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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찬양, “이유” 있는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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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3월호>
숲에 가면 도심에서 들을 수 없는 많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바람결에 푸른 하늘 밑에서 비벼대는 키 큰 나무 이파리들의 살내음 같은 소리도 들려오는데, 어찌 들으면 바닷가 백사장에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들의 찬양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요 17:3) 알지 못했다면, 우린 그 자연의 소리들을 이교도들처럼 “어머니 자연”의 숨소리로 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거기에 하나님과 관련된 영적 의미 외에 어떤 다른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현상들, 이름 모를 숲속 곤충들의 좌충우돌 생태, 저 멀리 산등성이를 따라 울리는 뻐꾹새의 울음소리, 산책로를 오르다가 우연히 내려다본 야생화의 흔들림, 발밑에서 바스락대는 낙엽의 포근함에서도 우리는 창조주의 지혜를 느낀다. 우리를 감탄케 하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생각해 보라. 피조 세계의 최상위에 위치한(창 1:28)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를 기억하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영적 도리가 아닌가!시편 98,99,100편에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경배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문맥은 물론 “재림”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신다고 찬양이 멈추고 경배가 중단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보다도, 지역 교회들의 예배 시간보다도 우리는 더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거기에 전체 피조 세계의 찬양이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올 것이다.
시편 98편은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1절)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이 찬양에의 명령은 뒤에서 또다시 반복된다. 『온 땅아, 주께 즐거운 소리를 내어라. 큰 소리를 내며 기뻐하고 찬송하라. 하프로 주께 노래하라. 하프로 또 시를 말하며 노래하라. 나팔들과 뿔나팔 소리로 왕이신 주 앞에 즐거운 소리를 내어라.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은 외치며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것들도 외칠지어다. 큰 물들은 손뼉을 치며 산들은 함께 즐거워할지니』(4-8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자연계의 구성요소들이 그들의 창조주의 임재에 반응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피조 세계가 현재는 썩어짐에 속박되어 있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 속박에서 해방되어(롬 8:21)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만물이 회복될 것이다(사 11:6-9).
시편 98편은 성도들과 피조 세계가 재림 때 한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 쟁취하실 승리와 구원”에 있다. 『이는 그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으며, 그의 오른손과 그의 거룩한 팔이 자신을 위하여 승리를 쟁취하였음이라. 주께서 그의 구원을 알리셨고 그의 의를 이방의 목전에 드러나게 나타내셨도다. 그가 이스라엘 집을 향해 그의 자비와 진리를 기억하셨으니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1-3절). 『그의 오른손』과 『그의 거룩한 팔』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선지자 이사야가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사 53:1)라고 말했을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것이었다. 여기서 『주의 팔』은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손』은 그 『팔』에 달려 있으므로 『그의 오른손』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이 된다(시 44:3; 77:15). 주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재림 때에는 이스라엘 집의 구원을 이루실 주의 손이요 주의 팔이시다.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쟁취하신 구원과 승리로 인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성도들과 피조 세계가 한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 행하실 심판”에 있다. 『큰 물들은 손뼉을 치며 산들은 함께 즐거워할지니 주 앞에서 할지라. 이는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라. 그가 세상을 의로, 그 백성을 공평으로 심판하시리로다』(8,9절). 이 말씀에 따르면 심판은 재림 때 있게 된다. 피조 세계가 『주 앞에서』 찬양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실제로 눈앞에 오셔서 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심판이 아닌 “구원”에 그 목적이 있었다(요 3:17, 마 11:29,30, 딤전 2:3,4).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지금은 죄인들이 지옥에 떨어져 심판받는 것을 기뻐해선 안 된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 때 심판하려고 깨어나시면(시 3:7; 7:6; 9:19) 성도들과 피조 세계가 그 심판을 기뻐하며 찬양할 것이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든 옳다. 그때에는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왕께서 의와 공평으로 행하시는 심판이 그분을 찬양할 확실한 이유가 된다.
시편 99편은 『주께서 통치하시나니 백성은 떨 것이요, 그가 그룹들 사이에 앉으셨으니, 땅은 요동할지어다.』(1절)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이 역시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재림을 예언한다. 재림하신 주님께서는 천년왕국 성전에서 그룹들 사이에 앉으셔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것인데, 시편의 화자가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들로 주의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는 그 이름이 거룩하심이니이다』(3절).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발판에서 경배하라. 이는 그가 거룩하심이라』(5절).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하라.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라』(9절). 시편 99편은 찬양의 이유, 경배의 이유에 관해 오로지 “거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림하셔서 온 땅을 통치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고 그분 자신께서 또한 거룩하시다. 거룩하신 이름을 소유하신 거룩하신 주님은 만물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거룩하지 못하다. 시편의 화자는 그 대표적 예로 모세, 아론, 사무엘을 거론한다(6절).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의 제사장 가운데서 모세와 아론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가운데서 사무엘이 주를 불렀으며 그는 그들에게 응답하셨도다. 그가 구름 기둥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들이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증거들과 율례를 지켰도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나이다』(6-8절). 사실 모세, 아론, 사무엘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주님께 기도 응답을 받은, 주님의 말씀들을 지켰던 신실한 종들이었다. 그럼에도 8절의 후반부에서는 그 세 사람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했음을 강조한다. 『주께서는 그들의 행실대로 보응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셨던 하나님이시니이다.』
모세와 아론, 사무엘에 관한 부정적인 말씀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롬 3:23) 신약의 위대한 진리를 확인해 준다. 모세는 사람을 죽였다(출 2:12).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석을 두 번 쳤다(민 20:11). 아론은 시내 산 밑에서 배교한 폭도들에게 떠밀려 금송아지 숭배를 주도했다(출 32장). 사무엘은 율법을 다루기에 적합지 않은 자기 아들들을 재판관으로 세움으로써(삼상 8:1-3) 사울이라는 한 불법적인 왕을 세우는 비극을 초래했다. 인류 역사 6천 년 동안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치 않았던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 간사함도 없으셨다. 주님은 죄가 전혀 없으셨다(히 4:15, 벧전 2:22). 하나님은 그 이름이 『거룩』(사 57:15)이시다. 『거룩』이신 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시며 그 이름도 거룩하시다. 오직 그분만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모세, 아론, 사무엘은 거룩에 있어서 주님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디 그 세 사람뿐이랴. 우리 역시나 거룩함에 있어 주님께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주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으니』(고전 1:30).
시편 100편은 『너희 온 땅들아, 주께 즐거운 소리를 내어라.』(1절)라는 명령으로 시작하며, 재림하여 통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할 이유에 관해 노래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들로 들어가고 찬양으로 그의 뜰들로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 이는 주께서는 선하시고 그의 자비는 영원하며 그의 진리가 모든 세대에 지속되기 때문이라』(4,5절). 시편 100편은 특별히 “찬양의 시.”라는 표제가 달려 있다. 찬양, 찬양, 찬양이 누구에게 합당한가? 선하시고 그의 자비가 영원하며 그의 진리가 모든 세대에 지속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주를 섬기라. 노래하며 그의 임재 앞으로 나아오라. 너희는 주,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라.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시라.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초장의 양이로다』(2,3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시다(창 1:26,27, 골 1:16).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의 양이다(요 10:1-26, 행 20:28, 벧전 2:25).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의 개가 아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이 교회 시대에 우리를 그분의 양으로서 먹이며 동행하신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시 23:1-3) 그렇기에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섬김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저 천성으로의 여정을 밟는 모든 순례자들의 믿음이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