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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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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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6월호>

복음 전파의 중요성



신약 교회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고 신실하게 복음을 전파했던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는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전 9: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복음 전파를 가장 귀하게 여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하는 일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 그가 말한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다(고전 15:3,4). 사도 바울은 당시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과도기적 상황 하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은혜의 복음을 정확하게 제시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그리고 이 복음,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은혜의 복음이 사도 바울 자신에게 맡겨졌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가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담대하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고,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따라 행했던 죄인들을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되 위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3:3).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다 “말세”라고 말하면서 한탄한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죄악과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살라 버리는 담대한 죄인들이 들끓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고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소리 높여 외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무리들만 나서서 이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위 전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 전도지 내용을 보면 복음 비슷한 것도 있지만 거의가 사회복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나마도 들어 있지 않은 전도지도 많다. 적어도 거리에 나섰으면, 멸망 길에 서 있는 죄인들에게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해 놓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설교라는 단어(sermon)는 ‘찌르다’ 혹은 ‘찔러 넣다’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죄인들의 귀에 찔러 넣고(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돌같이 굳어 있는 마음이 찔림을 받도록 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어느 전쟁이고 그 전쟁에 임하기에 앞서서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각자가 그 전략을 숙지하고 전투에 임하게 되는데 그 전쟁의 승패는 당연히 조직적으로 준비가 되고 훈련이 잘된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복음 전파도 전략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오는 그 시간에 맞춰 오셔서 모든 사람들이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물이라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그 혼에게 다가가셨는데 우리는 그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육신적으로 음란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그 여인이었지만 무시하지 않으셨다. 또한 베드로가 거리에서 수천 명의 군중에게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교회에 더해졌던 것처럼 거리에서 또는 대중 앞에서 복음 전하는 법을 배워 효과적으로 전해야 한다. 때로는 코넬료의 초청을 받아 복음을 전했던 베드로처럼 누군가의 초청을 받아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며 혼들을 이겨오는 데 있어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전했는데 그 결과 고린도의 회당장 크리스포가 온 집안과 더불어 구원을 받고 침례에 순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 감옥에서 자신을 지키던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그의 육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새 생명을 얻도록 인도했다. 이런 열매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도 제도권 교회의 구원받지 못한 목사와 장로들과 집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고는 열매를 거둘 수 없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딤후 4:2).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이렇게 말씀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머지않아 다시 오셔서 우리가 행한 것들에 대해서 계산하시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주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사랑을 외치고 있는데 그런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롬 5:8). 벌레(욥 25:6)인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셔야 했던 주님을 상상해 보라! 어느 누가 벌레를 위해서 죽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독생자 아들을 주심으로써 나타내셨다면 우리 또한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으로든 그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혼들을 우리도 불쌍히 여기고 주님이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진리의 지식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불쌍한 혼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사랑의 동기가 없다면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죄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다(딤전 2:4).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종으로서의 해야 할 일이 바로 구령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죄인들은 죽으면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이다. 지옥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거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장소이다.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모든 사람이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을 것이며, 모든 제물이 소금으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막 9:48,49).
그런데 자기 주위의 누군가가 그곳에 가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곳은 영원히 불타는 장소이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이다. 죄인이 죽어 그의 혼이 한 번 그곳에 가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고통의 장소요, 형벌의 장소다. 그곳에서 몸부림치며 고통 가운데 수백만 년을 지냈어도 뒤돌아보면 그 시점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사소한 일에도 걱정해 주고 격려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인생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크고 중요한 영생에 관한 문제를 덮어두고 지내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자유 의지가 있어서 어떠한 죄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죄를 처리할 능력은 없다. 죄로 인해 죽어 있고 지옥으로 향해가고 있는 불쌍한 혼들을 구해 내야 한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1:30). 그 동안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설교와 복음 전파를 통해서 많은 혼들을 이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교회는 다닐지라도 구원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채 종교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던 차 이번에 하나님께서 서울 성경침례교회에 좋은 계기를 주셔서 6월 11일 토요일 오후에(오후 3시, 7시) 강서구 88체육관에서 복음 전도 집회를 할 수 있도록 인도 하셨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진리의 지식을 깨달아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군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 집회는 제도권 교회에서 유명한 강사를 불러놓고 떠들썩하게 벌이는 “축복성회”가 아니라 순수한 복음만을 전하는 아름다운 “복음 전도 집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구령의 중요성을 깨닫고 도전받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고 구령할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고 최고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일들이 이번 집회 기간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복음 전파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보듯이 이방인인 코넬료는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천사가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자 자기 하인과 부하를 시켜 베드로를 청하여 데려오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모아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어느 지역 교회에서 복음집회를 열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와 같이 이번 복음전도 집회에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권면해서 자리를 채우고 그들이 구원받도록 한다면 영적으로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없을 것이다. 코넬료와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듯이 그런 놀라운 역사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서 일어난다면 참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집회가 될 것이다. 전도자의 입술을 통해서 정확한 성경적인 복음이 전해질 것이고,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며 이로 인한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다.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 12:3).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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