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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천년주의 신앙이 성경적으로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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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7월호>
<세대적 진리>의 저자 “클라렌스 라킨”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는 모든 시대적인 진리를 푸는 열쇠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재림의 시기”와 맞물려서 “종말론”에 관한 세 가지 이론이 있는데, “전천년주의,”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이다. 이 이론들은 요한계시록 20:1-9에서 여섯 번 언급되고 있는 “천 년,” 곧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 계 20:6 -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통치하리라.』)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관계에 대한 각기 서로 다른 해석에서 나왔다.우선 “전천년주의”(Premillennialism)는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신다는 이론으로 “성경적인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에 “후천년주의”(Postmillennialism)는 천년왕국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학설인데,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들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어거스틴”이 강력하게 주창하고 확산시킨 “비성경적이고 진화론적인 이론”이다. 또한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는 “천년왕국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히 제시할 수 없었던 “후천년주의자들”이 “차선책”으로 만들어 낸 학설이며, 이 이론에 따르면 “천 년”은 문자적인 기간이 아니라 불특정한 “상징적인 기간”이고, 하나의 어떤 완성된 기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저 “천년왕국 같은 세상”이 일정 기간 지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허황된 이론인 것이다. “천 년을 ‘문자적인 기간’으로 볼 것인가, ‘상징적인 기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부분만 다를 뿐, “성경의 해석 방법”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및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역사관,” “교회가 행해야 할 구체적인 실행” 등 나머지 대부분의 신학적 가르침은 “후천년주의”와 대동소이하다.
“클라렌스 라킨”은 “종말론”에 관한 세 가지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예언은 ‘성경의 신비를 푸는 열쇠’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지금은 이 세상이 어둡지만, ‘확실한 예언’이 우리를 비춰 주고 있다(벧후 1:19). 예언은 일기 예보처럼 개연성 위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미리 기록된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예언을 이해하고,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진리대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말씀’을 깨닫게 된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책이 될 것이다. 교리와 예언적인 진리가 정돈되며, 더 이상의 혼동이 없고, 우리의 신학 체계는 질서가 잡힐 것이다.”
흔히들 “전천년주의”가 19세기 후반 영국 플리머스 형제단의 “존 다비”에 의해 처음으로 주창되고, 1909년 <스코필드주석성경>의 영향으로 확산된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전천년주의 역사”를 2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으로 축소시키고, “전천년주의”를 마치 근현대에 갑자기 제기된 이상한 “신학 이론”으로 비평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전혀 다르다. 우선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일종의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이는 “이사야”부터 “말라키”까지 17권의 “선지서들”과,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사도들이 기록한 22권의 “서신서들” 및 “예언서”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내용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 두드러지며, “사도 바울” 역시 “마지막 날들에 교회들이 배교하고 죄악들이 급증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성도들이 간절히 바라야 할 복된 소망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사도인(행 13:43) “바나바”도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7천 년 체계”를 언급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창조)을 끝내셨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6천 년 안에 모든 일을 끝내실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아들(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시고 일곱 번째 천 년에 쉬실 것이다.”
이러한 “전천년주의 신앙”은 소위 “교부들의 시대”에도 이어졌는데, “저스틴 마터”(100-165)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있고, 에스겔과 이사야에서 가르친 대로 예루살렘에 ‘천 년의 기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왕국’을 세우시며,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성도들 가운데서 그곳을 통치하신다...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을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교리의 초석이다.”라고 했다. “폴리캅”의 제자이자 “리용의 감독”이었던 “이레내우스”(130-202)는 “3년 반 동안 계속되는 적그리스도의 활동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사탄을 결박하시고, 부활한 무리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천 년’을 통치하신다.”라고 말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과 관련해서는 “홍수 이전에 ‘아담’에게 주신 것”과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주신 것,” “그 이후 ‘모세’에게 주신 율법,” 그리고 “교회에 위탁하신 은혜의 복음” 등으로 나누었다. 또한 “터툴리안”(160-220)도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시어 왕국을 통치하실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다시 말해 “오리겐”(185-253)을 제외한 교부들 대부분이 “전천년주의자들”이었으며, 다만 당대에는 “천년지복설”(Chiliasm)이란 용어로 불렸을 뿐이다.
