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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존 맥아더가 남긴 “형편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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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9월호>
미국 현지 시간으로 7월 14일, 소셜 미디어 X(옛 트위터)에 전 세계 기독교계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부고가 올라왔다. 말하자면 존 맥아더의 방송 사역인 “그레이스투유”가 맥아더의 사망 소식을 알린 것이다. 이 소식은 국내에서도 “세계적 성경해석가 존 맥아더 목사 별세,” “‘美 대표 복음주의 목회자’ 존 맥아더 목사 별세” 등의 제목으로 널리 보도되었다.존 맥아더는 1969년 이래로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라디오와 인터넷 방송 사역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친 “기독교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을 세워 학생들에게 강해 설교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가르친 신학자이기도 했고, 150권 이상의 책을 펴냈으며, 특히 “맥아더 스터디 바이블”을 통해서는 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한 저술가였다.
맥아더는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채 활동했으나, 여자 목사, 은사주의, 자유주의 등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으로 인해 미국 남침례교회(SBC)나 미국장로교회(PCA) 등과 같은 보수주의 노선에 속한 행사들에 주로 초빙되곤 했다. 이러한 행보 때문인지 국내 교인들에게도 맥아더는 흔히 “정통 그 자체”로 인식되곤 했다. 그의 설교, 특히 복음 설교는 명쾌한 데다 뭉클하기까지 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맥아더의 사역에는 명백한 과(過)가 존재했다. 세간의 관심이 다시 한번 맥아더에게 주목되는 이때, 그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맥아더의 복음 전파 사역을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만일” 하늘나라에 갔다면 맥아더 자신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서 그것이 이곳 지상에서 바로잡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성경에 대한 그의 태도다. 맥아더는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그 자체”라는 입장을 늘 확고히 했으며, <성경은 폐기될 수 없나니,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라는 책을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떤 번역본을 사용하는 게 최선인가? 궁극적으로, 그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형식 일치 역본들(KJV, NKJV, NASB, ESV)은 각각 장단점이 있으나, 모두 성경의 신뢰할 만한 번역본들이다. 만일 여러분이 내용 동등성 번역본을 읽고자 한다면, NIV가 가장 신뢰할 만하다.”
맥아더는 으레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로 NASB의 구절을 술술 읊곤 했다. 말년에는 마스터스 신학교의 학자들을 이끌고 NASB를 “개선한” 성서인 LSB(Legacy Standard Bible)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들은 맥아더에게 “성경”이 아니라, “성경의 신뢰할 만한 번역본들”에 불과했다. 그에게 “성경”은 “변개된” 원어 본문뿐이었다. LSB를 발행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구약으로는 슈투트가르트 히브리어 성경(BHS), 신약으로는 네슬-알란드 27판이었다.
맥아더가 사용한 원어 본문들이 원문비평학적으로 형편없다는 점도 큰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킹제임스성경>도 신뢰할 만하지만 NASB도 신뢰할 만하다면, 둘의 증거가 서로 다를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을 하는 분이 아니신데 말이다(말 3:6). 결과적으로 원어를 구사할 수도 없고, 성구집이나 어휘집을 갖추지도 못한 성도들 입장에서는 어떤 번역본도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어떤 성경을 봐도 “혹시 번역이 미흡하게 됐을지 몰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성도들에게 남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즉 학자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이것은 맥아더가 청중을 모으는 “영업 비밀”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런 술수는 맥아더가 “오리지널”은 아니다. 이 대배교의 시대에는 다들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니 말이다.
칼빈주의를 옹호했다는 것도 맥아더의 사역에 있어 큰 오점이다. 그는 극단적 칼빈주의자는 아니었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능력해졌기 때문에 아무도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맥아더는 “다이얼 인 미니스트리스”(Dial In Ministries)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라도 믿고 회개하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오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창세전에) 택함받았는가를 규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구원에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진리를 잘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칼빈주의 5대 강령의 맨 마지막 요소인 “성도의 견인”을 다룸에 있어 맥아더는 큰 잘못을 범했다.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의 믿음을 가리켜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늘 이런 식이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이야기하는가 싶다가도, “여러분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면, 끝까지 견디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 마음이 변질된다면, 애당초 구원받은 게 아니었던 것이지요.”라고 덧붙임으로써 성도들의 믿음을 뒤엎는 것이다. 그 말인즉, 결국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아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결국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란 없다는 말과 대동소이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은 믿음이 조금만 시들해져도 자신의 구원의 진실성을 규명하느라 위선적인 행위에 매달리게 된다.
혹 이런 얼토당토않은 교리에 미혹되어 있다면, 예수님께 열 명의 문둥병자가 치유받았을 때의 일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중에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드렸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열 명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아홉 명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이 시대의 죄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열에 아홉은 예수님을 믿어 죄들에서 깨끗해지기는 하되, 그 후 제 갈 길을 가 버린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에게 문둥병 증상이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영구적으로 깨끗해진 것이었다. 오늘날 실족해 버린 수많은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산다고 해도 구원은 보장된다. 천년왕국에서는 통치할 유업이 없이 살지언정 말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서도 맥아더는 이단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맥아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인간의 피였을 뿐이며,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한 구속이란(벧전 1:18,19) 그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한 구원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의 물리적인 피가 모종의 방법으로 십자가 이후에도 보존되어 하늘로 옮겨졌고 현재는 구원받는 혼 개개인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공개서한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럭크만 목사는 이와 같은 주장을 두고 “성도들의 영적 전쟁에서 가장 큰 무기들 중 하나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 자신의 섬김의 동기를 의심스러워하며 괴로워할 때 주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때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필요한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주님의 죽음은 한 번으로 족하다(히 10:11, 12).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영원하며 언제나 유효한 그분의 보혈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신다(요일 1:7-9, 히 9:14).
주님께서는 그 영원한 피로 셋째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고(히 9:12), 그 결과 저 우주 너머의 유리바다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다(계 15:2). 갈보리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수님의 피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 이래로 모든 인간은 몸을 썩게 하는, “잘못된 피”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달랐다. 바울은 주님의 피가 “하나님의 피”라고 가르쳤고,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행 20:28)라고 했다. 바로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정체성, 곧 그분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요일 5:6-8). 다시 말해 예수님의 피가 여타 인간의 피와 다를 바 없다는 맥아더의 주장은 주님의 신성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었던 것이다.
복음 전파는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복음을 전해 구령한 사람들이 바른 성경을 읽고, 건전한 교리로 무장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 열매는 곧 수포로 돌아간다. 루터, 웨슬리 등이 죽고 난 후 그 후예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맥아더의 사역도 마찬가지다. 그의 청중들은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도, 건전한 교리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열매가 드물고, 제대로 된 복음 전파가 희귀해진 이 시대에는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적어도 본지의 독자들만큼은 스스로 바른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함으로써, 그런 대열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