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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들의 중간에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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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7월호>
시편 102편은 「고난당하는 사람의 기도, 그가 나약해져서 주 앞에 자기 고충을 털어놓을 때」가 그 표제이다. 성도가 고난에 짓눌려 나약해질 때 그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을 대상은 주님이시다. 다른 사람에게 내 괴로운 심정을 이야기해 봐야 그에게서 얻을 실제적인 도움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를 짓누르며 압도하는 고난 속에서 사람의 도움은 헛될 뿐이다! 『고난에서 우리를 도우소서. 사람의 도움은 헛됨이니이다』(시 108:12). 고난당하는 욥에게 그의 세 친구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욥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너무도 “영적인” 그들은 욥을 정죄하기에 바빴고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대기에 급급했다. 세상 그 어디에 욥의 친구들처럼 선을 가장한 가혹한 조언자들이 또 있으랴.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는가? 『오 주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이 주께 이르게 하소서』(1절). 주님 말고 세상 그 누구에게 우리의 고충을 토해 내겠는가?고난에 처한 성도의 바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시지 않고 자신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속히” 응답하시는 것이다. 내일도필요 없고 바로 오늘, 그것도 지금 바로 이 순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고난에 처한 날에 주의 얼굴을내게서 감추지 마시고 내게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2절). 고난을 좋아해서 반기는사람은 없다. 누구도 고난이라 불리는 유황불이 자기에게 쏟아지기를 원치 않는다.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조차도, 자기가감당할 수 있는 시험임에도, 비록 피할 길이 주어진다 해도(고전 10:13), 그러한 일이 “나”에게만은 비껴가기를바라는 것이다.
3절에서 시편의 화자는 『내 날들이 연기같이 소멸되고 내 뼈들이 화덕처럼 타나이다.』라고 탄식한다. 욥은 『내 피부는 내위로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탔도다.』(욥 30:30)라고 탄식했다. 시편의 화자는 또한 『내 마음이 상하고 풀같이 마르므로 내가 내 빵을 먹는 것도 잊었나이다. 내 신음 소리로 인하여 내 뼈들이 살에 붙나이다.』(4,5절)라고 비탄했다. 극심한 고난은 식음을 전폐케 하고 육체를 말라붙게 하는데, 욥 역시 『그의 생명이 빵을 싫어하고 그의 혼이 맛좋은 음식을 싫어하는도다. 그의 살은 쇠잔해져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던 뼈들이 튀어나오는도다.』(욥 33:20,21),『내 뼈가 내 가죽과 살에 붙었으며 나에게는 겨우 이의 꺼풀뿐이로다.』(욥 19:20)라고 비탄했다. 욥과 시편 102편은 어딘가 관련이 있다.
시편의 화자는 지붕 위에 “홀로” 있는 참새처럼 외롭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불결한 새들에 비유한다. 『나는 광야의 펠리컨같고 사막의 올빼미 같나이다』(6절). 펠리컨(신 14:17)과 올빼미(신 14:15)는 구약 시대에 불결한 새로 규정되었다. 성경에서 불결한 새는 마귀의 모형이다. 『큰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이로다』(계 18:2). 『용들』과 『올빼미들』을 자기 동료라고 부른(욥 30:29) 욥은 대환란 때 사탄에게 박해받는 이스라엘의 모형이다. 따라서 시편의 화자가 『내 날들이 연기같이 소멸되고 내 뼈들이 화덕처럼 타나이다. 내 마음이 상하고 풀같이 마르므로 내가 내 빵을 먹는 것도 잊었나이다. 내 신음소리로 인하여 내 뼈들이 살에 붙나이다. 나는 광야의 펠리컨 같고 사막의 올빼미 같나이다.』(3-6절)라고 한 말은 사탄에게 박해받는 유대인 환란 성도의 애통하는 말이 된다.
『내 원수들은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나를 대적하여 미쳐 있는 자들이 나를 대적하기로 맹세하였나이다. 내가 재를 빵처럼 먹었으며 내 음료도 눈물로 섞었으니 이는 주의 분개와 진노 때문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 던지셨나이다. 내 날들은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으니 내가 풀같이 말랐나이다』(8-11절). 대적들로 둘러싸인 채 재가 묻은 빵을 먹으며, 눈물이 떨어져서 짜게 된 음료를 마셔야 했던 화자는 자신의 처지가 주님의 분개와 진노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욥의 탄식과 같다. 『그분이 나를 진창에 던지시니 내가 먼지와 재같이 되었도다』(욥 30:19). 이러한 사람의 날들은 사라져가는 그림자와 같고 시들어말라 버린 풀과 같다. 그의 인생은 실로 『그림자처럼 허비한 헛된 인생』(전 6:12)이 되어 버린다.
인생은 그림자다. 석양에 기울며 어둠에 잠겨 사라져가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슬픔에 잠기는 유한한 인생은 애달프다.사람들은 헛된 그림자같이 걸어 다니다가(시 39:6) 기우는 그림자처럼 사라진다(시 109:23). 지상에서 영원한 인생이란 없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죽음에 함몰되고 만다. 고난의 먹장구름이 떼를 지어 갑자기 몰려들면 그림자가 기척도 없이 사라지듯이, 많은 사람들이 고난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림자처럼 허비한 헛된 인생...해 아래서 사람의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으리요?』(전 6:12) 당신의 인생도 그림자다.주님께서 빛을 거두시면 금세 사라져 버릴 그림자다. 그림자 같은 인생인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빛이 필요하지 않겠는가?그림자는 빛에 의해 만들어지고, 빛에 의해 존속하기 때문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의 빛”만이, “하나님의 빛”만이 당신의 인생을 지속시키실 수 있다!
