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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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자들의 50주년 기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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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7월호>

배교는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하나는 “참된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을 변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변개된 성경”을 쓰는 교회들은 “거리 설교”나 “개인 구령”을 통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변개된 성경은 “죽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죽은 성경은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조차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과연 이 땅에서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손에는 어떤 성경이 들려 있으며, 또한 그들은 어떤 성경을 펼쳐서 복음을 전하는가?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 이상 변개되어 있고 신약에서 2,200단어 이상 삭제된 “개역한글판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인가? 아니면“킹제임스흠정역성경전서”처럼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 낸 “짝퉁 성경들”인가? 이런 종류의 성경들을 쓰는 교회들에서는 좀처럼 “구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구령할 줄도 모른다!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12:3).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구령”(SoulWinning)은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혼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또는 아들의 나라로 이겨오는일”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셔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골1:13). 과연 구령의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하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성경이겠는가? 또한 그런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겠는가? “성경”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는 『하나님의 말씀』인데(히 4:12), “죽은 영”을 살려 내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혼”을 불구덩이에서 구원해 내지 못하는 성경이라면, 도대체 왜 그런 성경이 이 땅에 나와야 했는가?

미국의 대각성 운동은 1740년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성난 하나님의 손 안에 떨어진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사용하셔서 “대부흥”을 일으키신 것이다. 그가 이 설교를 했을 때,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외친 것도 아니고 그저 “설교 원고”를 차분하게 읽었을 뿐인데,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임했고, 그 결과 500명이 넘는 죄인들이 회심했다. 특히 그는 “칼빈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지옥의 엄중함”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라!”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말하자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여느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처럼 “지옥과 저주를 외치는 구식 설교자”였던 것이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은 1800년 “찰스 피니”(1792-1875)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는 “구원을 받으려면 각 개인이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라고 전파하면서 구원에 관한 “개인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했다. “칼빈주의”의 소위 “주권적 은혜”나 “저항할 수 없는 은혜” 따위의 용어들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사역으로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회심했는데, 이와 같은 “부흥의 비결”은 “바르게 보존된 <킹제임스성경>”과 “진지한 기도”에 있었다. 그는 “기도가 중단되지 않는 한 반드시 부흥이 뒤따라왔다.”라고 했고, “나는 오직 성경을 ‘나의 교본’으로, 성령님을 ‘나의 교사’로, 기도를 ‘나의 힘’으로 삼았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다. 만일 내게‘인생의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지난 40년이 넘도록 위대한 부흥에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이 일에 다시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1810년에는 찰스 피니에 뒤이어 “컴벌랜드 밸리”를 중심으로 제3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고, 1860년에는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 군대”를 중심으로 제4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1890년에는 “D.L.무디”(1837-1899)를 중심으로 제5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으며, 1920년에는 “빌리선데이”(1862-1935)를 중심으로 제6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1950년 “빌리그래함”(1918-2018)을 중심으로 제7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지만, 그가 배교했을 때 “대부흥의 역사”는 그와 더불어 멈추고 말았다! 빌리 그래함은 일생 동안 400번이 넘는 “복음전도집회”를 전 세계 6개 대륙을 다니며 185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개최했다. 그의 첫 집회는 그의 나이 28세 때인 1947년 9월,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열렸는데 6천 명의 청중이 모였다. 1954년 영국 런던에서는 12주 동안 집회를 열었으며, 뉴욕에서는1957년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15주 동안 집회를 열어 최장기간의 집회가 되었다.

빌리 그래함은 “침례교 근본주의자”로 사역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배교하고 말았는데, 1966년 6월 3일<카톨릭 헤럴드>지는 빌리 그래함을 일컬어 “미국 내 예수회의 친구”라고 말했다. 또한 1967년에는 그가 로마카톨릭의 “벨몬트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빌리 그래함은 그 사건의 중요성에 관해 말하기를 “지금이 순간 로마카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만나 형제로서 서로 인사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했고, 또 “이 대학교를 설립한 ‘복음’은 오늘날 내가 설교하는 ‘복음’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전 예수회 사제출신 “리베라”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에 빌리 그래함은 “바티칸”에 의해 이용당한 것인데, 당시 바티칸은 중남미에 있는 모든 “예수회”에 지령을 내리기를, 빌리 그래함이 설교할 때마다 그가 집회를 개최한 경기장을“카톨릭 교도들”로 가득 채우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특히 그런 방식으로 빌리 그래함이 “세계 최고의 부흥사”로 우뚝 서는데 수백만 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1972년 4월에는 빌리 그래함이 미네아 폴리스에서 국제 프란체스코 상을 받았는데,이것은 로마카톨릭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수여한 것으로 “수상 이유”는 그가 “초교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 그래함은 김장환 목사와 함께 복음전도집회를 열었는데, 당시 110만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배교의 길에 들어선 “타락한 우상,” 곧 요한계시록 17장의 창녀“로마카톨릭”을 위해 일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회에 불과했을 뿐이다(잭 T. 칙의 <연막>, 「제8장타락한 우상」 참조).

특히 그가 추천했던 “성경”을 보면 그의 배교의 실상은 더욱 드러나는데, <샬롯 옵저버>라는 한 일간지에서“어떤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묻는 한 독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경은 문학적으로 뛰어날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용 가능한 ‘현대언어’로 된 역본들은 많이 있는데, 당신이 직접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잠시만 비교해 보십시오. 성경들을 펴서 ‘같은 부분’을 놓고 읽으십시오... 고어체로 된 <킹제임스성경>을 포함해서 몇 가지 성서들을 읽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을 보도록 하십시오.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 영어 역본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애용되는‘NIV’(새국제역본)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NIV는 현대 기독교를 “배교로 이끈 결정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64,000군데 이상 변개시켰고, <킹제임스성경>에 계시된 진리들 중 90가지 이상을 모호하게 만들었다[피터 S. 럭크만의 <가짜 영어 성경 NIV>와 <럭크만 주석성경> 부록 102,「NIV, 정상이 아닌 바보들의 성서(The Nutty Idiots’ Version)」 참조].



