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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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골짜기와 에스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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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9월호>

성경에 등장하는 골짜기들 중에는 “엘라 골짜기”와 “에스콜 골짜기”가 있다. 이 두 골짜기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풍성한 영적 교훈을 주기에, 지금부터 한 골짜기씩 다뤄 보고자 한다.

“전쟁의 골짜기”인 엘라 골짜기

지난 399호(2025년 6월호)에서는 “길”뿐만 아니라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는 “므깃도 골짜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므깃도 골짜기”는 대환란 끝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2억의 기병대가 집결하여 전쟁을 벌일 장소이다. 이제 살펴볼 “엘라 골짜기” 역시 전쟁의 골짜기이지만, 므깃도 골짜기와는 전쟁의 양상이 다르다. 즉 므깃도 골짜기의 전쟁이 군대와 군대가 맞서는 전면전의 양상이라면, 엘라 골짜기의 전쟁은 장수 대 장수가 맞서는 “일대일 대결”의 양상인 것이다.

엘라 골짜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등장한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위해 소코와 아세카 사이에 진을 친 필리스티아인들을, 사울과 이스라엘이 대항하여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열을 가다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필리스티아인들의 최고 전사인 “골리앗”이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타나 전세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갔다. 그는 키가 6큐빗과 한 뼘으로, 약 3미터에 달하는 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게가 놋 5,000세켈(약 57kg)이나 되는 갑옷을 걸치고, 철이 600세켈(약 7kg) 사용된 창날을 무기로 들고서 전장에 나올 정도로 무서운 용모와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자신이 가진 육신의 힘을 믿고 교만했던 골리앗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친 이스라엘을 모독하며 자기에게 대항하여 맞설 한 사람을 보내라고 도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에서는 단 한 사람도 나서는 이가 없었고, 단지 불안한 침묵만 흘렀다. 전세는 점점 더 이스라엘에게 불리해졌는데, 이를 일순간에 타개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대항해 나아가 오로지 돌과 물매로 골리앗을 쳐 죽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오늘날 마귀들과 전쟁 중인 그리스도인들은 성도 각 개인에게 주어진 전선(戰線)에서 매 순간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는 개인이 벌이는 전쟁이기에 엘라 골짜기에서 벌어진 “다윗과 골리앗의 일전”과 흡사하다. 골리앗 같은 “마귀”는 성도에게 다양한 고난과 역경으로 위협하고,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일으키며 자신과 맞서 싸우겠냐고 도전한다. 물론 각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삶의 문제들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삶의 문제들은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서 상대하기 버거운 “골리앗”을 마주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골리앗”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어 압도당한 것, 그것이 바로 엘라 골짜기에 진을 쳤던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그들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시선을 눈앞의 “골리앗”에게만 고정시켰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40여 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워 도망치기에 바빴다(삼상 17:24). 이는 삶의 문제들에 시선이 고정되어 버린 성도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전전긍긍하기만 하며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주 하나님께로부터 물러나 버리고(backsliding) 마는데, 이는 그 성도의 타락(backsliding)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라도 뒤로 물러나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교리적으로 대환란 기간에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을 환란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다. 대환란 때에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기 때문에, 행위로 그 구원을 지키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나 버리면, 타락하여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대환란 때 구원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눈앞의 “골리앗” 같은 문제에 시선이 고정되어 결국 타락하고 마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님만을 신뢰하고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 서 있거나 뒤로 물러나는 성도를 주님께서 왜 기뻐하시겠는가!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에 대해 말씀하실 때(엡 6장) “등”을 보호하는 장비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적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에서 등을 보이며 물러나는 일은 결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이 두려워 낙담하거나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할례받지 않은 필리스티아인이 누구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느냐?』(삼상 17:26)라며 호통을 쳤다. 다윗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셨고, 다윗의 시선은 눈앞에 선 거인이 아닌 “주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며 다가오는 성도에게는 그 어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주신다. 성도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게 하라! 당신에게는 눈앞의 “골리앗” 때문에 “하나님”이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통해 “골리앗”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다. 바로 이 믿음으로 인생의 “엘라 골짜기”에서 승리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입증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선택의 골짜기”인 에스콜 골짜기

“에스콜 골짜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인 카나안 땅으로 이동하던 중, 파란 광야에 진을 치고 카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을 탐지하고 오게 하는 “민수기 13장”과, 그때 일을 회상하는 “민수기 32장”과 “신명기 1장”에서 언급된다. 카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해 총 열두 명을 카나안 땅을 탐색하러 보냈을 때, 그 열두 정탐꾼들은 에스콜 골짜기에서 그 땅의 열매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 사이에 막대기로 꿰어 메고 와야 했으니, 그야말로 카나안 땅은 풍요로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에스콜 골짜기”를 보았으면서도, 그 정탐꾼들이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의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는 데 있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그곳 거인들은 자신들의 밥이니 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고 이스라엘을 독려한 반면, 나머지 열 명은 그곳 거인인 아낙 자손들이 자신들을 본다면 마치 메뚜기처럼 볼 것이라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낙담시켜 불평하게 했다. 급기야는 한 대장을 앞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까지 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고 이집트로 돌아갈 것인가.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능하신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과 표적들과 이적들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홍해를 갈라 마른 땅처럼 걷게 하셨고, 그들을 뒤쫓아 온 파라오와 그의 군대는 그 동일한 바다에서 수장시켜 버리신 분이 아닌가!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카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세상을 예표하는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보인 불평과 낙담(민 14:2; 32:9)은 성도의 시선을 세상으로 돌리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쓴 뿌리가 자라게 한다. 쓴 뿌리는 성도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성도 자신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성도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히 12:15).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약속들을 굳게 붙잡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살전 1:4)라는 칭찬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선택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구원받은 지 얼마 안 된 성도들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선택과 믿음에 있어서 진실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에스콜 골짜기의 그 좋은 열매를 보고서도 낙담하고 불평해 버린 백성들처럼 되지 말고, 오히려 무질서한 자들을 훈계하고 낙담한 자들을 위로하며 약한 자들을 붙잡아 주며(살전 5:14) 천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매일 세상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세상”이든 “하나님”이든 선택해야 한다. 세상을 선택한 백성에게는 “광야의 방황”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운 지금, 세상을 택하는 과오를 되풀이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시켜 전진하는 믿음을 보이며, 주님께서 보여 주신 “에스콜 골짜기”를 믿음으로 쟁취하도록 하라.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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