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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키세덱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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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3월호>
질문 :아브라함이 만난 멜키세덱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로 보입니다. 이 멜키세덱이 혹시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 :
멜키세덱은 아직까지 추정만 할 뿐 정확히 누구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인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멜키세덱에 관하여 『멜키세덱에 관해서는 우리가 할 말이 많아도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렵도다.』(히 5:11)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 신비로운 인물에 대해 아직 계시해 주지 않으시는지도 모릅니다.
멜키세덱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왕들을 쳐부수고 조카 롯을 다시 찾아올 때 멜키세덱을 만났습니다. 『아브람이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후,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에서 그를 맞이하러 나왔으며, 살렘 왕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 14:17,18). 이와 동일한 상황에 대해 신약의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이 멜키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서 그를 축복해 주었던 이라. 아브라함도 전체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으니,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 곧 화평의 왕이라』(히 7:1,2). 『의의 왕』은 문자 그대로 "멜키세덱"을 해석한 것이며(멜키 = 왕, 체덱 = 의), 『살렘 왕』은 그가 "살렘"을 다스리던 왕으로서 『살렘 왕 멜키세덱』(창 14:18)이기에 부연 설명한 표현입니다. 살렘은 "화평"이라는 뜻이므로 『살렘 왕, 곧 화평의 왕』이라고 불린 것입니다. 살렘은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므로,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살렘 왕』과 『의의 왕』이라면 당연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멜키세덱을 성육신 이전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족스러운 해석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의 왕)과 재림(화평의 왕)의 성격을 이름에 담고 있기에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기는 해도, 멜키세덱은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멜키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었지 『하나님의 아들』 자신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계보도 없고 시작한 날과 생의 끝도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것입니다(히 7:3).
멜키세덱의 정체와 관련하여 제기된 가능성들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신원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제기되는 것은 그가 "에녹"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8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됩니다. 『또 여기서는 죽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거기서는 살아 계시다고 증거되신 분이 받는 것이로다.』 즉 에녹은 죽은 적도 없고 여전히 살아 있으므로 에녹이 바로 멜키세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지금 에녹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러한 주장은 성경 어떤 구절로도 검증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멜키세덱과 관련하여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그가 노아의 아들인 "셈"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셈은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을 만났던 창세기 14장 당시에 여전히 살아 있었고, 당연히 "셈족" 전체를 다스리는 족장이었을 것입니다. 600세까지 살았던(창 11:10,11) 셈은 B.C. 184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정도면 살아생전에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출생까지도 보았을 것입니다.
셈은 그의 아버지 노아와 함께 대홍수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노아는 셈을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셈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창 9:26). 이것은 셈이 노아에게서 받은 "영적" 축복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 대부분은 셈족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아무도 셈을 당할 수가 없고, 따라서 아브라함이 셈으로 추정되는 멜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전혀 부적절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셈은 분명 셈족의 통치자로서 족장(왕)이었을 것이고, 그의 아버지 노아가 가족 가운데서 제사장 역할을 했으므로(『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창 8:20), 이런 노아에게서 영적 축복을 받은 셈이 모든 셈족의 대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연 중 필연으로, 셈으로 추정되는 『살렘 왕 멜키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불립니다. 셈과 멜키세덱은 그들의 존재 시점뿐만 아니라, 둘 다 "왕"과 "제사장"으로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해석의 신빙성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셈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계보"뿐 아니라 "시작한 날"과 "생의 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멜키세덱에게는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계보도 없고 시작한 날과 생의 끝도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했는데, 즉 "제사장 직분에 관해서"는 멜키세덱의 부모나 계보 혹은 출생과 사망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인 "기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의 정체에 대해 모든 것을 미해결된 채로 남기며 아무도 '확정할' 수 없게 하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이 구절 마지막 부분의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는 말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율법 이전의 셈이 지금까지도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는 해석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 시대에는 아론의 계열에 따른 제사장들이 있었고, 신약 시대에는 셋째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히 3:1), 그분의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들로(벧전 2:9)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멜키세덱이 누구냐의 문제는 우리가 휴거되어 주님께 직접 답변을 들어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휴거되기 전에 성경의 어떤 구절에서 그 실체가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멜키세덱에 관한 논의를 이쯤에서 접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특정 인물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멜키세덱이 대표적으로 예표하는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7:3은 멜키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말씀하는데, 멜키세덱의 이 영원성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 『선두주자이신 예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그곳으로 들어가시어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느니라』(히 6:20). 그러니까 멜키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인물인 것입니다.
또한 앞서 설명했듯이 멜키세덱은 『의의 왕』과 『살렘 왕, 곧 화평의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초림 때 주님께서는 "의"를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들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라...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열성은 있으나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롬 10:1-4).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그러나 재림 때는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계 19:11-21) 세상의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화평"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주의 전의 산이 산들의 정상에 세워질 것이요, 그 산은 작은 산들 위에 높여지고 백성들이 그곳으로 몰려들리라. 많은 민족들이 와서 말하기를 "오라, 주의 산과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자. 그가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치시리라. 우리가 그의 길에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백성 가운데서 심판하시며 먼 곳의 강한 민족들을 책망하시리라. 또 사람들은 그들의 칼들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들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 이 민족이 저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어올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미 4:1-3). 『그의 정부와 화평의 증가함이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바르게 세워지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는 데 끝이 없으리라. 만군의 주의 열성이 이것을 실행하시리라』(사 9:7).
이로써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원칙"은 "화평보다는 의가 먼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역도 화평보다는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먼저 전파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를 먼저 전파해야 하며, 그 뒤 이 악한 세상에 화평을 가져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멜키세덱이란 인물이 신비로운 것은 그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계보도 없고, 시작한 날과 생의 끝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으면서 영원히 산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그를 묵상하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낳은 적도 없고, 나오신 계보도 없지만 홀로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멜키세덱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철없는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분이시며, 오로지 "믿음"을 요구하시는,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작한 날도 생의 끝도 없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멜키세덱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시간의 유한성 속에 갇혀 있는 우리가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시며 "영원"이라는 처소에 거하시는 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 그의 이름이 거룩이신 분이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여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는도다』(사 57:15). 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멜키세덱이 예표한 "영원한 대제사장"을 믿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죄를 통회하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온다면,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품에 받아 주실 것입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