그림자처럼 기우는 인생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다. 『그러나 오 주여, 주께서는 영원히 존속하시며 주를 기억함이 모든 세대에 이르리이다』(12절). 사람은 유한해도 주님은 영원하시다. 사람은 세대가 바뀌면 잊혀지지만, 주님은모든 세대에서 기억되신다. 주님을 기억하는 세대 또한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고, 그 세대가 존재했던 우주마저도 불에 녹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벧후 3:10). 시편의 화자는 바로 이 점을『주께서 옛날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하늘들도 주의 손의 작품이니이다. 그것들은 멸망할 터이나 주께서는 영존하시리니 정녕, 그것들 모두는 옷같이 낡아지리이다. 주께서 그것들을 의복처럼 바꾸시리니 그리하면 그것들은 바뀔 것이나 주는 동일하시며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25-27절)라고 노래한다.
11절까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던 화자는 주님의 영원하심과 그분의 재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잊어버린 듯하다.그가 12절 이후로 전개하는 내용들은 영원하신 주님의 재림과 그분의 천년왕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즉 화자는 주님께서 일어나시어 그분의 종들이 그 돌과 먼지도 좋아하고 아끼는 시온에 자비를 베푸실 재림을 노래하는 것이다(13,14절). 화자는 주님께서 재림 때 시온에 자비를 베푸시면 이방이 그분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지상의 모든 왕들도 그분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노래한다(15절). 그렇게 시온을 세우실 때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광 중에 나타나실것인데(16절), 이 점을 초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언하셨다.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빈곤한 자, 곧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에게 박해받는 유대인 환란성도들의 기도를 중히 여기시며 그들의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실 것이다(17절). 그때 주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는 이유는 『갇힌 자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기로 정해진 자들을 풀어 주시며 주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의 찬양을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기 위함이니』(20,21절), 이때가 바로 『백성들과 왕국들이 함께 모여서 주를 섬기는 때』(22절), 곧 재림 때이다. 이렇게 재림을 생각하면,우리가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들은 어느새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문제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문제를 기억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께 기도드렸던 문제들을 주님께 맡겨 드릴 수가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이 우리를 돌보시므로『너희의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벧전 5:7)라고 명령하신다.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그 날의 재앙은 그 날로 충분하니라.』(마 6:33,34)라고 말씀하신다. 성도여, 재림을 묵상하라. 재림의소망 속에 살라. 그러면 인생의 문제를 잊고 살 수 있다. 당신의 문제는 주님께 맡겨 드리고,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어져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재림을 묵상하도록 하라!(마 17:2)
우리는 시편 102편의 화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주님께서 일어나시어 시온에 자비를 베푸실 재림을 노래하던 그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께 생명을 간구한다. 『그가 내 힘을 길에서 쇠약케 하시며 내 날들을 단축하셨도다. 내가 말하였나니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날들의 중간에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주의 연대는 모든 세대를 통해 있나이다』(23,24절). 이 말씀을 읽으면 병에서 회복된 히스키야의 글이 떠오른다. 『나의 연수는 목자의 장막처럼 내게서 떠나 옮겨졌으며, 내가 나의 생명을 베짜는 사람처럼 끊었나이다. 주께서 나를 파리한 질병으로 끊으시리니 주께서 낮부터 밤 사이에 나를 끝내시리이다...학이나 제비처럼 나도 그렇게 지저귀었으며, 비둘기처럼 슬피 울었고, 내 눈이 위를 쳐다보다가 지쳤나이다. 오 주여, 내가억압을 당하오니, 나를 맡아 주소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고, 또 스스로 행하셨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이까? 내가 내혼의 괴로움 속에서 내 온 생애를 유연하게 가리이다. 오 주여, 이런 일들로 인하여 사람이 살고, 이 모든 일들 가운데에 내 영의 생명이 있사오니, 주께서 나를 그처럼 회복시켜 주시고 나를 살려 주소서』(사 38:12-16).
죽을병에 걸리면 인간은 눈물부터 흘린다. 『“오 주여, 내가 간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리 안에서와 온전한 마음으로 어떻게 행하였으며, 또 주의 목전에서 어떻게 선한 일을 행하였는지 이제 기억하소서.” 하고 히스키야가 통곡하더라』(사38:3). 유한한 인간이 절망 속에서 기댈 곳은 영원토록 동일하시고(히 13:8) 그분의 연대가 끝이 없으신 주님뿐이다. 『주는 동일하시며 주의 연대[years]는 끝이 없으리이다』(27절).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지만(시 90:10) 주님의 연수는 문자 그대로 “끝없는 연대”(endless years)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는 분인 것이다. 아이들이 곧잘 하는 “하나님은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은 바람에 날리는 재와 같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는 분이다. 참되고 영원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죽을병에 걸렸든, 죄로 멸망해 가든, 인간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자기 안에 영생을 소유했다(요일 5:13).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요일 5:20)이시기 때문이다. 『주는 동일하시며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들은 계속될 것이며 그들의 씨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27,28절).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