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묵상 분류
주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컨텐츠 정보
- 253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2월호>
시편 107편은 시편 제5권을 시작하는 시로, 어리석은 혼이 고난 속에서 부르짖을 때 그가 비록 자격이 없다 해도 구원하시는 『주의 자애하심』(43절)을 노래한다.『오, 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됨이라. 주께 구속받은 자들은 그렇게 말할지니 그가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며 그들을 땅에서, 동과 서와 북과 남에서 모으셨도다』(1-3절). 선하신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되며, 이에 감사하라고 시편 기자는 명령한다.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택하신 유대인 성도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셔서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시는 분이신데(마 24:30,31), 이와 같은 일은 대환란 때 이방의 손(시 106:41,42,46)에서 유대인 환란성도들을 구해 내셔서 그 『구속받은 자들』, 곧 『주의 속량받은 자들』(사 35:10)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재림 때 일어날 것이다. 재림 전에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해 『광야의 황량한 길에서 방황하고 거할 성읍을 찾지 못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그들의 혼이 그들 안에서 기진』할 때 『그들이 그들의 고난 속에서 주께 부르짖』으면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해 내』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셔서 거처할 성읍』, 곧 “셀라 페트라”로 가게 하실 것이다(4-7절). 이처럼 주님께서는 고난 속에서 부르짖는 성도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해 주시는 분인 것이다.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8절).
그런데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과 관련된 위와 같은 구속은 다음과 같은 신약의 구속과 다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신약 아래서의 구속은 죄 아래 팔렸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사 오신 것을 뜻한다. 구약의 율법 하에서의 구속은 “돈”(레 25:30)과 “다른 사람의 생명”(민 3:46)과, “은과 금”(민 3:51)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신약의 은혜 아래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구속이 이뤄진다. 『이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너희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이어받은 너희의 허망한 행실에서 은이나 금 같은 썩어질 것들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니라』(벧전 1:18,19). 이처럼 아무 공로도 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이 『오, 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됨이라.』(1절)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성도들을 장차 지구의 『동과 서와 북과 남에서』(3절) 모으시어, 셋째 하늘의 아버지께로 가는 『옳은 길』(7절)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를 통해 그들이 영원히 『거처할 성읍』(7절)인 “새 예루살렘” 도성으로 가서 살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8절).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사모하는 혼을 만족케 하시며 굶주린 혼을 선하심으로 채워 주심』(9절)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채워지기 전에 『고통과 쇠사슬에 매여 암흑과 사망의 그림자 가운데 앉아 있』을(10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조언을 경시하였』기(11절)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보라, 주를 두려워함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욥 28:28)라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조언』을 경시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죄들에 묶여(잠 5:22) 영적인 암흑 속에서(고후 4:4) 완전히 눈멀어 있는(잠 2:13; 4:19, 엡 5:8), 그야말로 『암흑과 사망의 그림자 가운데 앉아 있』는(10절) 죄인들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노역으로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고 그들이 넘어져도 돕는 자가 없게 하시는데(12절), 이는 주님께서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갈 6:8).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의 죄과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며 그들의 혼은 모든 종류의 음식을 싫어하고 그들은 죽음의 문들에 가까이 다가가는도다』(17,18절). 그러나 이러한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고난 속에서 주께 부르짖』고(『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롬 10:13)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두고 있는 놋쇠 문들을 부수고 철 빗장들을 꺾으시어(16절)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13,19절) 그들의 혼을 치유하고 만족케 하신다. 죄인을 고치는 것은 그가 순종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시어 그들을 고치셨으며 그들의 파멸에서 그들을 구하셨도다.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20,21절).
252쪽 / 15,000원
시편 본문에는 영적인 적용을 넘어 특별한 교리적 예언이 있으니, “사망의 그림자”와 관련된 말씀이다. 『사람들이 고통과 쇠사슬에 매여 암흑과 사망의 그림자 가운데 앉아 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조언을 경시하였음이라』(10,11절). 『그가 암흑과 사망의 그림자로부터 그들을 데리고 나오셔서 그들을 묶은 줄을 끊으셨도다』(14절). 『사망의 그림자』, 곧 “the shadow of death”는 성경의 19구절들에서 20번 등장한다[욥 3:5; 10:21,22; 12:22; 16:16; 24:17 (2번); 28:3; 34:22; 38:17, 시 23:4; 44:19; 107:10,14, 사 9:2, 렘 2:6; 13:16, 암 5:8, 마 4:16, 눅 1:79]. 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에 뒤덮인” 것을 죽이는 “실제 그림자”이다. 대환란 때의 죄인들은 “머리 위로 지나가는” 무언가로 생기는 “그림자”에 덮여 죽게 되는데, 『죽음의 그림자의 땅에 거하는 자들 위에 빛이 비치』는(사 9:2) 재림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태양』(말 4:2)으로 오셔서 대환란의 어둠을 끝내시고 『죽음의 그림자를 아침으로 바꾸』시면(암 5:8) 주님께서는 우렁찬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며 성도들의 회중 가운데서 그를 찬송하라』(시 149:1).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15절).
