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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지 못한 쓸모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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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12월호>
자,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예레미야 13:1-10을 읽어 보도록 하자. 『주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그것을 네 허리에 두르고 물에 넣지 말라. 내가 주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둘렀더라. 주의 말씀이 내게 두 번째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네가 사서 네 허리에 두른 그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프라테스로 가서 거기 바위틈에다 그것을 감추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가서 유프라테스 근처에 그것을 감추었도다. 여러 날 후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니라. 일어나 유프라테스로 가서 내가 너에게 거기 감추라고 명한 그 띠를 거기에서 취하라. 내가 유프라테스로 가서 파고 내가 그것을 감추었던 곳에서 그 띠를 취하였더니, 보라, 그 띠가 훼손되어 아무데도 쓸모없게 되었더라. 그때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런 방법으로 내가 유다의 자존심과 예루살렘의 큰 자존심을 훼손시키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들을 듣기 거절하고 그들의 마음의 상상대로 행하고 다른 신들을 따라 행하고 그것들을 섬기며 경배하니 이들이 이 띠처럼 아무 소용이 없게 되리라.』성경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설교에서 지옥불에 대해 말씀하실 때 헬라어로 “게헨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성읍의 쓰레기장으로, 쓸모없는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이다.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창조물인 사람들을 쓰레기 조각처럼 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성경은 어떤 사람들은 새 예루살렘에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불못에 있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필자는 쓸모없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불에 던지시고 태우실 것인데, 적어도 연료로는 쓸모 있게 되는 것이다. 『토펫이 예로부터 정해졌으니 정녕, 그것은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그가 그것을 깊고 넓게 만들었고, 거기에는 많은 나무와 불로 된 더미가 있으니 주의 호흡이 유황불의 시내처럼 그것에다 불을 붙이시리라』(사 30:33). 『타오르는 불꽃은 꺼지지 아니할 것이며, 남쪽으로부터 북쪽에 이르는 모든 얼굴이 그 안에서 태워지리라』(겔 20:47). 예수님께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7:13). 이번 호에서 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집단적 특징을 보여 줄 것이다.
첫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에서 어떤 기쁨이나 열정을 취하지 못한다. 성경을 읽거나 공부할 수도 있고 성경으로 논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기뻐하지 않는다. 성경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에서 기쁨을 얻을 수 없다. 예레미야 6:10은 『주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꾸짖음이니 그들이 말씀 속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반면 구원받은 사람은 다윗처럼 『많은 전리품을 찾아낸 사람처럼 내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162)라고 말한다. 나는 성경을 읽다가 어떤 진리를 찾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거 봐! 와, 대단해!”라고 말한다. 뒷마당에서 2만 달러 상당의 금이 든 해적의 상자를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이다! 욥도 마찬가지였다(욥 23:12).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그렇지 않다!
성경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하고, 그래서 죄인인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성경이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한다면 왜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느냐?”라고 내게 물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비록 진리가 우리를 아프게 한다 해도 진리 자체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특성이다.
둘째,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설교자가 지옥이나 심판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뉴올리언즈나 부시, 또는 미국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심판하신다고 설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말하기를 “보지 말라.” 하고 선지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에게 올바른 일들을 예언하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고 거짓된 것들을 예언하라... 하는도다』(사 30:10,11).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해 달라.”라고 하며 “우리가 교회를 떠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해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을 싫어한다. 누가 그러한가? 모든 기자들, 모든 편집자들, 모든 해설자들, 모든 무신론자들, 구원받은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학자들, 모든 범죄자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커스터는 내 사역을 반박하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진실>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럭크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칠고 무례한 모습으로 묘사할 자격이 없다. 예수님은 항상 신중하고 친절했으며, 결코 누구를 의도적으로 불쾌하게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누가 이런 헛소리를 하겠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심판에 대해 듣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당신에게도 심판이 닥칠까 두렵지 않느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언젠가 나도 심판받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욥이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온 가족을 데려가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엇으로 데려가셨는지 아는가? 허리케인으로 데려가셨다. 회오리바람이 일어나서 집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모두 죽였다. 그가 무슨 잘못이 있었는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형제들이여, 그럼에도 진리는 진리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이것이 법칙이다. 만일 누군가가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도 이 법칙을 다른 진리들과 함께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심판이 죽음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을 아는가? 주님께서 오실 때 성도들은 죽음을 피하겠지만, 그들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는 서게 되는 것이다! 아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턱에 암이 걸렸고, 그 후 16년 동안 31번의 수술을 받았다. 31번의 턱 수술을 받은 이유는 그가 담배를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는 그것을 거두었다! 결국 암이 너무 심각해져서 그의 입의 절반은 보철물로 대체되었고, 그는 모르핀에 의존해야 했다. 몸이 썩어 가는 탓에 냄새가 너무 심해졌고, 파리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으며, 개들도 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 때문에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셋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통합과 사랑을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 약 193개국이 뉴욕 시내에서 함께 모이고 있다. 물론 진리는 내던지고 말이다(사 59:14). 유엔에 모이는 그 누구도 감히 예레미야 25장이나 스파냐 3장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193개국 중 그 누구도 창세기 15장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이 장은 하나님께서 중동 지방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열두 지파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주셨다고 말씀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하지, 진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서 대적자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인과 아라비아인이었으며, 그중 하나는 『아라비아인 게셈』(느 2:19)이라고 불렸다. 그들이 찾아와서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스 4:2)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의 하나님께 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가 우리와 더불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도다.』(스 4:3)라고 답했다. 즉 “우리는 너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유엔에서 이런 말을 감히 입 밖에 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인들은 다 함께 모여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심지어 오늘날에는 근본주의 교회들에서도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독립침례교회의 주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안에는 예배 순서가 나열되어 있었고, 특이하게도 “사랑의 투사”라는 순서가 있었다. 사랑의 투사가 무엇인가 물었더니 담임목사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을 선택해서 그에게 사랑을 투사하시오.”라고 했다. 말하자면 예배 중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정해서 사랑을 “투사”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남침례교회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현실은 독립침례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넷째, 구원받지 못한 미국 남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견과 비등하거나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다윈은 진화론자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론자였다. 다윈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헉슬리도, 아인슈타인도, 그리고 전미교육협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의 시작부터』(막 10:6)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분명 창조론자이시다.
