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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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왜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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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10월호>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생사화복에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미생물의 생태에서 태양과 지구와 별들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의 먹이 사슬과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를 관장하신다. 과학자들이 무엇이라고 떠들어 대든 간에, 만물이 보존되는 근본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고(벧후 3:7), 그 만물을 붙들고 있는 힘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히 1:3). 그리고 그 말씀은 저 하늘에 영원히 세워져 있다!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시 119:89).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막 13:31, 눅 21:33).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만물을 호령하신다. 폐기치 못할 법령(시 148:6)에 따라 하늘들의 선율이 밤낮으로 온 땅을 질러 뻗어 나갈 때(시 19:4),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우주의 장막을 힘차게 내달리는 태양은 강한 열기를 내뿜게 되고(시 19:5),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돌아다니는 하늘의 구름들은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다(욥 37:12). 주님께서는 하늘 아래로 음성을 내보내시어 땅끝까지 번개를 보내시는가 하면, 그분의 탁월하심과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해 천둥이 치게 하시고(욥 37:3,4), 또한 회오리바람과 폭풍으로 하여금 그분의 말씀을 이행하게 하시는가 하면(시 148:8),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눈, 비, 서리, 안개, 우박 등에 명하셔서 이 땅에 잠깐 또는 한동안 머물도록 하신다. 이곳 지구에서부터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우주)을 지나 셋째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은 대규모의 관현악단이 되어,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손짓에 따라 아름답고 위대한 교향악을 연주하는데, 때로는 그 연주가 하나님을 드높이는 “찬양 소리”가 되기도 하고(시 148편),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드러내는 “대재앙”이 되기도 한다. 『너는 만군의 주로부터 천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폭풍과 쏟아지는 폭풍우와 삼키는 화염으로 감찰받게 되리라』(사 29:6).

태풍, 지진, 기근, 홍수, 그 외 모든 기상 조건들이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그렇게 연관을 짓는 것이 “과학”을 모르는 무지한 고대인들의 원시적인 미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원숭이 다윈”처럼 전혀 깨닫지 못하는 “멸망하는 짐승”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한랭전선, 온난전선, 고기압, 저기압, 지구 온난화, “대자연”(Mother Nature) 등을 운운하면서 “우연”과 “진화론” 뒤에 숨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가?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러한 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가? 대통령, 교황, 기상학자, 천문학자, 지질학자, 지진학자, 생물학자 등을 의존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모든 것은 물론, 대기권, 태양계, 은하계, 심지어 낮과 밤이 끝나는 곳인 우주의 경계, 곧 그 경계를 두르고 있는 거대한 “물들”(깊음, 욥 26:10, 시 104:6)까지 통제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께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 한마디에 잠잠해야만 하는 것이다. 갈릴리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났을 때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 명령하시어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적이 있었다(막 4:39). 이 광경을 지켜본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가! 그가 명령하시니 바람과 파도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도다』(눅 8:25). 바람과 물과 불 등은 인간의 손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태풍이 오거나 홍수가 나거나 산불이 나면 인간은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속수무책이다!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든지, 피해가 최소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멸하실 수도 있는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폭풍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실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의 “피난처”이시다. 『내 반석의 하나님, 그분을 내가 신뢰하리라. 그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며,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주시라. 주께서 나를 폭력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나이다』(삼하 22:3).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서부터 AI, 에볼라, 메르스, 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 난치병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질병들, 기근, 가뭄이나 홍수,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각종 자연재해, 원전 사고, 열차 탈선, 비행기 추락, 건물 붕괴, 대형 화재, 교통사고, 살인, 강간, 학교 폭력, 왕따 등의 사건 사고들, 대학 입시나 취직 같은 인생 전반에 관한 마음속 근심과 걱정들, 여러 가지 인간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소외감, 시험과 역경,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또 그러한 모든 위험을 “폭풍우를 단번에 잠재우시듯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굳건한 피난처』(시 71:7)이신 것이다.

우리는 심한 폭풍우가 불어닥칠 때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신다. 우리가 피난처를 찾아 피신해 오면 언제라도 받아 주시고 보호하실 태세를 갖추고 계신다. 그분의 눈은 항상 우리 믿는 성도들을 살피고 계시며, 그분의 귀는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에 언제나 열려 있으시다. 예기치 않은 위협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해하며 당황하지 말라! 어디 다른 데 피할 곳이 없나 주위를 돌아볼 필요도 없다. 도움이 지체된다고 초조해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롬 8:28) 가장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고 계실 뿐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으로서,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기 때문이다(롬 8:32). 주님만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이시고, 어떤 바위 요새보다도 안전한 방벽이시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는 일에 있어서 절대 실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로운 자는 그 안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항구요 선착장이 되어 주신다.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시다. 따라서 우리는 그 피난처 안으로 달려가 평안히 쉬기만 하면 된다.