배교자 빌리 그래함의 “여의도 광장” 집회가 열린 지 50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지난 6월 3일“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집회”가 열렸다. 설교는 빌리 그래함의 장남 “프랭클린 그래함”이 맡았다. 30분 정도 이어진 그의 설교는, 서너 번 반복되는 “그의 짤막한 구원 간증” 외에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인상 깊은 내용도 없고, 열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어떤 도전적인 메시지도 없는 아주 밋밋한 “복음 설교”였다. 무엇보다도 “복음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인 “죄에 대한 심판,” 곧 “지옥”에 관한 내용이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반쪽짜리 복음”이었다. 오늘날 배교한 목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프랭클린 그래함도 지옥에 관한 설교를 꺼린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지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가증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옥에서 건져 내실 “구주”(Saviour)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제1차 “대각성 운동”을 낳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지옥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라도 죄인들을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회오리바람 앞의 먼지같이 날려 버리시며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 앞의 마른 검불같이 태워 버리십니다... 지옥의 불길은 이미 여러분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며, 지옥의 용광로는 뜨겁게 달아올라 여러분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참한 세상, 끝없이 타오르는 유황 불못은 지금 여러분의 발밑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지금 지옥은 여러분을 삼키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대에 사역했던 “길버트 테넌트”(1703-1764)도 제1차 대각성 운동의 “도화선”이 된 인물인데, 그 역시 “지옥을 외치는 구식 설교자”였다. 그는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고, “회심하지 않은 목사들의 위험성”이라는 설교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옥을 전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잃어버린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적부흥이나 대각성을 일으킬 수도 없다! 성경은 지옥에 관해 여러 차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특히 누가복음 16:19-31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사건”에 관한 묘사는 실제 모습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지옥 현장”을 이미 녹화된 중계 화면으로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이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어린아이,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삭제된 장면이나 신호음으로 대체된 대화 내용은 단 한 가지도없다. 보기 불편하고 듣기 거북하다는 죄인들의 불평불만이 듣기 싫어 걸러 내거나 필터링한 내용도 전혀 없다. 반역 과저주를 상징하는 숫자 “13,” 곧 본문 “열세 개의 구절”을 통해 “지옥의 실상”을 문자 그대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지옥의 냄새”를 풍기고 “지옥의 소리”를 들려주고 “지옥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는 등 인간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4D 상영 시스템”으로 매우 현장감 있게 “지옥의 현실”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현장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몸”을 떠난 어떤 죄인의 “혼”이 지옥 불 한가운데로“쾅!” 하고 떨어졌을 때, 그 죄인이 지옥에서 직면하게 될 공포란 과연 어떤 것이겠는가? 상상 이상의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주위 사면이 “온통” 괴로움과 고통 속에 울부짖는 “비명 소리”뿐이고, 불에 타는 유황 냄새로 인한 썩은 계란냄새와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 순간 태양의 표면 온도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니,뚫려 있는 구멍들, 곧 “눈”과 “코”와 “귀”와 “입” 등에서 불길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그의 혼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살이 타고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으로 미친 듯이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며 뒹굴고 온몸이 뒤틀리는 경련이 일어날 때, 그를 더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그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끔찍한 현실이다. 『그 역시... 거룩한 천사들의 면전과 어린양의 면전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누구든지 밤낮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0,11). D.L. 무디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지옥을 설교해야 한다면, ‘눈물이 없는 마른 눈’으로는 절대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고, 빌리 선데이는 “지옥은 마귀가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베푸는 최고의 배려다.”라고 말했다.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지만 그 출구는 이 땅에 살아 있을 때만 발견할 수 있다!


배교한 교회들의 “50주년 기념대회”는 그저 종교인들의 형식적인 행사로 막을 내렸다. 거기에는 죄인들의 “참된 회심”도, 성도들의 죄에 대한 “참된 자백”도, 주님을 향한 “참된 헌신”도 없었다. 영적인 부흥도, 대각성도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 있어야 할 “참된 복음”과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끝을 향해가고 있는 현 “배교의 시대”에는 부흥과 개혁의 시대에 일어났던 규모의 “복음전도집회”나 “대각성 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설교자 “샘 모리스”는 “재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를 쓴웃음 짓게 만드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설교단이나 라디오를 통해 이렇게 설교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곧 오십니다. 모든 표적들이 이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큰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재림 때가‘노아의 날’과 같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대부흥의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120년 동안 아무리못해도 ‘천 번 이상’ 설교했을 것인데, 우리가 아는 한 그의 가족 외에는 단 한 명의 혼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노아는‘영적 대각성’의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죄악이 가득 차고, 범죄가 만연하며, 육신적이고 사탄적이며 타락해버린 그런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 곧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바른 성경을 지키는 일”을 포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 『진실한 증인은 혼들을 구해 주나, 속이는 증인은 거짓말을 하느니라』(잠 14:25).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우리 안에 “참된 생명”이 들어와 있다면, 그 생명은 또 하나의“참된 생명”을 낳게 된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잠 11:30)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가 “내일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한 것처럼, 구원받은 “의로운 성도들”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생명의 나무를 심겠다.”라고 결심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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