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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의 절대적 완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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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1월호>
필자는 <킹제임스성경>과 관련된 일련의 글들을 씀에 있어서 “성경”(Holy Bible)이라는 용어를 1949년 3월 14일, 곧 내 혼이 구원받은 날 이래로 써 왔던 방식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쓴 글들에서 “성경”은 알려지지 않고, 볼 수도 없고, 현재 읽히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못하고, 선포할 수도 없으며,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영감받은 원본”이나 다른 어떤 정신 나간 것을 결코 지칭하지 않는다. 또 밥존스대학, 테네시 템플, 린치버그, 산타 로사, 덴버, 달라스, 펜사콜라 기독대학 등의 교수진이 믿는다고 고백하며 퍼뜨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성경”이라는 용어를 실제로 누구나 값싸게 살 수 있고,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책, 곧 <킹제임스성경>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왜냐하면 <킹제임스성경>의 단어들은 평균적으로 다섯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1611년이나 1613년, 1620년, 1670년, 1680년, 1700년, 1710년, 1730년, 1750년, 1760년, 1770년, 1800년, 1815년, 1840년 등에 출간된 권위역본의 본문이, (국내에서나 해외에서) 출판되거나 누군가에 의해 개정되고 편집된 모든 히브리어 및 헬라어 인쇄본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문서화된 증거를 통해, 또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들을 참조하여 보여 주기를 계속했다. 어떤 판의 권위역본(Au- thorized Version)이든지 그것은 다른 역본의 무슨 판이나 누군가에 의해 인쇄된 히브리어 원문이나 헬라어 원문보다 정확하다. (물론 앞서 언급된 학교들의 교수진은 필자의 이와 같은 진술을 글의 문맥은 무시하고 제멋대로 발췌하여, 이미 문서화된 사례들이나 그 뒤로 나올 글들의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럭크만의 괴상한 가르침”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 교수진은 직업적인 거짓말쟁이들로서, 모두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글을 쓴다.)
이번 호에서는 <킹제임스성경>의 절대적 완벽함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다룰 것인데, 그것은 (네슬, 홀트, 알란드, 메츠거, 사우터, 밀, 월튼, 펠, 숄츠, 그리스바흐, 에라스무스, 엘지버, 베자, 티쉔돌프, 스테파누스 등의) 모든 헬라어 원문들이 성령님께서 보존하신, 권위를 인정받은 영어 본문에 대항하여 합의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사례이다. 이 경우, 교수들과 신학생들이 사용하는 원어 사전들과, (힌드슨, 달러, 헨더슨, 돕슨, 헛슨 등의 NKJV를 포함한) 모든 영어 역본의 모든 판들이 학자들, 교수진, 번역가들과 합세하여 권위 있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바로잡아 준다고 주장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본보기로 따라야 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미신에 빠진 바보들이나 그들을 본보기로 따르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번에 다룰 사례는 “갈라디아서 2:20”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여기서 그들은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인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I AM CRUCIFIED WITH CHRIST)가 아니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었다”(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NKJV, NASV, NRSV, 그리고 토마스넬슨앤선즈가 출간한 모든 변개된 역본들에서 그러한 변개를 발견할 수 있는데, <킹제임스성경>의 갈라디아서 본문은 그 권위역본의 모든 판들(어디서 누가 출간했든지 간에)에서 찾을 수 있다.
