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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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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9월호>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것은 예수님께서 카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 자신에 대해 누구라고 말하느냐고 질문하셨을 때,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베드로가 대답한 위대한 신앙 고백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베드로 자신의 지식이나 지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깨우침, 즉 초자연적인 영적 직관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너에게 나타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니라』(마 16:17). 바울이 받은 복음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직접적인 계시였다.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된 것이라』(갈 1:11,12). 베드로와 바울이 초자연적인 직관을 통해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모두 동일한 영적 직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혈과 육과는 무관하게 성령님에 의해 태어났기에 땅에 속한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영적 직관은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고전 2:9),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 주시는 내적 인식과 깨달음이다(고전 2:10-16, 요 16:13).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주님을 동산지기로 생각하다가,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시자 비로소 주님으로 알아본 것이 그와 같은 경우이다(요 20:16). 그뿐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친히 가까이 다가가셨지만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눅 24:16), 주님께서 빵을 가지고 축복하신 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 비로소 눈이 “열려서”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눅 24:31). 영적 직관은 성령님께로부터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우리에게 그의 영으로 나타내셨으니 이는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라』(고전 2:10).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것으로부터가 아닌, 성령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온다.
영적 직관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는 영적 직관이 강화됨을 통하여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뜻과 생각을 보여 주신다. 이 지식은 인간의 혼적 지식과 무관한다. 『내가 나의 모든 스승들보다 더 명철하오니 이는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됨이니이다. 내가 노인들보다도 더 깨달았으니 이는 내가 주의 법규들을 지킴이니이다』(시 119:99,100). 사도 바울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에, 에베소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직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도록 기도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들이 받게 되는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이를 성취하실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이 어떤 것인지를 성령님께 가르침을 받아 알게 되는 것이었다(엡 1:18,19). 그러나 영적 직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다. 파라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으나(출 9:27) 지옥으로 갔다. 발라암도 하나님을 알았고(민 22:34) 심지어 예언까지 하였으나 지옥으로 갔다. 유다 이스카리옷 역시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고백을 하였으나(마 27:1-5) 구렁으로 내려갔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했던 마귀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막 1:24).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지식이 영적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영적 직관이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 직관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외적으로는 지식과 은사가 많다 하더라도 영적 직관을 통해 영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은 헛된 것으로 끝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거듭난 영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며, 그 기능이 점점 발달하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진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또한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 여부는 영적 직관에 달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자신의 군사로 부르셨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군사로 뽑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무장하여 강한 영적 전투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전투력은 곧 영적 분별력을 의미한다.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닌, 마귀와 마귀의 세력들에 대항하는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 분별력은 다름 아닌 영적 직관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마귀의 가장 큰 술책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자신의 종들을 의의 종으로 가장시키는 미혹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는 영적 분별력, 곧 영적 직관이 필수이다.
영적 직관을 강화시키는 것은 성도의 거룩한 의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 직관을 강화시킬 수 있는가? 우선 성도 자신이 영적 직관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영교를 가능하게 하는 기도가 진실성이 결여된 채 그 행위들만 무성하다면,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과 단절된 형식적인 기도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를 형식적으로 하는 성도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으로 죽어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그러한 성도는 자신의 마음과 영의 상태를, 살아 있고 능력이 있는 말씀으로 조명하여(히 4:12) 무엇이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단절하게 했는지를 스스로 판별해야 한다(고전 11:31). 성도는 자기가 드리는 기도의 영역만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조명”은 영감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과정인데, 그 일을 위한 대전제는 그 성경이 진리의 성경인 바른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말씀이 없는 조명은 마귀적인 지혜를 양산할 뿐이다. 그러한 지혜는 겉으로는 성령님의 조명을 말하면서도 비성경적인 교리를 근거로 독단적인 경험이나 혼적 직관을 강조하여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바른 조명은 반드시 바른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다. 변개된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이 아닌 죽어 있는 책으로서, 그 성경을 통해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다.
영적 직관이 더 강해지려면 마음에 간사함이 없어야 한다. 빌립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은 『랍비여,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주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요 1:49)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계시의 근거로,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1:47). 아무리 죄가 많은 죄인이라도 간사함이 없이 마음이 정직하기만 하다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적 직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다(요 4:29).
영적 직관은 “순종”으로 입증된다. 베드로는 직관으로 깨달은 직후 예수님을 따랐다. 바울은 계시를 받자마자 “즉시 혈과 육에 의논하지 않고”(갈 1:16) 주님의 뜻을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에 관심이 있으시다(행 10:34). 인간적 지혜가 있다고 해서, 그가 거듭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지식에 순종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의 뛰어난 지적 이해는 영적 직관에 이르지 못한다. 영적 성장은 죽기까지 신실하고자 하는 신실한 순종에 달려 있다.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삼상 3: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한 일마다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야 한다(골 1:10).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영교를 통한 교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열매를 맺는 데 기초가 된다. 이를 위해 모든 지혜와 영적 지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영적 직관을 갖지 못하는 것은 죄다. 그 결과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명철이 어둡게 되어(엡 4:18) 영적 감각을 상실한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한 영적 직관을 얻으려면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리고, 계시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