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열두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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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9월호>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믿음”(common faith)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영,” “같은 생각,” “같은 지식,” “같은 사랑”을 소유한 성도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같은 믿음[common faith]』(딛 1:4)이다. 이런 “평범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믿고 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무오하게 기록되었다. 둘째, 그렇게 기록된 성경은 시대를 거쳐 오면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집성되고 보존되었다. 셋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되었기에,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현재 사용하는 성경은 그것이 필사본이든, 번역본이든, 처음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킹제임스성경을 옹호하다, King James Version Defend- ed>의 저자 “에드워드 힐스”(Edward F. Hills)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사실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순수한 믿음일 뿐 아니라 논리적인 믿음이다.”라고 말했고,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원문비평학자인 “존 버간” (John W. Burgon)은 “성경의 최초의 기록이 하나님에 의해 문자 하나하나까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필연적으로 그 모든 기록은 시대를 통해 섭리 가운데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성경에 대해 올바른 믿음과 자세를 지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믿고, 전파하고, 실행하라고 주신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어떤 성경인지 올바르게 분별한다. 하지만 성경 변개자들이나 “최종권위”(final authority)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왜곡하는 자들, 예를 들어 원본이나 원어를 운운하면서 성경의 원본 또는 히브리어 및 헬라어 원어 성경들만, 심지어 영어 <킹제임스성경>만 영감이 주어진 오류 없는 성경이고, 그러한 성경들만 최종권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시시각각 우리의 “평범한 믿음”을 파괴하기 위해 “틈”을 노리고 있는데, 항상 우리는 성경적인 믿음과 지식에 따른 올바른 분별력을 견지함으로써 그런 자들의 공격과 미혹, 그리고 그것들로 인한 모든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서 언급한 “평범한 믿음”으로 인도받은 사람들 중에는 “성경 보존”에 크게 기여한 헬라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받아들인 원문”) 편집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 1503-1559),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보나벤투라 엘지버”(Bonaventura Elzevir, 1583-1652)이다. 두 사람을 더 언급하면 “스테파누스”의 의붓아버지 “시몬 드 콜리네우스”(Simon de Colinaeus, 1480-1546)와 “보나벤투라 엘지버”의 형제인 “매튜 엘지버”(Matthew Elzevir)를 들 수 있다. 특히 “데오도르 베자”는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열두 구절”(9-20절)에 관하여, 성경 변개자 “제롬”(Jerome, 347-420)이 “성경에 역행하는 증거,” 곧 “거짓을 논증한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 구절들의 영감성과 진실성을 주장했다. 성경을 제멋대로 난도질하는 현대의 비평적인 학자들과는 반대로,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을 철저히 지켜 낸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봤던 가장 오래된 모든 필사본에서 이 부분을 발견했음을 증거한다.” “에라스무스” 역시 “마지막 열두 구절”의 영감성과 진실성을 강조했는데, 변개된 “시내 사본”(A.D. 350)이 “열두 구절 전체”를 삭제한 것과 다르게, “그 구절들을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보존하여 기록해 넣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말했다.

한편 “에라스무스”는 “제롬”이나 다른 교부들의 저술들을 연구하면서 신약 성경 원문과는 다른 다양한 “이본”(異本, variant readings)에 관해 알게 되었고, 이에 그는 그의 “헬라어 성경”을 편집하면서 이런 “이본들의 문제”와 “성경의 정경에 관한 문제들,” “성경 본문에 대한 비평적인 문제들”까지 연구하여, “성경 뒤에 첨부한 주석”들에서 심도 있게 다뤘다. 말하자면 그런 문제들에 관한 “에라스무스”의 지식이 오늘날 학자들에게 알려진 이본들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보다 460년 정도 앞서 있었던 것인데, 특히 그가 그런 이본들에 관한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에라스무스”는 성경 변개자들인 “그리스바흐,” “라흐만,” “티쉔돌프,” “웨스트코트,” “홀트,” “네슬,” “알란드,” “메츠거” 등과 같은 현대 학자들과 비교할 때,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올바른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6:13”이라든지, 예수님과 부자 청년 사이의 대화를 다루는 “마태복음 19:17-22,”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인 “마가복음 16:9-20,” 천사들의 찬양을 다루는 “누가복음 2:14,”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천사가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돋우어 준 내용과 예수님의 고뇌, 그리고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진 땀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누가복음 22:43,44,”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요한복음 7:53-8:11,” “디모데전서 3:16”의 “경건의 신비” 등에 대해, “올바른 본문”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내용을 헬라어 성경 뒤에 첨가한 주석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이상 언급한 구절들은 현대의 “성경 변개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본문들이지만, 성경 보존에 관해 “평범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에라스무스”에게는 그 말씀들을 성경 본문에 담는 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본 글에서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16:9-20”이, 사탄에 의해 변개된 한글 성서들인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에서 “꺾쇠괄호”([ ])로 묶여 있고, “새번역”에서는 “이중 꺾쇠괄호”([[ ]])로 묶여 있다. 