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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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그리스도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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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7월호>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終末)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 있다.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관계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의 알 수 없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 등 그들은 다양한 종말에 의해 지배당하며 산다.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육신의 종말인 죽음을 통해서 이 유한한 몸을 떠나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는 소망(빌 1:23)과 주님과의 끊어지지 않는 관계 속에서 샘솟는 소망(히 13:5),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선한 일이 그 종말에 가서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빌 1:6), 그리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주님께서 우리와 끝까지 함께 계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종말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이 극명하기 그지없는 역설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준이 되신다. 곧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라는 위대한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종말에 있어서도 생명의 소망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종말에 있어서도 희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로 여겨지시는 주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딤전 3:16). 주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분 자신의 몸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해 주실 수 있으셨던 인류의 구주이시다(벧전 2:24). 세상의 종말은 바로 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에 강력하게 역설하셨던 진리였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종말론적 예언자”셨으며, 사도 바울과 베드로, 요한 등이 주님의 뒤를 따랐다. 성경에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언이 있고, 성경의 그러한 면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준다. 예언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관한 무서운 말씀들”(대환란, 아마겟돈 전쟁, 우주를 불사르심 등)을 하나로 보고 막연히 두려워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두려움은 성경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성경의 경고를 비웃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조롱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마는 거짓된 두려움이다.

많은 이들이 “대환란”을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지만 대환란은 세상의 진정한 종말이 아니다. 대환란은 종말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으며, 종말이 이를 때까지 그 토대를 다지는 전무후무한 대재앙이 펼쳐지는 기간일 뿐이다.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마 24:21).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서, 성경에서 “대환란”(Great Tribulation)을 처음 언급하신 분은 주님이셨다. “대환란”을 두 번째로 언급하신 분도 주님이셨으며(계 2:22), “대환란”을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는 셋째 하늘의 장로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계 7:14).


성경은 “대환란”의 재앙을 요한계시록에 네 번에 걸쳐서 묘사한다. 그 첫 번째 묘사는 요한계시록 5장과 6장에서 “봉인들의 재앙”으로, 두 번째 묘사는 요한계시록 8:6-11:15에서 “나팔들의 재앙”으로, 세 번째 묘사는 요한계시록 12-14장에서 “적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네 번째 묘사는 요한계시록 16-18장의 “호리병들의 재앙”과 “큰 바빌론의 멸망”으로 설명된다. 미래의 재앙에 관한 그와 같은 묘사들이 사람들에게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대환란”을 예레미야 30:7에서는 『야곱[이스라엘]의 고난의 때[the time of Jacob’s trouble]』라 하고, 다니엘 12:1에서는 『고난의 때[a time of trouble]』라고 하면서 『그 때에 네 백성[이스라엘]이 구제될 것이니』라고 말씀한다. 말하자면 예레미야서와 다니엘서에 나온 두 “고난의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을 받다가 구제되는 “대환란”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환란은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요한계시록 7장에서 인장으로 표시를 받고 환란을 통과하는 144,000명을 제외하고는 살아남기가 매우 매우 어려운 고난의 때이다. 대환란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기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그것을 네 번씩이나 묘사하심으로써 인간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휴거될 때 함께 휴거되지 못하면 예외 없이 대환란에 들어가 전무후무한 대재앙을 겪어야 한다. 이에 관해 선지자 이사야는 『오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도다. 두려움의 소리로부터 도망친 자는 함정에 빠질 것이며, 또 함정 가운데에서 올라온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높이 있는 창문들이 열리고 땅의 기초들이 흔들림이라. 땅이 완전히 헐리고 땅이 깨끗이 해체되며 땅이 심하게 움직였도다. 땅이 술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며 오두막같이 흔들거리고 그곳의 죄악이 그 위에 무겁게 되리니 그것이 떨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사 24:17-20)라고 예언했고, 사도 요한은 『일곱째 천사가 자기 호리병을 공중에 쏟으니 하늘의 성전에서 큰 음성이 보좌로부터 나와 말하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니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이 있었고 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지진이 너무도 엄청나서 사람이 땅에 거주한 이래로 그처럼 강력하고 큰 지진은 일찍이 없었더라. 또 그 큰 도성이 세 부분으로 갈라지고 민족들의 성읍들도 붕괴되며 큰 바빌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으니 이는 그녀에게 그분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주기 위함이니라. 그러자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또 무게가 각기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 위에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니 이는 그 재앙이 심히 크기 때문이라.』(계 16:17-21)라고 기록했다.

