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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잃어버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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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11월호>

피터 S. 럭크만 / 김진석 옮김


당신은 성경에 “잃어버린 책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 봤는가? 미국에서는 신문에 그런 문구들이 종종 등장한다. 당신은 불신자나 자유주의자, 성경개정위원, 성경수정위원, 진화론자, 무신론자, 죽은 정통주의자, 보수주의자 할 것 없이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알 것이다. 그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성경의 내용을 의심하게 하거나, 이전에는 찾지 못했던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만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는 듯이 말하기 위해 그런 용어들을 쓴다. 곧 “부끄러울 만큼 풍성한 증거,”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고대의 유물들,” “예수님 시대를 알 수 있는 새로운 조명,” “과거로부터 비추는 새로운 조명,” “성경 지식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 “무엇무엇을 보여 주는 새로운 증거,” “성경 본문을 조명하는 새로운 발견,” “세기의 발견,” “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증거로 인해 복음서를 새롭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와 같은 말들을 사용한다.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의 상형문자를 해독했다거나, 윌리엄 피트리 경이 점토판을 찾아냈고, 윌리엄 올브라이트가 여리코와 므깃도를 발굴했고, “라스 샴라 서판” 등을 발견했고, 미국동방연구학회나 영국고고학학회 등이 발견해 냈다는 그런 발굴물들과 유물들은 끝이 없다. 또한 “사해 사본”을 발견했다느니, “누지 문서”가 발견되었다느니,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었다느니 하는 내용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소한 것들이 구약이나 신약에 기록된 진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조명을 비춰 주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쓰레기통에서 시내 사본을 발견했을 때, 티셴돌프는 그것을 가지고 가서 하룻밤을 새면서 그 사본에 포함된 책들 중에 하나를 번역했는데, 그것이 바로 동일하게 쓰레기통에 있어야 할 칠십인역의 <허마의 목자서>였다. 그는 신구약의 모든 책들을 제쳐놓고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성경에 언급되었고 학자들이 지금까지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책들이 있다. 이 “잃어버린” 책들을 찾아야만 현재 성경 안에 있는 책들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주의 전쟁들의 책(민 21:14)
2. 야셀의 책(삼하 1:18, 수 10:13)
3. 선견자 잇도의 환상록(대하 9:29)
4. 스마야의 책(대하 12:15)
5.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책(대하 20:34)
6. 실로인 아히야의 예언서(대하 9:29)
7. 선지자 나단의 책(대상 29:29, 대하 9:29)


그뿐 아니라 “푸림의 책”(에 9:32)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페르시아 왕들의 역대서”(에 2:23)도 있어야 한다. 이 책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왕들의 역대서』(에 10:2)를 일컫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솔로몬의 행적의 책』(왕상 11:41)을 찾아내면 좋아할 것이다.
니콜라파에 속한 파괴적인 비평가의 입장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한 권 쓴 뒤에 앞서 언급한 소위 “잃어버린” 책들의 이름 중 하나로 부르는 것이다. 물론 사기다! 그러나 지난 15세기 동안 로마카톨릭 학자들은 헬라어가 아니라 아람어로 기록된 마태복음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만약 헬라어 사본들보다 먼저 기록된 아람어 사본을 발견했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베드로(게바)가 마태복음 16:18의 『반석』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헬라어로는 베드로가 “페트로스,” 즉 “돌”에 불과하고, 반석은 “페트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요한복음 21:25(『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많은 일도 있으니, 만일 일일이 기록된다면 세상 그 자체에라도 기록된 책들을 둘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하노라.』)에서 힌트를 얻어 교부들이 기록한 카톨릭 전통이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카톨릭교도들은 A.D. 200년부터 1200년까지 산더미같이 많은 위작을 제작하여 그 쓰레기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O.C. 램버트가 1956년에 쓴 을 읽어 보라]. 즉 카톨릭교도들은 그러한 사기적인 위작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위조문서들에 이그나티우스, 제롬, 어거스틴, 이레네우스, 클레멘트, 씨프리안 등 교부들의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카톨릭이 행하는 이와 같은 일들을 볼 때, 바티칸 사본(B, Vaticanus)도 그런 수백 개에 달하는 위작들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앞서 언급한 성경의 “잃어버린” 책들에 더하여 <베드로삼서>, <예수님의 유아기>, <니코데모의 간증>, <바울묵시록>, <디다케>, <안드레행전>, <도마복음> 등의 허구적인 위작이 통용되고 있다. 이중 도마복음은 뉴에이지주의자들과 백마술을 행하는 자들이 떠받드는 문서이다. 진짜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진짜 성경에서 가짜 문서들을 찾아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교회사, 필사본 증거, 헬라어, 히브리어, 신학 등에 지식이 없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가려낼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그런 거짓말로 꾸며낸 위작들로는 진리를 증거하시지 않기 때문이다(요 16:13, 요일 2:20,21). 오리겐이 정경이라고 여겼던 <허마의 목자서>나, 어거스틴이 정경이라고 했던 <바나바의 서신> 등을 한 번만 훑어봐도 성경대로 믿는 성도는 그것이 조셉 스미스의 <몰몬경>처럼 가짜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앞서 나열한 성경에 언급된 책들은 사실 설명하기가 너무 쉽다. 24년 동안이나 정규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학자들이 그런 책들이 어떻게 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성경에 포함된 책들, 곧 여호수아나 룻기, 에스더 등은 기록되었을 당시에는 그렇게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위 “원본”이 기록되고 나서 500년 내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증거 자체가 없다. 창세기는 <태초에>라고 불렸고, 출애굽기는 <이름들은 이러하니>라고 불렸다. 스마야나 예후, 아히야, 야셀 등이 기록했던 그 책들이 여호수아서나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되레 이상한 것이다. 여호수아 1-9장까지의 내용이나 여호수아가 죽는 대목이 나오는 여호수아 24장의 내용을 기록하던 서기관 중에 누가 자신이 “여호수아서”를 기록한다고 생각했겠는가? 여호수아 1-20장에 기록된 전투들에 대한 내용이 “주의 전쟁들의 책”이라고 불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여호수아서에 나온 전쟁들은 그야말로 주의 전쟁들이었고 앞으로 또 주의 전쟁들은 일어날 것이다(스카랴 14:1-4과 하박국 3:3-15을 읽어 보라).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표한다. 재림 때에는 『전사』께서(출 15:3) 과거에 모세와 함께 나타나셨듯이(출 14:30,31, 계 11:5) 다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실 것이다. 또한 “여호수아”라는 단어는 “예수”와 같은 뜻이며, 예수님은 “정직하신 분”(the upright one)이시다.


