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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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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9월호>
사무엘은 “인간 왕”을 요구함으로써 주의 목전에서 죄를 범한 백성들을 주님께로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결단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침으로 주께 대하여 죄를 범하지 아니하며, 내가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니』(삼상 12:23).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정경유착으로 불거진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분노한 국민은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이게 나라냐?”라고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적폐 청산을 국정 과제 1호로 내세우면서 출범한 현 문재인 정권은 어떠한가? 그때보다 살기가 더 좋아졌는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졌는가? 과연 이 땅에는 공의와 정의가 실행되고 있는 것인가?다윗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땅에 태평성대를 이룩한 솔로몬의 명성을 들은 시바 여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를 이렇게 칭송했다. 『당신을 기뻐하사 그의 보좌에 세우시고 주 당신의 하나님을 위한 왕으로 삼으신 주 당신의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이는 당신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그들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그들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시어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셨음이니이다』(대하 9:8). 영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무려 네 차례의 총리를 지내면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때늦은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 정의이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그가 “아편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 좌중을 압도하는 연설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30세였다. “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근본적인 이유를 고려할 때, 이것만큼 부정하고 영국을 불명예로 빠뜨리는 전쟁도 없습니다. 우리가 중국 광둥에 나부끼는 영국 국기를 볼 때마다 벅찬 감격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정의의 상징이고, 공정한 무역 활동을 격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국기가 부끄러운 아편 밀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연안에서 나부끼고 있습니다. 위풍당당한 영국 국기를 볼 때마다 느꼈던 벅찬 감동을 앞으로는 느낄 수 없게 될까 봐 심히 두렵습니다.”
정권이 바뀐 지 2년이 되었을 무렵,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자유 없는 평화 통일만 앞세운 기만적인 궤변에 안보의 위협을 느낀 국민은 “그럼, 이건 나라냐!”라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7월에는 한 50대 남성이 국회 본청 인근 계단 앞에서 21대 국회 개원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기의 신발을 벗어 던지면서, “가짜 평화를 외치고 경제를 망쳐서 국민에게 치욕을 안겨 준 장본인이다.”라고 소리쳤다.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을 역임한 우드로 윌슨의 명언처럼 “정의는 평화보다 더 귀중하다.”라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주지시키려 한 행동이었다. 국가의 “불의”는 국가를 “몰락의 길”로 이끌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 정치 논객은 공의와 정의를 저버린 현 정권을 가리켜 “망한 정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 임기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 아예 오만과 독단으로 치닫고 있는 대통령을 향해 국민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나라가 네 것이냐?”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했던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72년 110일 동안 군림하면서 “절대 왕정”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는 귀족들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방법은 물론 “코를 푸는 방법”까지 정해 주었다고 한다. 부동산 세금 폭탄에 전세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180석의 거대 여당은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그랬는지,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법을 토론과 심의도 없이 제멋대로 처리해 버렸다. 야당의 동의나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은 무려 25명에 이르고,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정부를 감시해야 할 감사원장과 살아 있는 권력까지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검찰총장을 향해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퇴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를 향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라고 힘을 실어 주고 있으며, 일부 친문 정치인들은 문 대통령을 “태종”이나 “세종,” 곧 “왕”에 비유하면서 노골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 대통령을 향해 울분을 토하는 국민은 또다시 이렇게 묻는다. “나라가 네 것이냐?”
한 칼럼니스트는 「문재인 시대, ‘무서운 사람들의 무서운 정치’」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이 문재인 정권을 향해 일갈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 사건을 지켜보며 ‘참 무서운 정권’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박 시장의 행동은 ‘극단적’이었지만 그가 갔던 길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것[자살]은 ‘강요된 선택’이었다... 건물에 내화벽(耐火壁)을 쌓는 것은 건물이 한꺼번에 불길에 휩싸여 붕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권력 분립이 정권에 불편한 것 같지만, 이 역시 비상시에 정권의 총체적인 붕괴를 막는 안전장치다. 이 정권은 권력 분립이 아니라 ‘원 팀’(one team) 시스템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대통령과 내각이 한 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대법원,’ ‘대통령과 헌법재판소,’ ‘대통령과 검찰,’ ‘대통령과 감사원,’ ‘대통령과 KBS -MBC’가 한 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무너지면 단번에 붕괴한다. 무서운 나라의 두려운 시대를 산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야당 국회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꼬집어 비판했다. 첫째, “거짓말하는” 정권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할 때부터 무수한 약속을 했지만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을 섬기지 않았고,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나누지도 않았고,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지도 않았으며,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둘째, “위선적인” 정권이다. 이중 잣대와 위선으로 국민을 기만한 “조국 사태”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은 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셋째, “내로남불” 정권이다. 이들은 “적폐 수사”에 있어서 이전 정권을 상대할 때와 현 정권을 상대할 때 판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전 정권의 적폐를 수사할 때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 “우리 총장님” 하고 추켜세우더니, 현 정권의 적폐를 수사하려고 하니까 어떻게 하면 윤 총장을 그 자리에서 쫓아낼 수 있을지 골몰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결코 정치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럴 자격도 없는 자들이다! 그렇게 하려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는가? 그렇게 하려고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 선서를 한 것인가? “정의”는 정권을 장악한 자들의 이익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공의롭게 집행되어야 할 “법” 역시 정권을 장악한 자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무사 통행증”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정의도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는도다. 우리가 빛을 기다리나 어두컴컴함을 보며, 밝은 것을 바라나 어두움 속을 걷는도다... 공의가 뒤로 돌아서고 정의가 멀리 섰나니 이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함이라』(사 59:9,14). 이 나라에 보수든, 진보든 제대로 된 정치인, 존경할 만한 정치인, 공의롭고 정의로운 정치인, 하나님을 온전히 두려워하고 신뢰할 줄 아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척 씁쓸해진다. 물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롬 13:1)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통치를 거부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법적인 왕” 사울을 허락하셨듯이, 정의와 공의를 저버리고 투표권을 잘못 행사한 어리석은 이 나라 국민에게 무능한 “불법적인 대통령”을 허락하셨다.