대환란 때 이스라엘은 에돔 지역의 광야로 피신하여(계 12:6, 애 4:21)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했을 때 먹었던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바라며 살 것이다. 『이집트 땅에서 네가 나오던 날들과 같이 내가 그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리라』(미 7:15). 적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초자연적으로 부양받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쫓아다니며 박해한다. 『우리의 박해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르며 그들이 산 위로 우리를 추격해 오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숨어 기다리는도다』(애 4:19). 『우리는 광야의 칼 때문에 우리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의 빵을 얻었나이다』(애 5: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광야로 피신시키시면, 그들은 “후 3년 반”(1,260일) 동안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생존해야 한다(계 12:6). 그 사이에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환란 성전의 자비석에 앉아(살후 2:4) 온 세상의 경배를 받을 것이고, 그때 자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이게 할 것이다(계 13:15). 적그리스도는 환란 성전의 뜰에 있는 제단에서 유대인들을 목 베어 죽임으로써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게 할 것이고, 그의 “카톨릭 사제들”은 그 인간 희생제물들의 “피”를 들이킬 것이다(시 14:4; 16:4, 사 6:13, 계 20:4). 이것이 “대환란” 때 인간들에게 닥칠 끔찍한 일들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대환란이 닥치기 전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만 한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대환란”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환란 후에” 있을 “재림” 또한 언급하심으로써 대환란은 종말의 서곡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셨다. 그야말로 “현 세상을 끝장내는” 위대한 사건이 오는 것이다!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또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 무화과나무의 한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것을 보면 그 일이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29-33).

“환란 후에” 있을 “인자의 재림”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21장에서 더욱 실감나게 묘사해 주셨다. 즉 “그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땅에 큰 고난이 있을 것이며, 아이를 밴 사람들과 젖 먹이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사로잡혀갈 것이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그 기간에 해와 달과 별들에 표적들이 있을 것이고, 땅에는 민족들이 혼란 중에 괴로워하며 바다와 파도가 노호할 것인데, 이 땅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인해 실신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권세와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눅 21:23-28)라고 하셨다.

대환란으로 시동이 걸리는 세상의 종말을 완결시키는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현 세상은 대환란의 재앙 아래서 여전히 존속하고 있을 것이고, 마귀는 인류 최악의 통치자인 적그리스도를 통해 여전히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완전하게 끝장내는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때 있을 “아마겟돈 전쟁”인데, 이것은 대환란 끝에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아마겟돈에 모여 하늘로부터 재림하시는 주님의 군대를 대적하는 전쟁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끄는 2억의 UN 기병대와 치르는 이 전쟁은 주님의 승리로 하루 만에 끝나게 된다. 주님께서는 포도즙틀을 밟는 것처럼 이방인들을 짓밟아 그 피가 말고삐까지 차게 될 것이고(사 63:3, 계 14:19, 20), 주님께 짓밟힌 2억의 기병대의 시체를 가리켜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계 19:17)이라 부르며 공중의 새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할 것이다.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마 24:28). 주님께서는 이 아마겟돈 전쟁 끝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붙잡아 산 채로 “불못”에 던지실 것이고(계 19:20), “사탄”을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1,000년 동안 가둬 놓으실 것이다(계 20:2). 이것으로 “현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된다! 물론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 민족들의 심판(마 25장)과 만물의 회복(행 3:21, 사 35장),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계 20:4), 사탄의 최후의 반역(계 20:7-9), 큰 백보좌 심판(계 20:11-14),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원 세계(계 21,22장)가 펼쳐진다. 본 특집은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것이므로 재림 이후의 사건들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이 “현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재림”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종말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시한부 종말론” 같은 것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그러나 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나의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인자가 오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마 25:13)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실패한 것을 보고서도 여전히 미혹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은 결국 현 우주가 불살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영원 세계를 가져오는데(벧후 3:10,12,13), 성경은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을 아는 우리에게 『그때 이 모든 것이 녹아 버리리니 너희가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느냐?』(벧후 3:11)라고 묻고 계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런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점 없고 흠 없이 평강 가운데서 그분께 발견되도록 힘쓰라.』(벧후 3:14)라고 명령하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알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는 사람은 결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없다.

셋째, 세상의 종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망의 성취를 의미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대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 비록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라고 할지라도(벧후 3:4), 우리는 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림을 “믿고” “기다린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며, 세상의 종말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의미한다. 세상의 종말과 재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종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의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이 혼탁해질수록, 세상의 멸망이 이르렀음을 날로 체감할수록 재림에 대한 넘치는 소망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노를 받도록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이라』(살전 5:1-4,9).

세상의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 일이 당장 일어날 것처럼 긴장하여 주변을 정리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주님께서 종말을 경고하신 지가 벌써 2,000년이 되어 가고, 대략 현 시점이 그 종말이 임박한 때라는 점을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위의 말씀처럼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재림과 종말을 기대하다가 죽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인생이, 인류의 역사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지연되는 듯한 재림의 이유는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라는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참된 성경적인 믿음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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