모든 교황들도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내 형제들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들에게는 외국인이 되었나이다.』(시 69:8)라고 하셨다. 주님의 모친은 마리아였고, 마가복음에는 마리아의 자식들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교황들은 마리아가 영원한 처녀라고 믿었다!
빌리 그래함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불타는 용광로 속으로 던지리니』(마 13:50)라고 말씀하셨다. 빌리는 지옥이 단지 “하나님과의 분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계 14:11)라고 말씀한다. 교황은 “오, 그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분리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라고 말씀하셨다. 교황과 빌리는 “그것은 단지 하나님과의 분리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다섯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특히 교육받은 사람들일수록 거리설교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종의 “성경 공포증”을 앓고 있다. 신문팔이 소년이 “속보입니다, 속보! 전부 읽어 보세요!”라고 외치는 것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거리에 나가서 성경을 흔들면서 “오늘 하루 성경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가?”라고 하면 그들은 분노를 터뜨린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장사꾼들이 “오세요, 오세요,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치는 것은 잘 견디지만, 당신이 “교황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로마는 당신을 종으로 만들고,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십니다. 한 번뿐인 인생, 그것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남을 것입니다!”라고 외치면, 그들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욕을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섯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돈, 성공, 인기를 다 가지고도 불행한 경우가 많다. 빌 게이츠나 존 폴 게티 같은 사람들처럼 성공의 꼭대기에 오르더라도 관절염에 걸린 사지마비 환자만큼이나 불행할 수 있다. 여기 39세에 세상을 떠난 조지 거슈윈도 “나는 서른여덟 살이고, 유명하고 부유하지만 깊은 불행에 빠져 있다. 왜인가?”라고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다!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고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사 57:21). 또 이사야 26:3과 베드로전서 5:7, 요한복음 14:27 말씀을 읽어 보라.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사람들은 돈, 성공, 인기를 가졌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이 점은 구원받지 못한 남자들의 일반적인 현실이다.
일곱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TV”와 “뉴스 매체”에 자신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특징이 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나타나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당신으로부터 듣기를 바라니 이는 이 종파에 관해서는 어디서나 반대받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행 28:22)라고 했다. 쉽게 말해 죄인들은 이미 바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은 상태였다.
죄인들은 개인 구령을 하는 사람이나 이스라엘이나 교황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이미 세뇌된 상태이다. 그들은 뉴스 매체에서 말하는 것을 믿을 뿐이다. 변태 성욕, 총기 규제 등에 대해서도 뉴스 매체에서 말하는바 그대로를 자신의 주장으로 받아들인다. 즉 뉴스 매체와 TV가 그들의 “성경”인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거기서 얻는다. 성경을 찾아 펼치지는 않는데, 이는 그들의 의견이 성경과 일치하는 구석이 없고, 성경을 읽는 것이 너무나도 불쾌하기 때문이다!(시 39:5; 62:9, 전 7:20)
마지막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의지하여 구원받으려고 한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마 7:22,23). 그들의 종교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행위로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로마카톨릭, 개신교, 그리스 정교, 도교, 유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 이런 점에서는 똑같다. 이 모든 종교들에서는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행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한다. 구원은 종교가 아니라 한 인격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한다!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떤 종교에 의지해서 하늘나라에 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세상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만들고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실 때, 하나님의 자리가 당신 안에 있어야만 당신이 인생을 향유할 수 있게 설계하셨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얻어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할 것이지만, 모든 것을 다 얻은 후에도 여전히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예술, 문학, 스포츠, 음악 등을 25세가 되기 전에 탐구한 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리를 채울 수 없다. 그 자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