미국이 건국 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 짧은 역사 속에서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과 그분의 책인 성경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킹제임스성경>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배교와 범죄로 멸망해 가고 있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출신의 저술가요, 반공주의자인 존 스토머는 <미국은 죽었다, The Death of a Nation>라는 책을 썼고, 피터 럭크만 목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은 저주받았다, The Damnation of a Nation>라는 책을 썼다. 그는 미국이 저주받은 이유를 이렇게 썼다. “오늘날 미국은 공식적으로 거룩한 성경을 거부하고 있다.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거부에 대해 동의를 표했고, 연방 판사들은 어떤 학교 교사라도 교실 안에서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교육협회, 미국국세청, 미국역사기록협회, 국무부, 법무부, 국회 상하의원들의 전폭적인 동의하에 미국 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성경과 기도를 콘돔과 낙태로 대체시켜 버렸다. 이것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교도소에서도 성경을 지급하는데, 학교에서는 성경을 금지하는 것이다. 또 언론들은 친공산주의적이고 친카톨릭적인 기사들 그리고 반성경적이고 반프로테스탄트적인 내용들을 밤낮 선전하느라 바쁘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닌데,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한 좌파 정권과 그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청와대, 언론, 심지어 현 정권에 친화적인 조직으로 개편되고 있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친공산주의적이고 친카톨릭적이며 반성경적이고 반프로테스탄트적인 것이다. 그들은 인권을 운운하면서 거리에서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고, 성경에 반하는 가증한 동성연애를 합법화하여 그것에 대해 죄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편하고 있으며, 그들의 종북 좌파 정당이 영구 집권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 개편도 시도하고 있다. 결국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요, 공산주의 국가로 나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면 정치를 할 수 없고, 또 국가를 경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의와 정의로 굳게 세워지고 의와 화평이 영원히 숨을 쉬는 “왕국”(사 9:7)이 성경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모르는 자가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순간 국민은 신음하게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을 모르고 세계를 올바로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글래드스턴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현대의 위인 95명을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 87명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다. 성경의 기원은 너무나 특별하여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 되는 책이다. 나는 나의 갈급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칠십 평생을 성경을 공부하며 지냈다. 나는 이 책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든든한 반석이라는 사실을 내 생명을 다해 믿는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기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주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겸손히 간청하는 것은 국민 전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라고 말했다. 제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은 1860년 12월 14일에 “국가적인 기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재난과 위기의 때에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를 구해 달라고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한 팔만이 우리가 저지른 범죄와 어리석음이 가져온 이 끔찍한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6개월 전인 1918년 5월 11일에 국가적인 금식 기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 기간에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간청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특별한 의무라는 사실을, 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나의 동료 국민들에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작전 디데이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미국의 긍지이자 자랑거리인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우리나라 미국과 우리의 신앙과 문명을 지키기 위해 바로 오늘 이 엄청난 작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위대한 희생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향한 새로워진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다시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일본의 군부 세력이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드디어 전 세계의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독재자들의 책략이 종식되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전 세계적인 승리이며, 또한 그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승리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주님의 길을 따릅시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자들이 기도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는 모든 일에 더는 가까이 계시길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께 부르짖는 모든 일에 가까이 계심같이, 하나님께서 그처럼 가까이하시는 그렇게 위대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 4:7) 우리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거듭나지 않은 목사나 교인들처럼 광화문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답시고 헌금을 내지도 걷지도 않는다. 촛불을 들지도 않는다. 국가를 향해 시위하는 행렬에 참여하거나 투쟁하지도 않는다. 다만 기도할 뿐이다. 그러나 기도는 어떤 인간의 노력보다도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진지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나라를 기도로 지켜야 하고, 눈물 어린 기도가 서려 있는 복음 전파를 통해 지옥을 향해 가는 이 불쌍한 민족을 구해 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은 유명한 왕들이 아니었다. 교황들도, 정복자들도, 정치가들도, 철학자들도, 과학자들도, 의사들도, 예술가들도, 문장가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가까이하시는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