그런 다음 “권위를 인정받는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은 8절에서 마가복음서가 끝남.”이라고 함으로써 원본에는 없는 말씀이라고 거짓말한다. “쉬운성경” 역시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고, 변개된 영어 성서들인 “NIV”와 “NLT”의 난외주 및 본문 설명에서는 “대부분의 신뢰할 수 있는 초기 필사본들과 다른 고대 증거들은 마가복음 16:9-20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모두 하나같이 “에버하트 네슬”(Eberhard Nestle, 1851-1913)의 비평적인 “헬라어 원문,” 곧 “성서공회연합회”에서 출간한 “네슬 - 알란드 판”에서 번역되었기 때문에 “꺾쇠괄호” 표시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성경 변개자들의 거짓말과 다르게,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필사본은 “대부분의 신뢰할 수 있는 초기 필사본들”이 아니고, 변개된 필사본들인 “바티칸 사본”(A.D. 350), “시내 사본”(A.D. 350), “소문자 필사본 274,” 세 개뿐이다. 특히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은 활용 가능한 필사본들 중에 가장 변개가 심한 필사본들이며, 두 필사본 모두 “구약의 외경들”을 담고 있다. 더욱이 “시내 사본”에는 “신약의 외경들”까지 들어 있다. 3세기의 “콥트어(이집트어) 사본”에도 이 구절들은 삭제되어 있다. 또한 2세기의 “암모니우스 사커스”와 3세기의 “클레멘트” 및 “오리겐” 역시 이 “열두 구절”을 삭제했다. 이 중에서 “암모니우스 사커스”는 그 구절들을 최초로 삭제한 장본인인데, “신지학”(神智學) 협회의 창시자인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 1831-1891)는 그를 가리켜 “루시퍼 접신술의 창시자”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마지막 열두 구절”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들은, 대문자 필사본이 18개, “소문자 필사본”이 600개나 된다. 또한 1세기의 “파피아스,” 2세기의 “저스틴 마터,” “이레내우스,” “터툴리안,” “타티안”의 <디아테사론>(사복음서의 조화), 3세기의 “히폴리투스,” “카르타고 공회,” “빈센티우스,” “사히딕 역본,” “필라티 행전” 등도 “열두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존하고 지켜 냈다. “UBS” 제3판의 공동 편집인이자 <헬라어 신약의 원문비평학적 논평>의 저자인 “브루스 메츠거”(Bruce M. Metzger, 1914-2007)는 이렇게 말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그 밖의 헬라어 표준원문 번역본들의 본문으로 인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며, 그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들은 무수히 많다.” 이 주제에 관하여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책,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 The Last Twelve Verses of Mark>의 저자인 “존 버간”은 새로운 역본들 안에 있는 각주와 밑줄과 괄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그것들은 분명 학식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 문제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본문에 대해 의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분명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들이라는 사실은 “필사본 증거”를 통해 충분히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수년 전 “개똥철학”이나 가르치는 도올 “김용옥”이 변개된 성서들을 들먹거리면서 “마가복음 16:9-20”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폄훼한 적이 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조차도 사실로서 확인하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세 연인,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무덤에 들어갔다가 충격 속에 나오는 장면으로 갑자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 얼마나 ‘강렬한 드라마’인가! 이렇게 위대한 드라마의 ‘엔딩 장면’을 놓고 밑 안 닦은 것 같다는 식의 투정들, 예수의 부활 현현의 장면이 있었을 것이라는 둥, 계속된 부분이 여기서 뜯겨져서 없어졌을 것이라는 둥, 복음서 저자가 잡혀가는 바람에 완성을 못했을 것이라는 등등의 하찮은 췌언을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일삼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것이 바로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 등 변개된 한글 성서들을 쓰는 교회들의 “비참한 실상”인데, 구원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고 무식한 “철학자”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경을 멸시해도, 이들 어리석은 교회들은 그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비평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성경전서”에 따르면, 그 “열두 구절”이 본래 성경에는 없었다가 후대에 첨가된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열두 구절”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변개된 성서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 왜 굳이 믿음을 파괴하는 그런 이상한 성서들을 붙들고 있는 것인가? 성경은 『모든 일을 시험하여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잡으라.』(살전 5:21)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이 “열두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지켜 낸 “에라스무스”는 “농부, 직공, 뱃사람, 아낙네, 스코틀랜드인들, 아일랜드인들, 터키인들, 사라센들, 곧 이슬람교도들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순수한 신약’으로 그 안에서 말씀하시고 치유하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되, 육신의 눈으로 뵙는 것보다 더 진실하게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독자 여러분은 그러한 성경을 갖고 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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