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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라”의 성경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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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2년 05월호>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를 통해 성경 번역의 문제와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많은 질문들이 본 학회에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 최근에 몇 차례에 걸쳐 설명해 주었던 것이 “아세라”는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대적하고 최종권위에 대한 거짓 주장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정동수 교수의 번역에 대한 질문이 함께 제기되었기에 “아세라”의 번역 문제를 설명함으로써 선의의 독자들에게 답변함과 동시에 정교수의 거짓 주장을 바로잡고자 한다.1. “아세라”는 우상의 형상이나 기둥이 아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아세라”에 해당하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단어는 “그로우브”(grove)이며,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은 “아세라”(ashera)이다. 반면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이하 개역성경)과 NIV를 비롯한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아세라 목상(木像),” “아세라 상(像),” 그리고 “Asherah pole”(아세라 기둥)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아세라”를 신으로 숭배받던 각종 자연물과 동물의 형상(形象, image)이나 기둥(pole), 혹은 여신을 새긴 상이나 기둥과 같은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오역한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아세라를 여신의 이름으로 왜곡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데 사용하는 원어(히브리어)의 함정에 그들도 빠졌기 때문이다. [개역성경과 NIV가 단지 아세라(Asherah)로 표기한 곳도 있는데, 이것을 형상이나 기둥으로 오해한 상태에서 문맥에 따라 “상/목상”이나 “pole(s)”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나 변개된 성경들이 오해한 것과 다르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상의 형상들이나 기둥”과 “아세라”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형상들(images)을 부수며 아세라들(groves)을 베어 낼지니라.』(출 34:13), 『세워 놓은 기둥들(pillars)을 깨뜨리며 그들의 아세라들(groves)을 불사를 것이며』(신 12:3), 『아세라들(groves)과 새긴 형상들(images)과 부어 만든 형상들(images)을 산산이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대하 34:4). 이 구절들 외에도 구약성경에서 총 40회 “아세라”에 대해 언급하는 모든 구절들에서 형상이나 기둥을 아세라와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사 27:9). 그러므로 <개역성경>이 아세라 상이나 목상으로 번역한 것은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다.
2. “아세라”는 “우상 숭배를 위해 우상이나 형상 및 제단 곁에 심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단의 나무들이 하나의 아세라(a grove)를 형성하며, 이런 아세라가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아세라들” (groves)이라는 복수 표현을 쓰고 있다.
(1) 아세라는 “살아 있는” 나무(tree)이지 형상이나 기둥을 만드는 죽은 나무(wood)가 아니다. 신명기 16:21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는 네가 만든 주 너의 하나님의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도 아세라를 심지 말며』 이 말씀은 살아 있는 나무(tree)를 심지(plant) 말라는 뜻이다. 아세라는 형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를 지칭한다는 것이 성경에 분명히 제시된다(신 7:5; 16:21, 대하 31:1; 33:19; 34:3, 왕하 23:14). 따라서 아세라의 살아 있는 나무들(trees)은 자주 베어졌다.
(2) 아세라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들을 심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그들이 아세라들을 만들어 주를 진노케 하였음이라』(왕상 14:15). 『또 아세라를 만들었더라』(왕상 16:33). 『아세라를 만들고』(왕하 17:16).
(3) 아세라는 “우상이나 형상 및 제단 곁에” 있는데, 그 모양은 우상이나 제단이 가운데 있고 그것을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베어 내고』(판 6:25).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허물었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베어 내었기 때문이라』(판 6:30). 이와 같이 우상과 그 제단 곁에 심겨진 나무들이 아세라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도 아세라를 심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신 16:21).
창세기 21:33에는 아브라함이 “에셀”을 심었다는 말씀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을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주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서 에셀(eshel, grove)은 아세라의 다른 표현으로 역시 “심겨진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말한다(에셀이라는 표현은 한 번만 나온다). 노아가 창세기 12:8에서 “높은 곳”에서 제단을 쌓은 첫 번째 사람이었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에셀을 심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러한 행위들은 노아와 아브라함의 때에 그들에게는 합당한 것이었으나 “이 땅에서 모든 나쁜 것은 좋은 것을 왜곡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좋은 의도로 나무를 심은 것이 왜곡되어 우상을 숭배하는 방법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배교한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3. 아세라(grove)는 “작은 숲”이 아니다.
