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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왕국 (2) 성경에 역행하는 긍정적인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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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3월호>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피터 럭크만” 박사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런 종류의 책에 걸맞은 최고의 서문은 미국의 지난 열 명의 대통령의 연설에서 발췌하는 것이 알맞을 것 같다. 또 지난 열 명의 교황의 대중 연설도 함께 인용한다면 더욱 좋겠다. 그것들을 대략 요약해 보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정치와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도자들 중에 부정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2.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3. 이들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간과한 채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한다.」


보통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말 그대로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사실들”이 있고, 그 사건들과 사실들을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이 있는데, 이러한 관점을 가리켜 “역사관”(View of the History) 또는 줄여서 “사관”(史觀)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현재 연구하고 있는 “객관적인 역사적 자료”가 서로 똑같다 해도, 그 자료를 바라보는 “역사학자”마다, 그가 지닌 역사관에 따라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래서 “역사 왜곡”을 말할 때,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자체는 그대로 놔둔다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올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져 있으면 그것 역시 “분명한 역사 왜곡”이라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보다 “비뚤어진 역사관에 의한 왜곡”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악한 현 세상”에서 전혀 오류가 없고, 왜곡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편견도 없는 “참된 역사책”으로는 “성경”이 유일하다. 따라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무오한 역사책인 성경을 근거로 “올바른 역사관,” 곧 “성경적인 역사관”을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1892-1982)는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역사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역사가들에게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해서 가타부타 “모종의 결론”을 사람들 앞에 제시해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결국 그들은 인류의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소위 “선지자적인 임무”까지 맡겨져,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너 나 할 것 없이 “언젠가 아득히 먼 미래에,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유토피아’(이상향)나 ‘지상 낙원’이 이곳 지구에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에드워드 카”는 “인류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진보(진화)한다.”라고 망발을 늘어놓았는데, 이런 주장은 독일의 “관념론”을 완성시킨 “게오르크 헤겔”(1770-1831)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차용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그가 쓴 “필연적으로”라는 단정적인 용어는 “전체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선동”을 위한 “이데올로기”(이념)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잔인한 살인마이자 공산주의자인 “스탈린”처럼 언어의 올바른 개념을 혼란시킴으로 대중을 선동했고, 선동된 대중을 또 한 명의 미치광이 살인마이자 “전체주의자”인 “히틀러”처럼 그들이 꿈꿨던 망상의 세계로 이끌어 갔다.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상상이 곧 너희의 세계다!” 결국 망상에 사로잡힌 그의 꿈은 “필연적으로”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은 유럽 내 모든 국민들의 악몽이 되고 말았다. 왜곡된 역사관에 빠져 있던 “에드워드 카”는 “나치즘”으로 무장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체결된 “베르사유조약”의 희생자로 여겼고, 나치즘의 수장인 “히틀러”를 “경제적인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지도자”로 칭송했다. 특히 “히틀러”가 죽은 후에는 그가 옹호하고 칭송할 대상을 “스탈린”으로 갈아타더니, “소련은 ‘스탈린’의 ‘선의’(善意)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라는 헛소리를 해 댔고, 거짓말쟁이요 살인자 집단인 공산주의 “소련”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들을 향해 “눈먼 소경” 또는 “치유가 불가능한 환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시 말해 “에드워드 카”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요 8:44)인 마귀에게 그 마음과 생각이 사로잡혀 있어도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처럼 현대 역사가들 대부분은 “변증법적 유물론자들”로서 참된 역사책인 성경과는 “정반대의 역사관,” 곧 “형체가 사라져(고전 7:31) 멸망해 가는 이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는 ‘후(무)천년주의적’ 또는 ‘진화론적’ 역사관”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거듭나지 못한 대중”이 미래 역사에 관한 한 일종의 “환각제”나 “마약” 같은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 ․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부정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장밋빛 미래에 심취해 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간과하고, “올바른 성경적 역사관”을 무시한 채 “지구인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럭크만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해피엔딩’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병원 침대와 무덤만을 대중에게 주는 것은, ‘인간성을 거스르는 범죄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긍정적인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그렇다!”(Yes!)라고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은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긍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이 바로 긍정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면’이 조금도 없다”(p.127).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하라. 하나님에게서 왔는가? 나만의 생각인가? 사탄이 주는 파괴적인 생각인가? 이것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쉽다.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무조건 사탄에게서 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p.130).


그러나 성경은 “긍정적인 사고”가 “사탄”에게서 왔다고 말씀한다. 사탄은 창세기 3장에서 “최초의 여자”를 “긍정적인 사고주의자”로 만듦으로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저주를 초래했다. 『참으로[Yea]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창 3:3), 곧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는 지극히 “부정적인 명령”을 내리셨다. 사탄은 이 부정적인 명령을 거슬러 『참으로[Yea]』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평과 의문을 품게 했다. 그러면서 사탄은 그녀에게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인류가 그것을 먹는다 해도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다!”(창 3:4) “인류가 먹는 날에는 눈이 열린다!”(창 3:5) “심지어 인류는 신들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된다!”(창 3:5)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있고,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죽음, 전쟁, 기아, 질병, 자연재해, 환경 오염, 오일 쇼크 등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세상은 영원하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며, 이 땅에는 인류의 힘으로 최대의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최초의 인류는 사탄의 긍정적인 제안을 받아들였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변질되고 말았다.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음직하고[긍정적이다!] 보기에도 즐겁고[긍정적이다!]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긍정적이다!] 나무인지라, 그녀가 거기에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그녀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가 먹더라』(창 3:6). 여기에는 어떤 부정적인 요소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가 가져온 결과는 “죽음”이었고, 또 “영원한 심판과 저주”였다. 바로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사탄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고후 11:14)할 만큼 매우 “긍정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로버트 슐러”는 그의 책 <불가능은 없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긍정적 사고주의자’였고, 그는 사람들을 ‘보다 더 훌륭한 긍정적 사고주의자들’로 만들고자 노력했다.”라고 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긍정적 사고주의자”가 아니셨다. 그런 사실은 “가장 고통스러운 진리,” 곧 “가장 부정적인 진리”인 “지옥”에 관해 설교하신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주님께서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요 17:9) 않는다고 하셨고,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라고 명령하셨다. 심지어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고전 7:31) 가고,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벧후 3:10)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성경을 펼쳐서 “로마서 1-3장”을 읽어 보라. 내용의 90%가 부정적이다. “율법”에는 50개 이상의 금지 항목이 들어 있으며, “십계명” 역시 10개의 계명 중 8개가 부정적이다. 『그리스도의 복음』(롬 1:16), 곧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롬 10:15)조차도 그 내용은 “3분의 2” 이상이 “부정적”이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부정적이다!] 장사되셨다가[부정적이다!]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긍정적이다!]』(고전 15:3,4). 이렇듯 “부정적인 생각”은 결코 사탄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 심어 놓은 독소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가 사탄의 독소인 것이다!



“럭크만 박사”는 “부정적 사고의 힘”이라는 제목의 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과 인류와 세상에 관한 진리를 찾는 길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진리를 찾는 길은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관해 그것이 무엇을 말씀하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온스의 부정적인 면이 1파운드의 긍정적인 면의 가치를 지닌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최선책은 “지옥이 존재하고 있고 당신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부정적이다!] 것이다.」 죄인인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 그러면 지옥의 불길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멸망해 가는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 땅에 재림하셔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만왕의 왕,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통치하며 살게 된다. 참된 역사책인 성경은 그 책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복”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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