그 이후로는 성경대로 믿고 실행했던 “성별주의 그룹들”이 “전천년주의 신앙”을 이어 나갔는데, 2세기 중엽의 “몬타니스트”를 시작으로, 3세기 후반의 “노바티안,” 4세기의 “도나티스트” 등이 그러했고, 또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로 불리는 로마카톨릭과 교황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중세 암흑시대”에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폴리시안,” “알비겐스,” “보고마일,” “왈덴스” 등이 목숨을 걸고 그 믿음을 지켜 냈다. 한편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회복된 이후에는, “존 칼빈”을 위시한 개혁자들이 “후천년주의 거짓 교리”를 붙들고 있는 동안, 성경대로 믿는 “재침례교도들”이 “전천년주의 믿음”을 지켜 나갔다.
그러던 중 섭리로 보존된 성경을 기반으로 복음 전파와 성경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전천년주의 믿음”이 신학적으로 체계화되었는데,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딤후 2:15)라는 명령에 따라 “경륜에 따른 시대 구분”이 체계화된 것이다. 1640년 “윌리엄 고지”(1575-1653)가 “여섯 개의 경륜”을 제시했고, “피에르 포이레”(1646-1719)는 “일곱 개의 경륜”에 따른 “전천년주의 체계”를 제시했으며, “아이작 와츠”(1674-1748)는 “여섯 개의 경륜”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전천년 세대주의”를 확립한 사람들로는 “존 테일러”(1694-1751), “존 플레치어”(1729-1785), “존 프리스틀리”(1733-1804), “데이비드 보그”(1750-1825), “아담 클라크”(1762-1832), “조지 파버”(1773-1843), “데이비드 러셀”(1779-1848) 등이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들 “전천년 세대주의자들” 중에는 로마카톨릭 신학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는 “존 넬슨 다비”(1800-1882)가 “일곱 개의 경륜”(1 에덴에서 홍수까지, 2 노아, 3 아브라함, 4 이스라엘, 5 이방인, 6 성령, 7 천년왕국)을 제시했고, “사무엘 자비스,” “J.H. 맥컬로,” “존 페이 스미스,” “존 콕스,” “존 커밍,” “조엘 존스,” “W.C. 베인,” “찰스 핫지,” “로버트 댑니,” “존 그레이브스,” “사무엘 앤드류스,” “윌리엄 팔레인,” “조지 펨버,” “로버트 카메론,” “조지 윌슨,” “아돌프 녹,” “조지 솔타우,” “A.E. 녹,” “에델버트 벌링거,” “놀만 해리슨,” “조지 거드브로드,” “C.A. 카데스,” “해리 아이언사이드,” “데이비드 쿠퍼,” “아더 아이스벨,” “조지 크롤리,” “알게논 폴록,” “루이스 췌이퍼,” “아이작 맬드만,” “존 F. 왈부어드” 등도 각기 나름대로 “전천년주의 체계”를 제시했다. 특히 “C.I. 스코필드”가 “전천년 세대주의”를 기독교계 안에 확산시키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고, “로버트 앤더슨 경”은 후천년주의자들과의 심도 있는 논쟁을 통해 성경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전천년 세대주의”를 변증했으며, “클라렌스 라킨”은 이 분야에 있어 “위대한 고전”인 <세대적 진리>를 통해 더욱 자세한 “전천년주의 체계”를 정립했다. “피터 럭크만” 역시 이 분야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신학자였다. 그 외에도 “찰스 스펄전,” “고든,” “D.L. 무디” 같은 위대한 “복음 전파자들”이 “전천년주의 신앙”을 가르쳤는데, 특히 “무디”는 “나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 돌아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지시하신다.”라고 역설했다.