아세라에 대한 정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그러므로 ‘groves’는 우상 숭배를 위해 심겨진 ‘작은 숲’을 뜻하며 결코 존재하지도 않은 여신의 이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아세라는 그 규모가 크든지 작든지 “숲”이라고 불릴 수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작은 숲”의 규모
먼저, 아세라는 우상을 둘러싼 “일단의 나무들”일 뿐이지 규모에 있어서 결코 “숲”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의 많은 나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에서 숲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은 “forest”나 “the wood(s)”인데, 이것은 자연 그대로의 큰 규모의 숲을 말하며 우리말로는 “숲”(숲은 수풀의 준말이다.)이나 “산림”(山林) 혹은 “삼림”(森林)이 적합한 표현이다. 반면 “grove”는 그 첫 번째 뜻이 “작은 숲”인데, 그 규모가 단지 “forest”에 비교해서 “작은” 숲이다. [“forest”(큰 숲)과 “grove”(작은 숲)의 차이는 나무들이 군집된 지역이나 넓이를 기준으로 할 때에 구분되는데, 단순하게 설명하면, 큰 숲(forest)은 인적이 드문 산지에 광활하게 펼져질 때 주로 쓰이며, 작은 숲(grove)은 마을이나 집에 인접한 산이나 언덕 등에 형성된 것이나, 특정 수종이 일정 지역에 군집된 것 등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다.] “grove”(작은 숲)는 정원이나 마당에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을 지칭하는 정도의 “작은”이 아니라, 적어도 한 언덕이나 산을 덮고 있는 정도의 나무들이 군집된 숲을 지칭하는 것이다.
(2) 뜻 번역이 아니라 음역이 필요한 이유
따라서 정교수의 번역이나 그의 홈페이지에 제시된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의 주장에서도 그가 오역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grove”의 정의를 에서 찾아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A small wood; a group of trees affording shade or forming avenues or walks, occurring naturally or planted for a special purpose. (작은 나무;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나 특별 목적으로 심겨져서 그늘을 제공하거나 가로수 길이나 산책로로 형성된 숲.)” 그가 근거로 제시한 이 정의에도 “gorve”의 첫 번째 뜻인 “작은 숲”의 규모가 “그늘을 제공하거나 가로수 길이나 산책로로 형성된 숲”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 “작은 숲”은 분명 성경이 말씀
하는 “아세라”(grove), 즉 “우상 숭배를 위해 우상 및 제단 곁에 심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이 아니며, 정교수의 주장처럼 “작은 숲”은 실제로 정원 정도의 작은 규모가 아니다.
영어 사전에서 “grove”를 찾을 때 처음 제시되는 뜻이 “작은 숲”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grove”(아세라)는 영어 사전의 첫 번째 용례에 나오는 “삼림(forest)보다 작은 숲(grove)”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아세라(grove)는 우상이나 제단 “곁에” 심겨졌는데, 중심에는 우상이나 제단이 있고 그 둘레에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은 한 우상이나 형상 및 제단을 위해 언덕이나 산을 덮는 많은 수의 나무들을 심어서 “작은 숲”을 조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만일 누구라도 “내가 의미하는 ‘작은 숲’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 정원 정도의 숲”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그런 정의는 그 사람의 오해에서 비롯된 자의적인 정의일 뿐이며, “grove”의 첫 번째 뜻인 “작은 숲”과는 다르다. 그런 의도였다면 “작은 정원”이라고 번역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교수가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영적 혼란 가운데 있다는 증거는 그의 번역과 설명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영어 사전을 인용해서 제시한 “grove”의 두 번째 정의는 이렇다. “둘째, Groves were commonly planted by heathen peoples in honour of deities to serve as places of worship or for the reception of images. (groves는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혹은 우상들을 접대하고자 경배의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대부분 이교도들에 의해 심겨졌다.)” 여기서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아세라(grove)가 두 번째 정의에서 말하는 것인데도, 정교수가 두 번째 정의에 따라 우리말의 적합한 단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정의에 따라 “작은 숲”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분명 첫 번째 정의와 두 번째 정의는 동일한 것을 설명하지 않는데도, “grove”가 무엇인가에 대해 두 번째 정의를 가지고 설명하고서도 정작 번역할 때는 첫 번째 정의대로 번역했다. 따라서 첫 번째 정의에 따라 “작은 숲”이라는 뜻 번역을 해 놓고서도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없기에 “작은 숲”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했다. 