위의 경우는 <킹제임스성경>을 망치려고 하는 현대의 파괴적인 비평가들이 얼마나 성경 자체의 내용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머리가 혼란스러운 얼간이들”이다.


“야셀”이라는 단어는 “정직한,” “정직한 자”를 뜻한다. 여호수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따라서 “야셀의 책” 또한 여호수아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의 전쟁들의 책”은 여호수아가 싸운 전쟁들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12-15,17장의 내용과 민수기 18-25장까지의 내용도 포함한다. 현재 성경의 책들이 여호수아, 출애굽기, 민수기 등으로 불리니까, 어리석은 학자들은 당황해하며 성경의 정경으로부터 사라진 “잃어버린” 책들을 찾느라 혈안이 된 것이다.
또한 역대기의 내용이 창세기 1장부터 열왕기상 2장까지의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역대기하 9:29에 언급된 기록자들, 즉 선지자 나단과 아히야, 잇도 등이 재판관기와 룻기, 사무엘상하 같은 책의 저자임을 알게 된다. 아울러 “하나니의 아들 예후”가 등장하던(대하 20:34) 당시는 이미 솔로몬과 여로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등의 통치가 기록된 이후였다. 『이스라엘 왕들의 역대서』(왕상 14:19)나 『유다 왕들의 역대서』(왕하 20:20)를 기록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은 분명 포로기 이후를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 에스라가 딱 들어맞는 인물인 데다 그는 서기관이기도 하다(스 7:6).


더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들을 배우되, 제대로 잘 배워야 한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때, 성경은 의미하는 그대로를 말하며, 또한 성경은 말하는 그대로를 의미한다. 성경을 기록하신 분은 성령님이시고 그분은 올바른 분이시기에, 올바른 기록자들을 시키셔서 올바른 숫자의 책들만을 포함하게 하셨다. 당신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진리를 알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나 당신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 성경 비평가들이 아니라 성경 자체를 믿는다면 당신은 적어도 성경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을 믿으라! 학자들이 성경과 다른 말을 하고, 성경에 의문을 달고, 성경과 모순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을 의심할 때, 특히나 <킹제임스성경>을 자신도 쓴다고 고백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학자들이 그리할 때, 그들을 냄새나는 헌신짝 버리듯이 과감하게 폐기해 버리라. 그런 학자들은 위선자들일 뿐이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



당신이 가진 <킹제임스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길 원하시는 모든 책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가 있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정경을 모으는 작업을 관장하셨다(시 12:6,7, 계 22:18,19, 요 21:25). 성경은 그 기록된 말씀이 하늘로부터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 자체보다도 “더 확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벧후 1:17-19).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예레미야, 다니엘, 요나, 미카, 나훔, 오바댜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적어도 5,000개 이상의 메시지를 정경에서 제외시키셨다. 그들이 그 말씀들을 전할 때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했다 해도(벧후 1:21)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것 중에 극히 일부만을 정경에 포함시키셨다. 하나님께서 나머지 것들은 정경에서 빼심으로써 당신이 하나님 그분의 성경에서 읽지 못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요한복음 21:25에서 『만일 일일이 기록된다면』이라고 가정하여 언급하신 “책들”은 기록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책들이 있었다 해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 책들을 신약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원하시지 않은 것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학자들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라. 그렇다. 그들의 의견은 던져 버리라.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책인 성경이 있고, 그 책 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길 원하시는 모든 책들이 들어 있다. 만약 당신이 “야셀의 책”이나 “주의 전쟁들의 책”과 같은 문서를 발견한다면 무엇을 할지 알려 주겠다.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교육받은 얼간이가 찾아와서 그것을 가지고 싶다고 날뛰며 팔라고 하면, 즉시 큰돈을 받고 팔라. 나중에 그 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다. 그 책이 비록 5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이 현재 가진 <킹제임스성경>을 읽음으로써 발견할 수 있는 그 어떤 진리도 조명해 주지 못할 것이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며,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매한 자를 현명하게 만들고 주의 규례는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며, 주의 계명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주를 두려워함은 순결하여 영원히 지속되고 주의 명령들은 모두 참되고 의로우니, 그것들은 금보다, 정녕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시 19:7-1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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