪽 눈을 잃었고 다른 한 쪽은 전쟁에서 잃었다. 맹인이 어떻게 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가? 이것은 신비이고 기적이다. 그는 참모들로부터 적의 위치와 전열과 배치를 설명 듣고 주위의 지형, 산의 장애물 등, 또 아군의 위치와 병력을 설명 듣고 병력 이동을 지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고 그렇게 전투를 하면 백전백승이었다. 지스카를 뒤이은 프로코피우스(Procopius) 장군 역시 명장이었다.
모라비아의 진젠돌프 백작 역시 존 후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존 후스의 개혁은 마틴 루터의 개혁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존 후스가 제안한 몇 가지 사항을 로마카톨릭이 받아들였더라면 후스는 그런 대로 로마를 용인했을는지도 모른다. 존 후스는 개인의 혼의 구원에 관해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달랐다. 루터는 자신의 구원 문제에 집중했다. 그의 관심은 “잃어버린 죄인인 내가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가?”에 있었다. 육신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가? 진리의 전달 매체가 되지 못하면서 진리를 외칠 수 있는가? 전쟁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복음이 전해질 수 있으며 진리가 승리할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딤전 6:12).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처형하기 위해 잡으러 온 군사들 중 하나의 귀를 칼로 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도로 그 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들은 모두 칼로 망하리라. 너는 내가 지금이라도 내 아버지께 청하여 나에게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즉시 보내 달라고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같이 되리라고 한 성경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마 26:52-54) 영적인 일은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으로 이룩되지 않고 영적 능력과 방법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로마카톨릭에 항거한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소위 개신교도들(Protestants)은 마틴 루터를 회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은 루터교를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그가 종교개혁을 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잃어버린 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시킴으로써 성경대로 실천하여 마귀의 세력들을 대항하게 하는 것이요, 그 성도들을 보호 육성하는 교회로써 로마카톨릭의 마귀적 교리를 철저하게 배격하자는 것 아닌가! 이런 목적을 이루려면 성경대로 실행하는 길밖에 없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은 바로 성경대로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실행했던 것이 무엇인가? 성경 번역이었다. 독일 <루터성경, 1534>은 헬라어 <표준원문>에서 번역하였다. 바른 성경이 없이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바른 성경이 없으면 영적 구심점을 이룰 수 없다. 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믿음을 결집시킬 수도 없게 된다. 분명히 마틴 루터가 시작했던 종교개혁은 꺼져 버린 진리의 불빛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은 시들어 버렸고 엉뚱한 일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가장하고 나왔기에 세상은 그때보다 훨씬 더 어두워져 버렸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한 사람들이 성경 없이 교회를 운영하고 선교를 말하기에 열매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바른 성경을 배제했기에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한국식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식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던 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이 했던 일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도 아니요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는 일도 아닌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존 위클리프나 존 후스나, 마틴 루터가 바른 성경적 지식이 없었더라면 개혁을 외칠 수 있었겠는가? 많은 뜻있는 목사들이 개혁을 외치고 있고 개혁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으나 그들의 외침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교단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개혁을 실현시키려면 교단에서 나와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대로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다. 지난 130여 년 동안 바른 성경이 없었더라면 바른 지식이 있었겠는가? 바른 성경이 없었기에 종교개혁이 필요한 한국 땅에 개혁자가 나올 수 없었던 것임을 알겠는가? 몇십만 명의 쭉정이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진리와 무관한 그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진리를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지옥을 택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시겠는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필요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쉬우셔서 그런 사람들이라도 불러 예배실을 채워야 하겠는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마귀의 자녀들이다. 그들을 제자 훈련 프로그램으로 아무리 잘 훈련시킨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마귀의 자녀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의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겠는가?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대신 비성경적 행위들을 가르쳤다. 추종자들이 무지해야 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들도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바른 성경을 소개하지 않음으로써 마찬가지로 그들을 무지하게 만들어 교회가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둔 열매가 무엇인가? 배교인 것이다. 성경적 믿음 없이 교회만 다니게 하는 것은 저주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는 군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배교가 만연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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