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개역개정판을 고발한다 분류

형식만 갖춘 성서, <개역성경 /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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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2월호>

<한글킹제임스성경> 1 이제 너희가 내게 쓴 것들에 관해서는, 남자가 여자를 접촉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나 2 음행하지 않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의 남편을 둘지니라. 3 남편은 아내에게 합당한 애정을 주고 아내도 남편에게 똑같이 하라. 4 아내가 자기 몸을 주관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관하며 이와 같이 남편도 자기 몸을 주관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관하느니라. 5 너희는 서로 권리를 빼앗지 말라. 다만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잠시 떨어져 있다가 다시 합하라. 이는 사탄이 너희의 자제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성경/개역개정판> 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 1절에서는 『이제』, 『내게』 두 단어가 삭제되었고, <개역성경> 2절에서는 음행하지 『않기 위해』가 삭제되었으며, 3절에서는 『애정』을 “의무”로 변개시켰고, 4절에서는 『주관』을 “주장”으로 바꿨으며, 5절에서는 『금식과 기도』에서 금식을 삭제시켰다. <개역성경>을 팔아먹고 있는 대한성서공회는 사실 성경과는 전혀 관계없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다룰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에 삭제되거나 변개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한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면 원문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령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그 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쓰시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종들은 번역에 있어서나 보존에 있어서나 원어에 있어서나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삭제시키고 변개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궁수가 활을 쏠 때 과녁을 겨냥해서 쏘듯이 번역자도 최대한 과녁을 향해서 쏘아야 한다. 화살이 과녁 밖으로 빗나갔다면 어떻게 되는가? 위험한 짓을 한 것이다. 번역자가 헛짓을 할 때 그것은 보존과 관계없는 장난질을 한 것과 같다. 대한성서공회 안에는 그런 번역의 가치와 책임감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개역개정판>을 내기 위해 <개역성경>에서 7만 군데 이상을 고쳤다 해도 <개역개정판>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기준이 되는 성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대량의 개정 작업을 했을 때 저본이 무엇이었는가? 없었다. 이름만 신학자라는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잘못된 <개역성경>을 다시 잘못되게 만든 것이 <개역개정판>이다. 알겠는가?
우리가 그 <개역개정판>에서 오류를 찾아내려면 수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필자의 글 역시 그런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지 않는가! 필자가 <킹제임스성경>을 한글로 번역했을 때 한 절을 가지고 하루 온종일 씨름했던 구절 몇 개가 있었다. 지금도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비교해 볼 책도 없고 오직 성령님께 기도로 여쭤볼 수밖에 없었다. 창세기 1장에서 3장을 번역했을 때 혹시나 오류를 범할까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번역한 성경을 정동수가 하룻밤 사이에 도둑 고양이처럼 후다닥 베껴 <흠정역>이라는 것을 출간하여 생명의 말씀사를 통하여 팔아먹고 있다. 이것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도둑 고양이가 성령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는가?

2. 성경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가? 성경의 생명은 영속성(perenniality)에 있다. 이 영속성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한 나라의 국왕이 영적 분별 없이 어떤 성경을 들고 자기 나라는 그 성경을 써야 된다고 선언해서 그 성경이 그 왕의 제위 동안 보급되었다면 그것은 영속성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개역성경>처럼 출처도 모르는 중국 성경을 누군가가 한글로 바꿔놓고 성경 독자가 취사 선택할 여지없이, 어쩔 수 없이 그 성경을 써왔다면, 그래서 매번 찍어냈다면 그것 역시 영속성에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거대 교단이 우리 교단은 이 성경을 쓰겠다고 결정해서 쓰게 되었다면 그것도 영속성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성경을 출간한 개인이나 기구가 그 성경을 갖가지 경로를 통해서 한 권 사달라고 판촉해서 보급하는 것도 영속성에 해당되지 않는다(정동수). 또 대한성서공회 민영진 총무가 <표준새번역>이나 <개역개정판>을 들고 다니며 갖가지 판촉 세미나를 해서 보급하고 교단 대표를 만나서 회유하여 판매한 것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글개역성경>은 한글도 모르는 외국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번역 위원이란 직함을 가지고 손대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나라의 성경이 온전하게 될 수 있었겠는가? 성경의 영속성이란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 번역자가 나와서 번역을 완성하고 동시에 그런 성경의 출현을 절대적으로 고대하던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틴데일이 1537년 죽음을 무릅쓰고 영국인에게 영어로 된 성경이 있게 하자는 데서 번역하였고, 결국 그 성경을 번역함으로 인해 화형 당하면서 “주여! 영국 왕의 눈을 뜨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주님께서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펴내 주셨다. <틴데일성경>은 <킹제임스성경>과 90% 일치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서문을 보면 알겠지만 필자 역시 우리 민족에게 바른 성경이 있게 하자는 일념이 번역의 동기였다. 1994년 4월 12일(히 4:12)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된 이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판매되어 오고 있으며 현재 28판에 이르렀다. 동서남북도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일부 장로교 목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른 성경의 필요를 안 성도들이 매일같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속성이며 성령님이 주관하신다는 증거인 것이다.