이렇게 2천 년 교회사에서 “전천년주의 신앙”이 믿음의 유산으로 면면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인 “성경”이 “전천년주의 신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거하고 있는 많은 구절들 가운데 결정적인 본문이 “시편 104:35”이다. 『죄인들은 땅에서 소멸될지어다. 악인들은 더 이상 있지 못할지어다.』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서 “죄인들이 소멸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통치하실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만일 “후(무)천년주의자들”의 주장대로 현 교회 시대가 “왕국 시대”라면, 이 땅에 “죄인들”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왕국이 세워져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악인들”이 줄어들어야 옳지, 어떻게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급증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 땅에 왕국을 세울 수 없다! 이에 반해 천년왕국 기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악인들”이 있을 수 없다. 죄인들이 땅에서 소멸되고, 악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사탄의 미혹”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 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전율이 느껴진다. 그래서 위의 구절 후반부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오 내 혼아, 너는 주를 송축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어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지상에 세워지면,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인데, 우선 땅이 회복되고 아름답게 되며,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이 새로워질 것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이 천년왕국에서 “전 세계의 수도”가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영원한 왕”이요, “영원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가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위대한 구원을 이루신 분이고, 그분의 통치는 의와 화평 속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거룩한 성읍”은 그 안에 “천년왕국 성전”이 세워지면서 경배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천년왕국 성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에스겔 40-42장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주의 영광”이 성전 안에 거할 것인데, 구약에서 떠나셨던 “주의 영”이 다시 돌아오시는 것이다. 특히 천년왕국 성전에서 흘러 나가는 “생명의 강”은 “치유의 물”이 되고 물고기에게 생명을 준다(겔 47장). 『그 사면의 규격이 일만 팔천이며 그 날로부터 그 성읍의 이름이 ‘주께서 거기 계시다.’가 될 것이라』(겔 48:35).
또한 “사탄”이 결박된다(계 20:1-3). 6천 년 동안 온 세상을 미혹해 온 사탄이 결박되고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인간들에게 더 이상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천 년” 동안 사탄은 이 땅에 있지 않다. 그 기간에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신 후 온 땅의 왕이 되실 것이기에, 세상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게 된다. 전쟁 무기들을 불태울 것인데, 불태우는 데 7년이 소요된다(겔 39:9). 민족들은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고, 전쟁 무기인 칼과 창들을 두들겨 농기구로 만들 것이다(사 2:4).
무엇보다도 “자연계”가 회복되는데, 그 옛날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기 이전의 “에덴동산”처럼 회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회복된 자연 환경”을 마음껏 향유하게 되고, “인간의 수명”은 나무의 수명처럼 길어진다.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은 병들을 치유하며, 강둑 위에서 자라나는 나무 잎사귀는 약으로 사용되어 병자들이 치유된다. 자연의 피조 세계도 회복되고 평화를 되찾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자연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 내내 정해진 계절들을 통해 풍요로운 복을 주실 것이다. 동물들도 “본성”이 바뀌어 서로 간에 평화롭게 지낸다. 『또한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하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요,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리라. 또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또한 “빛”이 일곱 배나 밝아진다. 『또 주께서 자기 백성의 터진 자리를 싸매시고 매맞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날에, 달빛이 햇빛같이 될 것이요, 햇빛은 일곱 날들의 빛과 같이 일곱 배가 되리라』(사 30:26). 이상의 내용들은 “천년왕국”에 관한 묘사들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며, 특히 이런 완벽한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적 역사관”이다!
오늘날 “후(무)천년주의자들”이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들의 노력들은 모두 헛될 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천년왕국”은 죄 많은 인간들이 세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히 세워 보겠다고 무모하게 나서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학과 의학은 “질병”을 정복하지 못했다. 하나의 치명적인 질병을 정복하면, 또 다른 치명적인 질병이 등장한다. “가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전쟁” 역시 그 해법을 찾지 못했다. 흔히들 입버릇처럼 말하는 “세계 평화”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또한 아무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인류의 사망률은 말 그대로 100%이다.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죽는 것이다! “범죄”도 마찬가지인데, 범죄는 이 땅에서 가장 번창하는 사업이 되고 있다. “자연 재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태풍, 기근, 가뭄, 산불, 지진 등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단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완전히 해결하실 것이다. 모든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왕께서 하루속히 이 땅에 귀환하시기를 기도하는 편이 훨씬 낫다. 『어찌하여 너희는 왕을 다시 모셔오는 일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아니하느냐?』(삼하 19:10)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