누구도 별도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소위 “작은 숲”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작은 숲”이라는 우리말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세라”(grove)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grove”를 읽을 때에는 첫 번째 정의의 뜻이 아니라 두 번째 정의의 뜻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우리말에서처럼 첫 번째 정의인 “작은 숲”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정의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의 “작은 숲”은 두 번째 정의와 같은 뜻이 없다. 이 단어를 통해서는 단지 첫 번째 정의에 따른 이해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작은 숲”으로 쓰고 두 번째 정의로 이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러한 주장을 한다면 작은 숲은 차치하고 “숲”이면 어떻고 “정원”이면 어떤가? 단어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정의하고 설명하면 된다는 것인가! 영어와 한글은 다르다. 분명히 작은 숲이라는 말은 두 번째 정의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세라(grove)에 대한 적합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grove”에 대한 번역으로 옳지 않다. 결국 우리말의 적합한 대응어가 없을 때 번역은 ‘뜻 번역’이 아니라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을 해야 하며, 그 단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3) 이와 같이 “작은 숲”이 틀린 번역이라는 사실에 관해서 성경이 아세라(grove)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① 아세라 “안에” 있는 우상
『또한 그가 그의 어머니 마아카까지도 태후의 자리에서 제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아세라 안에 우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because she had made an idol in a grove). 아사가 그녀의 우상을 부수어 키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3). [같은 말씀이 역대기하 15:16에도 있다.] 이 말씀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심고 “그 나무들” 안에 우상을 세워 놓은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상은 가운데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아세라”인 것이다. 나무들을 가지고 주변을 조성하여 우상이나 형상을 한가운데 놓는 것은 로마카톨릭의 전형적인 행위이며, 이교도들도 똑같이 행했다. 지금도 카톨릭 학교와 성당에 있는 마리아상을 둘러싸고 있는 “아세라”(grove)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명히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 가운데, 즉 “아세라”(grove) 안에 있는 우상은 함의 타락한 종교를 알려 주는 표시인 것이다. 그런데 정교수는 이 구절들에서 “작은 숲에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왕상 15:13, 대하 15:16)라고 오역하고 있다. 이런 오류는 “아세라”(grove)를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범한 것이다. 물론 아세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우상과 함께 있는 아세라는 우상 숭배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아세라(grove)는 정교수가 오해한 것처럼 “우상을 만드는 장소”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아세라(grove)는 정교수가 오역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도 작은 숲이 아니라, “우상과 제단 곁에 심겨져 우상을 둘러싸고 있는 일단의 나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② 푸른 나무 “아래에” 있는 아세라
아세라가 어디에 만들어졌는지에 관해서 성경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세라가 작은 숲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under every green tree) 그들을 위하여 산당들과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세웠으며』(왕상 14:23).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under every green tree)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세웠으며』(왕하 17:10). 성경은 아세라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즉 숲속에 세워졌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아세라(grove)는 산의 푸른 나무들 속에서도 주변의 자연적인 푸른 나무들과 구분되는 범위에서 인위적으로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아세라가 우상 숭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세라(grove)가 작은 숲이라면, 큰 숲(forest) 속에 작은 숲(grove)을 만들었다는 뜻인데, “큰 숲”(forest) 속에 “작은 숲”(grove)을 만든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문자적 의미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은 정교수가 오해한 것처럼 모순되지 않는다.
