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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생애에서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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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7월호>
먼저 창세기 19:14을 읽어 보라. 『롯이 나가서 그의 딸들과 혼인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이곳에서 나가라. 주께서 이 성읍을 멸하시리라.” 하였으나, 그 사위들에게는 그가 농담하는 사람같이 보였더라.』 창세기 19장은 성경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장들 중 하나이다. 성경은 교리를 위해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권면을 위해서도 기록되었으며, 이는 우리가 성경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고전 10:11). 즉 구약에서 신약의 구원 교리를 직접적으로 배우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당신은 창세기 19장의 사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롯이 소돔에 살게 되었고,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로 구약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두 명의 천사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소돔 사람들이 남성인 천사들과 음행하고자 했고,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한다(창 19:12,13).
자, 그럼 롯의 생애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롯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다. 욕심을 과도하게 부린 것이다(창 19:9). 그는 재판관이 되려고 했고 성문에 앉아 있었다. 또한 창세기 13:10을 보면, 롯은 그 평지를 보고서 “야, 저 평지 좀 봐! 소떼를 키우면 딱이겠는데! 1파운드에 2달러 95센트에 팔아도 되겠는걸!”이라고 했다. 이처럼 역사에는 탐심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많다. 롯은 탐심이 너무도 컸다. 당신은 TV나 기타 대중매체에 나오는 설교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베니 힌 같은 자들 말이다. 그들이 십일조를 하는가? 어떤 지역 교회에 십일조를 했다고 하던가? 나는 그들이 올바로 헌금을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탐심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 당신의 현재 능력보다 더 많이 원하지 말고, 당신이 벌 것보다 더 원하지 말고, 당신이 벌어야 할 것보다 더 원하지 말라(눅 12:15). 바울도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지 않았는가!(골 3:5)
둘째, 롯은 세상과 너무 가까이 살았다. 아브라함이 시골길 끝에 살았다고 친다면, 롯은 소돔을 향해 장막을 친 자이다. 그런 후에 그는 세상으로 곧장 나아갔고 세상과 가까워졌다.
그리스도인 독자여, TV는(어떤 SNS든 영상 매체든 똑같다) 단지 당신을 세상과 가깝게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세상으로 당신을 둘러싸고 뒤덮이게 한다. 즉 당신을 붙들어서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게 하여 익사시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겨우 빠져나오면, 정말 다 타 버릴 뻔했다가 끄집어낸 나뭇가지처럼 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롯의 경우이다. 신약 그리스도인으로 치자면 롯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이 타 버리고 자기의 혼만 겨우 구원받는, “불에 의해서인 것처럼 구원받는”(고전 3:15) 사람의 예표이다! 노아는 물로 구원을 받았고 물이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벧전 3장). 롯은 불에 의해 구원을 받았고 불이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불은 그의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롯은 그의 아내, 딸들, 집, 땅, 가축, 재산과 간증, 명성과 하나님과의 교제, 건강과 생명까지 다 잃어버린 것이다. 롯도 영광 중에 올라갔고,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그를 “의인”이라고 부른다(벧후 2:7,8). 그럼에도 롯에게 그런 일이 닥친 것은 그가 세상과 너무 가까워졌고, 그의 죄들을 판단하며 자백하지 않았고, 빛 가운데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롯은 낮은 목표를 가졌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높은 것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은 “왜죠?”라고 물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삶의 목적이신 주님께서 하늘들 위에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정사들과 권세들보다 위에 계신다. 그러므로 당신은 높은 것들에 시선을 둬야 하는 것이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서 입원하여 침대에서만 지내야 했다. 창밖에는 새 한 마리가 현관 기둥 옆에 둥지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날마다 그 작은 새를 보면서 “작은 새야, 둥지를 너무 낮게 짓고 있구나!”라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그 동네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깨어나서 창밖을 봤더니 둥지가 온데간데없었다. 여기저기 깃털과 나뭇가지가 흩어져 있었고, 작은 새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둥지를 너무 낮은 데 지었던 것이다!
낮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높은 것을 바라보라. 혹자가 잘 말했듯이, “우리보다 높은 뭔가를 우리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것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성경적으로 “지위와 상태”라고 부른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것과 비행기 안에서 넘어지는 것은 다르다. 비행기 안에서 넘어졌다면 부상을 당할 수는 있어도 목적지에 갈 수가 있다. 그러나 20,000피트 상공을 여행하는 비행기에서 떨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의 지위(standing)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구원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상태(state)는 시시각각 변할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상태에 처할 수 있다. 이 점은 비행기가 여러 지역 위를 날면서 다양한 날씨의 환경을 지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신의 지위는 비행기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는 달라질 수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는 변하지 않는다. 『그분이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요일 4:17)라는 말씀과 같은 것인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그분의 아들을 보신다는 뜻이다. 당신은 “이 옛 사람이 정말 온갖 악한 짓들을 하는데도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당신의 옛 사람은 죽었다! 당신이 잘못된 뭔가를 할 때면 “시체”가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 옛 사람을 취해서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옛 사람은 죽은 것이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은 우리가 옛 사람으로 인해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롬 6:6,14). 반대로 이 말은 당신이 짓는 죄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뿌린 대로 거두되(갈 6:7,8), 당신의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당신의 육신이 죽었다는 뜻이다(히 9:14).
