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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선택”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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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2월호>

당신은 “언제” “선택”되었는가?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당신은 언제 선택되었는가?” 이것은 한국 교회를 망친 “칼빈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선택되었는지”에 관해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이는 “칼빈주의의 요체”인 “창세전의 예정”과 “무조건적인 선택”이 너무나 “허무맹랑한 거짓 교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성경적인 교리”를 만들어 낸 “존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한 한,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공부한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철학적인 신학자”였는데, 19세기 미국의 신학자 “조지 피셔”(George P. Fisher)는 “칼빈은 종교 개혁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타일로 이끌어 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존 칼빈은 일종의 “철학자”였다.

한편 그의 “신학적 기반”은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이었는데, 일찍이 “신(新)플라톤 철학”에 노략질당한(골 2:8) 어거스틴은 구원받지 않은 이교도 철학자 “플라톤”을 극찬하면서 그를 “아프리카의 모세”라고 하는 등의 망발을 늘어놓았고, 기독교와 철학을 접목시키는 가증스러운 시도를 했다. 로마카톨릭의 “교리적 기반”을 모두 마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어거스틴은 수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짓 교리인 “유아 세례”를 주장했고, 또 “세례를 통한 중생”을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려 했던 후천년주의 “왕국 건설자”(Kingdom Builder)였다.

존 칼빈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마틴 루터”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거나 기다린 적이 없었으며, 오직 “스위스 제네바”에 자기만의 “신정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래서 “G.G. 헤릭(Herrick)”은 “칼빈은 이제껏 살았던 그 어떤 인물보다도 ‘프로테스탄티즘의 교황’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칼빈은 자신이 주장한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여 신중하게 연구하지 않았고, 그저 어거스틴의 “철학과 신학”에만 의존했던 것이다.

1975년 12월 11일, 캐나다 “토론토”의 어느 침례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이렇게 설교했다. “이제 저는 ‘칼빈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신약성경과 복음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칼빈주의’는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칼빈주의는 5대 강령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칼빈 자신은 5대 강령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 5대 강령’은 교인들로 하여금 ‘칼빈의 지위와 신념을 바로 그 5대 강령으로 대변하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지난 수년 동안 5대 강령을 준수해 온 사람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더 이상 여러분의 ‘신학적인 지성’을 모독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으로서, ‘왜 우리가 존 칼빈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칼빈이 가르치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치는 진리에 전적으로 배치됩니다. 그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도 믿지 않았고, 지역 교회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믿지 않았으며, 믿는 성도가 받아야 할 침례도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천년주의자’였고 ‘언약 신학’을 믿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모든 것을 거절하겠습니다!”


칼빈의 추종자들은 성경에서 “예정”과 “선택”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매우 흥분한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말”과 다르게 성경 어디에도 “어떤 사람은 ‘영원한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정죄’로, ‘창세전’에 ‘무조건적’으로 ‘예정’하고 ‘선택’했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선택은 항상 “조건적”이다! 언제나 “전제 조건”이 있는 것이다. 『곧 1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2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4 순종함과 3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충만할지어다』(벧전 1:2). 이 하나의 구절에서만도 “선택”을 위한 조건이 무려 “네 가지”로 제시된다[위 구절에서 설명의 편의를 위해 3과 4의 순서를 바꾸었음].

1 우선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된다. 주의할 사실은, 칼빈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미리 아심”과 “미리 정하심”(예정)은 서로 동일한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리 아는 것”과 “미리 정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둘 간의 의미상 차이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구분한다.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기 때문에 미리 아실 수 있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설령 누군가가 어떤 일을 ‘미리 정하지’ 않았다 해도, 얼마든지 그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해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을 고의로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될 사람”으로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고, “미리 알고 계셨다!”