③ 주의 전에 있는 아세라
또한 아세라가 작은 숲이라고 번역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산 위나 푸른 나무 아래만이 아니라 건축 구조물 안에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시야가 우상 숭배를 척결하면서 『주의 전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모든 군상들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게 하여, 예루살렘 밖 키드론 들에서 그것들을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옮겼』는데(왕하 23:4), 주의 전에는 아세라를 위한 기명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세라도 있었다. 성경은 열왕기하 23:4과 같은 문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또 그가 주의 전으로부터 그 아세라를 예루살렘 바깥 키드론 시내로 가지고 나가 키드론 시내에서 불사르고,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백성의 자녀들의 무덤들 위에 뿌렸더라』(왕하 23:6). 분명히 주의 전은 작은 숲을 조성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며, 또 작은 숲을 일단의 나무들을 가져가는 것처럼 내어갈 수도 없다. 그런데 정교수는 “또 주의 집에서 작은 숲을 내어다가”라고 이치에 맞지 않게 오역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주의 전 안에 작은 숲이 조성된 것이 아니다. 단지 우상 숭배를 위해 일단의 나무들이 심겨진 것뿐이며, 그 나무들을 가지고 나가 불사르고 잘게 빻아 뿌렸던 것이다.
(4) 한편 “아세라”(grove)는 모든 경우에 우상 숭배를 위해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을 지칭하지만, 이 “아세라의 나무를 가지고 만든 하나의 우상”을 지칭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열왕기하 21:7에 언급되어 있다. 『또 그는 그가 만든 아세라의 새긴 상을 전 안에 세웠으니(he set a graven image of the grove that he had made in the house) 이 전은 주께서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택한 이 집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 역대기하 33:7이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또 그는 그가 만든 우상, 즉 새긴 형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온 지파 앞에서 택한 이 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 그런데 정교수는 아세라를 작은 숲으로 오역했기 때문에 열왕기하 21:7에서도 “또 자기가 만든 작은 숲의 형상을 새겨서 집에 세웠더니”라고 오역함으로써 성경 말씀을 변개시키고 있다.
4. 아세라는 “우상 숭배를 위해 우상 곁에 심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지칭하지만, 아세라 자체도 우상과 같이 숭배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주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더라』(판 3:7). 『이에 그들이 그들의 조상의 주 하나님의 전을 떠나 아세라들과 우상들을 섬겼으니 그들의 이 죄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임하였더라』(대하 24:18). 또한 성경은 아세라를 위한 장식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또 그가 주의 전 곁에 있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들이 아세라를 위하여 벽걸이 천을 짜는 곳이었더라』(왕하 23:7).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 성경의 “아세라”(혹은 아셀)와 영어의 “grove”는 우리말로 “작은 숲”이 될 수 없으며, 적합한 대응어가 없기 때문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하고[에셀 - 1회 / 아세라(들) -40회] 그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바른 번역이 아니면 의미를 왜곡하게 되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번역에는 음역이 있는 것이며, 그에 대한 주석이나 주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정교수가 틀린 주장을 하며 본 학회는 전혀 아세라(grove)에 관해 무지한 것으로 비방했는데, 이때 정교수가 근거로 번역하여 제시한 보우(G.D. Bouw)의 책(The Book of Bible Problems)은 피터 럭크만 박사의 책인 <문제의 구절들, Problem Texts>을 근거로 재구성한 후 몇 가지를 부연 설명하여 쓴 책으로 1997년에 출간된 것이다. 그러나 본 학회는 이미 보우의 책을 출간과 함께 “아세라” 이외의 다른 문제들에 참고하였음은 물론, 아세라를 다루고 있는 보우의 책의 모체인 럭크만 박사의 <문제의 구절들>과 주석서들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미 10년 전에 끝냈다. 필자는 1992년 이래로 아세라가 무엇인지 가르쳐 왔다. 그런데 정교수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말씀보존학회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방하여 반킹제임스성경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사역과 그 성경을 비방하는 것은 그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적인 계획 가운데 그분의 이름으로 시작하셨고, 변함 없이 수행해 오고 계신 그분의 성경 번역과 보존 사역이 본 학회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지속되고 있는데도 거짓으로 비방하며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정교수와 그 외의 대적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에 대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드러내 밝혀주고 계시며, 분별력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상의 설명이 선의의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교수를 비롯한 대적자들에게는 굳이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여 이 문제를 바로잡는 이유를 밝히는 바이다. 『어리석은 자에게 그의 미련함에 따라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할까 함이라』(잠 26:5).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