갈라디아서 본문에서 십자가 처형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쉬네스타우로마이”(sunestau;rwmai)이며,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원문과 카이사랴 원문, 시리아 원문, 서방 원문 모두에 들어 있다. 당연히 이 단어는 “쉬네스타우로오”(sunestauro;w), 즉 “함께”를 뜻하는 “쉰”(su;n)과, “십자가에 못박다”는 뜻의 “스타우로오”(stauro;w)에서 왔으며, 1인칭 단수, 완료, 직설법 수동태이다. 겉보기에는 헬라어 문법에 따라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었다”(I HAVE BEEN CRUCIFIED)가 올바른 번역이다. 그렇다면 1611년의 그 훌륭한 번역자들은 도대체 왜 그것을 현재 시제로, 즉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I AM CRUCIFIED)로 번역한 것일까?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하고 비난하는 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의 학식 있는 번역자들이 과거, 현재, 미래, 완료, 대과거 시제의 차이를 구분할 정도의 분별력도 없었다고 믿어야 할 판이다. 당신이 그들이 하는 말을 믿을 만큼 어리석다면, 더 나아가 ASV, NASV, RSV, NRSV, NKJV, NIV, NEB의 번역자들, 즉 권위역본을 수정하며 “이것이 틀렸네, 저것이 틀렸네” 하는 자들이 “헬라어 문법에 나오는 대로 헬라어 동사의 시제를 일관성 있게 번역했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거나 타락했다면, 당신 또한 그들과 한패이며, 그 “거짓 선지자들”이 받을 심판을 함께 받아도 쌀 것이다(겔 14:1-10).
이제 성령님께서 모든 헬라어 문법과 그 문법학자들을 바로잡으시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첫째,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으신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7, cf. 고전 12:13).
둘째,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 영원한 생명에 참여했다(요일 5:13).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라.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0-12).
셋째, 이 영원한 생명은 창세기 1:1 이전에 있었으며(요 1:1,2, 요일 5:20), 믿는 이가 구원받을 때 이 생명의 흐름 안으로 들어간다(엡 2:1-5, 골 3:1-3).
넷째,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뿐만 아니라(롬 6장)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에도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our old man IS CRUCIFIED with him]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롬 6:6).
성경은 믿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사건에 동참함을 과거의 일로 보지 않고, “현재”의 일로 보고 있다. 만약 그것이 과거의 일이라면, “옛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성경은 “옛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적어도 골로새서 3:5-9, 갈라디아서 5:19-21, 그리고 로마서 7:18,23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렇다.
비평가들과 현대 역본들의 번역가들과 개정자들은 자기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진리들을 놓치고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주장하는 과거의 “완료된 경험”이 현재에는 아무런 적용점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상생활에서 죄에 대해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현재 동참하고 있다고 여김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롬 6:11). 또한 바울은 자기가 과거에 죽었다고 하지 않고, “매일 죽는다”고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지니고 있는 너희의 자랑으로써 단언하노니 나는 매일 죽노라[I DIE DAILY]』(고전 15:31).
대학 교육을 받은 근본주의 멍청이들만이 “헬라어 원문”이 말하는 것을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음의 세 가지 진리에 해당된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의 관점에서 옛 사람은 죽어 묻혔고, 그것으로 그는 끝이 났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원히 끝내 버리셨다(롬 6:6, 엡 5:14).
둘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장)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져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cf. 엡 2:5).
셋째, 그러나 우리의 물리적인 생명, 즉 “육신 안에서”(고후 10:3) 우리는 매일 십자가에 못박힌 채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전 2:2, 갈 4:14).
독자가 알아야 할 것은, 위의 설명이 A.D. 30년부터 휴거 때까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모든 지체를 위한 건전한 교리요 근본적인 신약 진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자필 원본”에 대해 입만 나불대며 시간을 허비하는 소위 “선하고, 경건하고, 헌신적이고, 자격 있는” 학자라는 자들이, 구원 이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지위(Position)를 다루는 신약의 세 가지 기본 진리도 파악하지 못했는가? 신경성 긴장 두통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청소년기의 갈등”을 다시 겪고 있기 때문인가? “형제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정말로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주님께 조금이라도 헌신하고, 주님께 유용하게 쓰임받아 그분께 기쁨이 되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삶에서 “현재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것이지, 못박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되는 의견들, 즉 모든 근본주의 학교들의 교수진과 현대 영어 역본들의 개정자들, 번역자들, 편집자들, 출판사들의 의견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선포한다면, 불신으로 가득 찬 자들은 그들의 입을 닫아야 한다.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