『그들로 감사의 희생제를 드리며 기쁨으로 그의 행사들을 선포하게 하라. 배를 타고 바다로 내려가서 대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깊은 곳에서 주의 행사들과 그의 이적들을 보는도다. 이는 주께서 명하시고 폭풍을 일게 하시니 거기서 파도가 높아짐이라』(22-25절). 여기서 제시되는 『주의 행사들과 그의 이적들』은 “바다”이다.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주님의 『이적들』은 『폭풍』인데, 폭풍으로 파도가 높아지고(25절), 『대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늘까지 올랐다가 깊음들로 다시 내려감으로써 그들의 혼은 고통으로 녹게 된다(26절). 『그들이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술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를(27절) 때 『그들이 그들의 고난 속에서 주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시며 폭풍을 잠잠케 하시니 그 파도가 잔잔해』진다(28,29절). 『파도가 조용해져 그들이 즐거워하』고 『주께서 그들의 원하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시』면(30절) 주님께서는 또다시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오, 그의 선하심과 사람의 자손들에게 행하신 그의 경이로운 일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주를 찬양할지어다』(31절).
바람과 바다는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께 복종한다(마 8:27). 하나님께는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라는 말씀으로 『폭풍을 잠잠케』(29절) 하실 능력이 있다. 갈릴리 바다에서 큰 폭풍을 꾸짖어 잠잠케 하신 예수님께서는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창조주이시다. 바로 그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창조하시어 모든 것이 새롭게 된 인생을 살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의 믿음을 통해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 2:20).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악한 현 세상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일이 녹록치 않다. 갑작스레 닥치는 인생의 거센 폭풍을 선하기만 한 성도가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바로 이러한 때에 인생의 환경을 바꾸셔서 폭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눈부신 햇살 아래의 잔잔한 푸른 바다처럼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고난 속에 있다면 주님을 부르라!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파도가 조용해져 그들이 즐거워하니 주께서 그들의 원하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시는도다』(30절).
『백성의 회중에서도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집회에서도 그를 찬양할지어다』(32절). 파도가 조용해지고 당신의 배가 원하는 항구로 인도된다면(30절), 당신은 그 일을 이뤄 주신(31절) 하나님을 회중 가운데서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고난에서 구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그는 문둥병이 치유받자 주님께 찾아와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인보다 못한 것이다(눅 17:15,16).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그 민족의 역사의 『강들을 광야로, 샘물들을 마른 땅으로 바꾸시며 비옥한 땅을 불모지로 바꾸』셨다(33,34절). 이러한 교회 시대를 거쳐 장차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그들에게 용이 그의 입에서 물을 홍수같이 쏟아내어 『광야를 연못으로, 마른 땅을 샘물로 바』꿀 때(35절, cf. 계 12:14-16, 호 2:14-17, 단 9:26), 땅이 그 홍수를 삼켜 버릴 것이고(계 12:16) 『굶주린 자들』(36절), 곧 유대인 환란성도들은 그들을 위해 예비된 『사람이 사는 성읍』(36절), 곧 『거처할 성읍』(7절)인 에돔의 『견고한 성읍』(시 108:10) “셀라 페트라”로 피신할 것이다. 이때 대환란의 재앙(계 6-16장)으로 전 세계가 황폐하게 되면 땅에 내려와 『통치자들』(40절, cf. 시 82:7) 노릇을 한 “타락한 천사들”은 주님께로부터 부어진 치욕 속에 길도 없는 광야에서 유리하게 될 것이다(40절).
환란을 통과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만들어 풍성한 소산을 낼 것이고(37절), 복을 받은 그들은 크게 번성하며 가축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38절). 그야말로 『가난한 자는 고난으로부터 높이 두시고 그를 가족들로 만드시되 양무리 같게 하시는』(41절) 것이다. 그리하면 『의인이 그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모든 죄악이 그 입을 다물』(42절) 것이다.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킴으로써(단 9:24) 『모든 죄악이 그 입을 다물』면 비로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의의 왕국이 세워지고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실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성도들은 죄로 인한 고난에서 구해 내시고 악인들은 멸하여 죄악을 종결시키는 일은 오로지 『주의 자애하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시 136:10,15,19,20).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주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43절).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