2 또한 선택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세전에 무조건 택함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된다.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림이 마땅함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시어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처음부터[from the beginning]』는 칼빈주의자들의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창세기 1:1”의 시점인 『태초부터[from the beginning]』(잠 8:23)가 아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처음부터』를 의미하는데, 곧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된 그때”(행 17:1-9, 살전 1:9)를 가리킨다. 복음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증거되고, 또 그들이 증거된 복음을 믿었던 바로 그 “처음부터”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그들이 택함받고 구원받게 된 것인데, 이 구절에서도 선택을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 즉 『성령의 거룩케 하심』과 『진리를 믿음』이다. 한편 이 두 가지 조건은 서로 별개가 아닌데, 어떤 죄인이 진리를 믿었을 때 성령께서 그 죄인을 거룩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진리』(요 14: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을 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셔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그 죄인을 『거룩케』 하시는 것이다. 이런 위대한 구속 사역을 히브리서 9:12-14에서 잘 보여 준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3 이런 이유로 선택을 위한 “세 번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또 하나의 조건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피를 뿌리시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 해도 택함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아무리 피를 뿌려 놓으셨다 한들 어떤 죄인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절대로 택함받을 수 없다. 여기서 주의할 사실이 있는데, 현 “교회 시대”에 복음이나 구원과 관련하여 “순종하라”는 명령은 “복음을 믿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라”는 의미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들을 순서대로 주목해 보라. 『모든 민족 가운데서 믿음으로 순종케 하나니』(1:5).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고자』(16:26).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6:17). 『그러나 그들이 모두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니라. 이사야가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10:16,17). 이상의 구절들을 종합해 보면,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곧 “복음을 믿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택을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대로 다시 정리해 보면, 1 우선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이 있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보다시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예정』이란 것도 애초부터 성립할 수가 없다! 더욱이 “미리 정하심,” 곧 『예정』이란 것도, “지옥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예정』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의 휴거” 때 일어날 『몸의 구속』(롬 8:23)을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인데, 이러한 “예정”에 따라 구원받은 성도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빌 3:21), 즉 『썩지 아니할 몸』과 『죽지 아니할 몸』(고전 15:53)을 “반드시” 입게 된다!


2 두 번째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전제되어야 한다.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숨을 거두실 때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외치시며 그분의 모든 피를 흘리시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택함받을 수 없는 것이다.

3 세 번째 조건은 『순종함』인데,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한다. 어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한, “택함”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4 네 번째 조건은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복음에 순종하는 즉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데,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아나게 하시고(거듭남), 그와 동시에 “성령 침례”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5 이로 인해 선택을 위한 조건으로 “마지막 한 가지”를 더 제시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엡 1:4)라는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이전에[창세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 하심이니라』(엡 1:4-6).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고, 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택함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전제 조건들”을 무시하는 “칼빈주의의 거짓 교리”는 『저주를』(갈 1:8,9) 받을 『다른 복음』(갈 1:7)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극단적 칼빈주의자”가 아닌 “온건한 칼빈주의자,” 곧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신실한 칼빈주의자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선택’이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근거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마련해 놓으신 구원을 받도록 초청되어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의 의미를 뜻한다.” 또 다른 온건한 칼빈주의자 “R.A. 토레이”(Torrey)는 “성경은 진리의 모든 면을 제시하는 무한한 마음의 계시다. 그런데 우리 칼빈주의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진리를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말했는데, 칼빈주의자들이 성경 말씀을 왜곡시켜 말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윌리엄 페팅길”(William L. Pettingill)은 말하기를, “최상의 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 말씀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신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을 주장하심과 동시에 ‘인간의 책임’도 요구하신다. 두 가지를 다 믿고, 두 가지를 다 설교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아더 피어슨”(Arthur T. Pierson)은 “예수님께서는 ‘선택’이나 ‘예정’을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하나의 ‘철학’이다.”라고 말했고,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만일 칼빈주의가 복음이라면, 칼빈주의는 성경에서 제시한 복음과 일치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한글”로 올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고, 이 땅에 “성경침례교회”와 “말씀보존학회”를 세워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확산시킨 “이송오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되기 전부터 성경에 관심을 가져 온, 70세가량의 ‘장로교 통합 측’ 장로 한 사람이 나의 사무실에 자주 들렀었다. 그는 <한글킹제임스성경>뿐만 아니라 우리가 펴낸 책들도 여러 권 사 갔다. 그는 ‘한의학 박사’이자, ‘신학 박사’이기도 했는데, 그에게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열심히 하고 있다’는 대답만 했다. 그는 매우 딱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그와 함께 ‘이북’이 고향인 선배가 어느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었는데, 약 80세가 된 그 선배 역시 그가 속한 교단의 장로였다. 어느 날 오전 그의 ‘교장실’에서 그의 구원을 점검했을 때, 그는 구원받지 못한 채로 30년 동안이나 장로로 섬기고 있었다. ‘오늘 죽으면 천상의 낙원에 갈 수 있는 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도 아느냐’고 하니, ‘안다’고 했다. ‘그러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는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접 기도’를 하고 구원받았다.”

자,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자들의 현주소”이다. “성경 말씀”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철학 체계”를 믿을 것인가?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 말씀을 버리고 “칼빈주의 철학 체계”를 붙드는 순간,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채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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