이 땅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218개의 영토에서 31,493,862명의 확진자와 969,18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9월 24일 기준). 이 재앙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기에 다른 어떤 전염병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 9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의 팬데믹은 우리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합니다.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보살피지 않는다면 세상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안중에는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다! 소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자가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 고작 “인간들의 연대”나 운운한단 말인가?

이미 지난 7월에 제4차 확산을 경험한 중국은 겨울철 제5차 확산의 우려를 뒤로하고 제멋대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다(9월 8일). 실로 하늘들에 앉으신 분께서 웃으실 일이다(시 2:4).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이는 주께서 그의 날이 오는 것을 보심이라』(시 37:13). 하나님께서 끝내시지 않는 한 아무도 종식을 선언할 수 없고, 선언해서도 안 된다! 이는 이러한 재앙들이 결코 “우연히” 오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자 저주이며, 그분의 분노와 진노의 표시이다.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예루살렘에 나의 네 가지 극심한 심판, 즉 칼과 기근과 악한 짐승과 전염병을 보내어 사람과 짐승을 그 땅으로부터 끊는다면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겔 14:21) 이스라엘이든, 이방 민족이든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국가와 민족을 이 땅에서 징벌하실 때 사용하시는 “네 가지 극심한 심판”은 칼과 기근과 악한 짐승과 전염병이다.

① 우선 “칼”을 보내셔서 그 땅의 사람과 짐승을 진멸시키신다. “칼”은 일차적으로 “전쟁”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자연재해와 인재(人災) 및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포함한다. 인류의 역사는 질기고 잔인한 “전쟁의 역사”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라고 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 땅의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전쟁은 이 땅에서 받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지옥은 사후의 세상에서 받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의 표적으로 『전쟁과, 전쟁의 소문』(마 24:6)을 말씀하셨다. 주님의 예언은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 반면 UN을 비롯한 세상 나라들은 “전쟁은 없다! 화평이다!”라고 말하면서 항상 헛다리를 짚는다. 이 땅에 “죄”가 만연하는 한 전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② 그다음으로는 “기근”을 보내셔서 사람과 짐승을 죽이신다. 기근은 가뭄이나 홍수처럼 자연재해로 인한 흉년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식량봉”(staff of bread, 겔 4:16)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봉”이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의미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목숨을 부지하게 해 주는 마지막 버팀목인데, 그것이 꺾이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땅에서 끊어지게 된다. 그런 현상을 이미 동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에서 보고 있다. 최근 “유엔세계식량계획”(WEP)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기근 팬데믹”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수가 2019년 말 기준으로 약 1억 3천만 명이었던 것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두 배” 가까이 늘어서 2억 6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예멘, 콩고민주공화국, 베네수엘라,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등이 가장 심각하다.

③ 세 번째는 “악한 짐승들”을 보내셔서 그 땅을 황폐하게 만드신다. 현재 전 세계가 사막 메뚜기 떼와 전쟁 중인데, 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는 농지가 파괴되거나 식량난을 겪고 있고,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브라질은 4천만 마리의 메뚜기 떼 습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북 단양에서 번식하기 시작한 수천 마리의 매미나방이 중부지방으로 퍼져 여의도 20배 면적에서 극성을 부렸는가 하면, 제주도 등지에서는 나무막대기 모양의 대벌레가 비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심지어 가정집 수돗물에서는 인천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유충”이 발견되기까지 했다.

④ 마지막으로 전염병을 보내셔서 사람과 짐승을 그 땅에서 끊으신다. 전염병은 에이즈, 에볼라, 메르스, 사스, 코로나19 등을 말하는데, 특히 전 세계에서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 수는 중세 암흑시대의 흑사병이나 1917년에서 1918년까지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 수의 “다섯 배”나 된다. 이러한 전염병은 전쟁만큼이나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의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목적은 단 한 가지다. 곧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그들 위에 펴서 그 땅을 황폐케 하리니... 그리하면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리라』(겔 6:14). 이에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갈보리 십자가를 보라! 세상을 구하러 오신 구세주의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고, 결국 최후의 죽음을 맞아야 했던 갈보리는 그저 ‘비극의 현장’이기만 했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우리만큼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서 처형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심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또한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면서 바로 그곳에서 이 세상의 신인 마귀를 진멸시키신 주님의 위대한 승리를 보고 있지 않은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만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그분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징계하시고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며 재앙을 내리시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지금 당장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행 20:21).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을까 봐 두려운가? 그래서 성경의 경고대로 지옥으로 던져질까 봐 무서운가? 그렇다면 무엇을 주저하는가?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투항하라!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하지만 완고한 죄인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완고함”은 그 사람을 끝까지 파멸로 치닫게 하여 지옥으로 던져 버릴 정도로 “치료 약”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재앙”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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