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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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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1월호>
한승용 / 말씀보존학회 성경연구원시편 103편은 그 표제가 「다윗의 시」이다. 『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하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송축”이 주제이며, 주님의 모든 베푸심을 잊지 말고 혼을 다하여 송축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하라.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아,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하고 그의 모든 베푸심을 잊지 말라. 그는 네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며 네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고 너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며 자애와 온유한 자비들로 네게 관을 씌우시고 좋은 것들로 네 입을 흡족케 하시니 네 젊음이 독수리의 젊음같이 새로워지는도다』(1-5절). 읽을 때마다 마음이 “독수리의 젊음같이 새로워지는” 이 노래는 죄의 세상에서 살다 지쳐 가는 성도에게 새 힘을 부여한다. 이 말씀을 읽을 때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 12:30) 주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고만 싶어진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가! “그의 모든 베푸심”을 잊어버리기 쉽기에 『그의 모든 베푸심을 잊지 말라.』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나 생명이 파멸될 뻔했을 때 구해 주셨다. 세상 사람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그분의 자애와 온유한 자비들로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해 주셨다. 곤비하고 피곤할 때는 좋은 음식을 먹여 주심으로써 독수리의 젊음과 같은 기운으로 다시 비상하게 해 주셨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주, 곧 땅 끝들의 창조주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신 분인 것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그의 명철은 한없이 깊으시도다. 그는 곤비한 자에게 힘을 주시며, 무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시나니 젊은이들일지라도 곤비하고 피곤하며, 청년들이라도 완전히 넘어지나 오직 주를 앙망하는 자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 독수리처럼 날개로 치솟을 것이요, 그들이 달려도 피곤치 않으며 걸어도 곤비치 아니하리라』(사 40:28-31). 자신의 인생에 이와 같은 경험이 없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재고해 봄직하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면에서 풍성하게 하시려고 오신 구주이시기 때문이다(요 10:10).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삶 어떤 부분을 마귀에게 도둑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인은 주의 모든 베푸심을 잊고 죄에 빠져 사는 성도 자신에게 있다. 주의 모든 베푸심을 잊지 말라는 말씀은 그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라는 얘기다.
『주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시도다. 그는 항상 꾸짖지만은 아니하실 것이며 분노를 영원히 품지도 아니하시리로다. 그는 우리의 죄들을 따라 우리를 처리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그의 자비가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크심이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가 우리의 죄과들을 우리로부터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주께서도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라』(8-14절).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노래를 중간에 끊어서 설명한다는 건 그 말씀들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왜냐하면 주님의 그 아름다운 성품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8절에서 14절까지 이어지는 주님의 성품에 관한 설명은 이어지는 15,16절의 풀포기 같은 사람과 분리해서 묵상함이 마땅하다. 『사람으로 말하면 그의 날들은 풀과 같고 그의 번영은 들의 꽃과 같아서 바람이 그 위를 지나가면 사라지나니 그 자리가 그것을 더 이상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과 인생의 덧없음을 대조해 보니 사람이란 존재가 길가의 거친 풀 한 포기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도 저마다 꽃을 피우고, 그 꽃을 자세히 보면 햇빛을 반사하는 어여쁜 꽃잎 색과 꽃잎들의 규칙적인 배열을 볼 수 있고, 나는 듯 마는 듯한 향기도 맡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잡초의 아름다움과 그 생명은 오래가지 못하며, 조만간 그 피었던 자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오래 참으심과 관대하심이 영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원한 속성으로 유한한 사람을 다루시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연민으로 사람에게 다가오신다.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출 34:6)께서는 우리의 체질이 진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것이 결국 티끌로 돌아갈 것을 아신다(욥 10:9). 그러한 우리의 날들이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음을 아시는(15절) 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우리의 죄들을 따라 우리를 처리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던 것이다(10절). 즉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살려 주셨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며,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본래 진노의 자녀였던(엡 2:1-3)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 생소한 사람이었고, 또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던(엡 2:12) 우리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큰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며, 그분의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이다(엡 2:4,5).
우리를 구원하신 뒤로도, 그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시며, 항상 꾸짖지만은 아니하시고 분노를 영원히 품지도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들을 따라 우리를 처리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악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시는”(8-10절) 하나님의 성품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된 우리가 죄를 지으면 곧바로 징계하시지 않고 우선은 돌이키기를 기대하신다. 죄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하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죄악의 길을 계속 갈 때는 꾸짖고 징계하시지만, 결국 참회하고 돌이켰을 때는 먹장구름이 사라진 후 얼굴을 내민 찬란한 태양처럼 환한 미소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두렵고 무섭기만 하신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13절) 분이시며, 언제라도 죄로부터 돌이키면 “가엾게 여기며 달려와 목을 안고 입 맞춰 주시는”(눅 15:20)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실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른다. 『그러나 주의 자비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 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자손손에까지 미치나니 즉 그의 언약을 지키는 자들과 그의 계명들을 기억하여 그것들을 행하는 자들에게로다』(17,18절).
『주께서는 그의 보좌를 하늘들에 마련하셨으며 그의 왕국은 모든 것을 통치하는도다』(19절). 하늘들에 자신의 보좌를 마련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다스리는 권세와 권위를 지니셨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통치는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장차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는 지상 왕국, 곧 천년왕국에서 이뤄질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보좌』(왕상 2:12)라 불리는 『주의 보좌』(대상 29:23)에 앉아 온 땅을 다스리실 것이다. 『주께서는 온 땅을 치리할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분 주께서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 있으리라』(슼 14:9). 『그 때에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의 보좌라 부를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이 그곳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악한 마음의 상상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리라』(렘 3:17). 사람들이 악한 마음의 상상을 따라 행하지 않을 천년왕국이 되면 온 세상에 민족들이 그토록 열망하던(학 2:7,9) “화평”이 증가할 것이다(사 9:7).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능력이 뛰어나고 주의 말씀의 음성에 경청하여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너희 그의 천사들아, 주를 송축하라. 그의 기쁨을 행하는 그의 모든 군대들아, 그의 수종자들아, 너희는 주를 송축하라』(20,21절). 천사들은 능력이 뛰어나다. 열왕기하 19:35에서는 한 천사가 열두 시간도 못되어서 18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였는데, 이처럼 천사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럭크만 박사는 천사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특수부대”요, “친위대”라고 했다. 창세기 6장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떠나지 않았던 『택함받은 천사들』(딤전 5:21)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행하며 그분의 기쁨을 행하는 신실한 천사들이다(20,21절). 그런데 알고 있는가? 재림 때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의 천사들”이라고 불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재림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
재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똑같은 몸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초자연적인 몸은 천사의 속성을 갖는 『하늘에 속한 몸』(고전 15:40)으로서 교회가 휴거될 때 갖게 된다.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2,53). 지금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다. 어차피 “능력의 천사들”로서 올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기쁨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엡 2:10)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행하며 재림을 대비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장소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들아, 주를 송축하라. 오 내 혼아, 주를 송축할지어다』(22절).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