3. <개역성경>대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니”는 어떤 교훈도 주지 못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남자가 여자를 접촉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고 되어 있다. 부도덕한 남녀 간의 성적 관계는 서로 접촉하는 데서 시작된다. 남녀는 손을 잡는 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손을 만지면 팔을 만지고, 어깨를 만지면 목을 껴안고, 결국에는 예상치 않은 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육신이다. 육신은 결코 신뢰할 것이 못된다. 육신은 거지의 육신이든, 왕의 육신이든 육신은 육신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의 육신이나 구원받은 성도의 육신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으로 주관받지 못한 육체는 똑같다. 구원받지 않은 자연인이나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님의 주관하에 들어가지 않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은 똑같다. 마치 페인트 칠하지 않은 쓰레기통과 페인트 칠한 쓰레기통의 차이일 뿐이다. 제도화된 교회에서 집사, 장로, 목사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1절의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니”는 다분히 철학적인 훈계에 지나지 않는다. 교훈적이 되려면 남자가 여자를 접촉하지 아니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개역성경>을 쓰는 개신교 목사들은 여타 종교인들처럼 실행 없는 훈계나 하고 있게 된다. 2절 “음행의 연고로”(개역성경)와 『음행하지 않기 위해』를 비교해 보라. 음행의 연고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성년이 되면 종족 번식은 본능적이다. 이것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사자나 호랑이에서 시작하여 각종 짐승, 가축은 물론이요 남극의 펭귄에서 북극의 곰까지 또 각종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새, 곤충에 이르기까지, 또 하루를 산다는 하루살이까지도 자기 종족 번식은 자기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성욕은 본능적이다. 사람은 음행하지 않기 위해 혼인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상대가 있어도 성적 타락이 수없이 이루어지는데 하물며 혼자 사는 것이나 부부 간에 상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직간접 요인이 됨을 알아야 한다. 십계명은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4,17)고 명령하고 있다. 본문 고린도전서 7:1-5은 바로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 간의 욕구를 성경으로 규정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오늘날 가정이 불행해지는 원인은 부부 간의 정상적인 성관계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 것이 첫 번째 원인이며, 두 번째는 돈 문제인 것이다. 가정 상담을 해 보면 부부 간의 성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들이 대부분이다. 온전한 가정으로 화평을 유지하기 원하면 부부 간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음행하지 않기 위해서』이지 “음행의 연고로”가 아니다. 틀린 성경으로는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딤후 3:16).
3절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땀흘려 식탁에 빵을 가져오는 일에서부터 집안에서 남자가 할 일을 하는 것과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까지 다양하다. 여기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합당한 애정을 주고 아내도 남편에게 똑같이 하라.』가 원문이다. 『합당한 애정을 주고』를 “의무를 다하고”라는 막연한 말로 하게 되면 잘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4절 <개역성경 / 개역개정판>은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도 이와 같이 주장하지 못하고”라고 했다. 주장이란 자기의 이론이나 학설을 주장하는 것이지 아내가 몸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나 남편이 자기 몸을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은 책임지고 맡는다는 말이다. <개역성경 / 개역개정판>은 수사, 문법, 논리 등 모든 면에서 엉터리이다. 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이게 무슨 말인가? 『너희는 서로 권리를 빼앗지 말라.』가 정답이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는 『다만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가 옳다.
<개역성경 / 개역개정판>대로 잘 지켰다고 하자. <한글킹제임스성경>만큼 교훈적이 될 수 있겠는가? 삶의 정도에서 바로잡을 수 없다면 설교는 해서 뭘 하겠는가? 그런 철학적인 훈계로 혼과 영이 갈라지겠는가? 그렇다면 왜 그런 성경이 있어야 하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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