넷째, 롯은 거물이 되어 버렸다. 즉 롯은 야망이 너무 컸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다. 일종의 과대망상증에 걸린 상태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커버린 것이다. 육신적인 사업가들을 치켜세워서 그들이 무슨 대단한 성도들이고 성숙하고 영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만드는 설교자들이 있다. 사실 그들은 성경의 목차를 보지 않고는 “누가복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을 그렇게 빨리 키워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를 망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역시 스스로를 망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는 응당 말씀의 젖부터 사모해야 한다(벧전 2:2).
또한 이제 막 구원받아 영적으로 아기일 뿐인 사람을 데려다가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많을수록 더 영적 아기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더 영적으로 성장하기 힘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행동 패턴이나 습관들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술이나 담배나 욕하는 습관이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이 고질적인 문제일 수 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런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영적 아기를 데려다가 직분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은 집사를 세울 때도 시험해 보고 그가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집사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 초신자를 데려다가 설교자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롯은 거물이 되어 버렸고, 촌뜨기 늙은이 아브라함과 교제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산골짜기 촌뜨기였고 학위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도시에 사는 유명 인사들을 알지도 못했다. 이처럼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행 4:13)이었다. 롯이 너무 큰 거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해가 되었다. 세상의 영화배우들, 운동선수들,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너무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스스로에게 해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있어서는 소위 “스타”가 없다. 신실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계에 유명 인사들이 있고 거대한 사역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눅 16:10).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인데 정말 유명한 거물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많은 상들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롯은 너무 육신적으로 변했다. 그는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돈이 그의 신이 되었다. 그는 돈을 탐하기 시작했고 육신적으로 변했다. 탐심은 당신의 것이 아닌 뭔가를 원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육신적인 일이다. 내 호주머니에는 빌 게이츠보다 많은 돈이 있다. 왜냐하면 내 돈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돈은 충분하지 않다. 충분했다면 은퇴하지 않았겠는가? 빌 게이츠는 140억 달러를 가졌으면서도 은퇴하지 않았다.
롯은 너무 육신적으로 변했다. 육신이 그를 지배한 것이다. 에스겔 16:49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의 죄악을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성적 범죄들을 말씀하시지 않고, “자만과 양식의 충분함과 게으름의 풍성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다! 남색의 죄를 짓는 자들은 그 죄를 지을 여유가 있는 자들이다. 일을 해야만 살고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은 남색할 시간이 없다.
육신이 롯을 지배했고 그를 끝장내 버렸다. 세상은 당신의 전부를 원한다. 하나님도 당신의 전부를 원하신다. 당신은 결정만 하면 된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후에 롯은 산에 있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가 회복했다는 말씀이 없다. 즉 회개했다거나 자백했다거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사용하실 수 있는 위치로 갔다거나 하는 언급이 없다. 롯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오래전에 밥 존스 시니어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젊은 시절의 모든 낭비는 노년에 어마어마한 어음으로 돌아온다.” 프로미식축구선수들이나 프로하키선수들이 50세가 넘어서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고 나면 도대체 늙어서 어떻게 되겠는가? 50세나 60세가 될 즈음에는 아니나 다를까 온몸이 아픈 것이다. 이쪽 팔꿈치가 아프고 그다음에는 반대쪽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말썽이고, 발목이 시원치 않고, 말하자면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혹사한 것을 노년에 갚아야 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일을 했는데도 이렇다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다가 노년을 맞이하면 정말 큰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겠는가!(갈 6:7)
롯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사랑하려 했고 당연히 그 일에 실패했다. 어떤 남자가 와서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당신 없이는 살 수도 없어요.”라고 하면서 덧붙여 말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당신을 보러 온다고 약속할게요! 비가 오지 않는 한, 꼭 올게요!” 자매들이여 당신은 이런 남자와 결혼하겠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섬기고 있지는 않는가? 젊은 형제들도 대답해 보라. 당신은 이런 여자와 결혼하겠는가? “당신을 사랑해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은 당신과 함께하겠어요. 그렇지만 다른 날에는 조지와 함께할게요!” 당신은 이런 사람과 결혼하겠는가? 당연히 안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셨고 당신을 부르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분은 당신의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 제가 헌신하겠습니다! 저의 여가 시간을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롯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위와 같다. 당신도 롯처럼 세상 제도에 너무 가까워질 수 있다. 당신도 너무 거물이 될 수가 있다. 당신도 너무 육신적으로 되고 또한 탐심으로 가득 찰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롯처럼 영적 패망을 겪게 될 것이다. 롯은 자신의 혼을 제외하고는 불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권유하노라』(고후 5:10,11).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