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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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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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6월호>

불타는 포도나무



『인자야,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며
삼림의 나무들 중에 있는 그 가지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겔 15:2)


구약은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교훈을 위해 주어진 책이다(롬 15:4).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고 반성하며 돌이키게 하는 좋은 지침이 된다. 최상의 가치를 두고 선택하신 한 백성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죄악으로 가득 차자 결국에는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조롱당하고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에스겔 15:2 말씀은 주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시어 그런 예루살렘의 상태를 지적하시는데,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묻고 계시는 장면이다.
만약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그것은 “열매입니다.”라고 말씀드리지 않겠는가? 포도나무는 분명 그 나무가 맺는 열매에서 그 가치가 있고 다른 나무와 비교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만약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가 때가 돼도 자신의 열매를 내지 못한다면 그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또 그 나무를 심고 물주고 가꾼 농부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주님께서 지금 그 농부의 심정을 갖고 에스겔을 부르신 것이다.
포도나무는 성경을 공부한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한 백성을 건져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그분의 역사를 시편에서는 『주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가져오셔서 이방을 내어쫓으시고 그 포도나무를 심으셨』(시 80:8)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애착을 갖고 심으신 포도나무에서 주님이 기대하신 것은 열매였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울타리를 두르며, 거기서 돌을 주워 내고 최상품 포도나무를 심으며, 그 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그 안에 포도즙틀도 만들었도다. 그가 포도가 열리기를 바랐더니 야생 포도가 열렸』(사 5:2)다고 말씀하신다. 더 이상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포도나무, 지금 그 포도나무의 운명은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이다.
에스겔 15장은 그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주님은 마치 비웃기라도 하시듯 『거기서 취한 나무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으며 사람들이 거기에서 무슨 그릇을 걸 못 한 개를 취할 수 있겠느냐? 보라, 그것은 땔감으로 불에 던져지며 불이 그 양끝을 삼키고 그 중간을 사르리니 그것이 무엇을 만드는 데 적합하겠느냐?』(겔 15:3,4)고 또다시 묻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택하시어 거룩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데에는 그분의 목적과 뜻이 있으셨다. 단순히 그들을 잘 먹고, 잘 살고 번성케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케 하려 하심이며, 대대로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그분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한 그들로 하여금 증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온 땅을 범법함으로 가득 채우고, 돌과 나무를 섬기며, 이방인을 좇아 행하는 민족은 더 이상 거룩하지도 않고 보호받아야 할 가치도 없으며, 존중받지도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얼굴을 두시는 목적이 이제는 그들과 대면하여 교제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그들을 대적하시기 위함이다(겔 15:7).

구원받은 이 시대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케 하려』(엡 1:6,12,14) 하심이며, 우리를 택하신 것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하게 구원의 영원한 보장만을 믿고 이 땅에서 잘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의 전부라면, 성도에게 고난이 왜 필요하며, 자기 부인이 왜 요구되겠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렇게 만드신 분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한다.
스위치를 켜지 않은 등은 빛을 발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력도 공급되지 않는다. 밖으로 넘쳐 흐르지 않는 샘은 고여서 썩어 버리고 만다.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와 같이 힘없는 가지와 잎만 무성한 나무는 땔감으로 불 속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열매 없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 편에서는 무익하고 가치 없는 인생일 뿐이다.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을 가든 또 어떤 삶을 살든지 마찬가지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던 그 순간에 즉시로 우리의 혼을 취해 가셔서, 수고와 슬픔이 우리를 약하게 하고, 악과 고통이 우리를 신음하게 하는 이 저주받은 땅에 사랑하는 그분의 자녀들을 더 살도록 놔두시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성도가 장차 그분 앞에 섰을 때, 그에게 만약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받지 못한 죄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는 과연 그분께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것이고, 우리 각자가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고 자신에 관하여 그분께 설명하게 되리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 말씀을 믿지 않는가?
자신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값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치르신 희생에 난 무엇으로 보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자신의 삶이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불릴 만한지 또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약해서 그것으로는 어떤 그릇하나 걸어 둘 만한 못도 만들 수 없다고 하신다. 오로지 그 나무가 맺을 수 있는 그 독특한 열매만이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 사람과 비교해서 그들보다 더 나을 만하다고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고전 1:26-31)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며, 또 그분으로 인하여 맺는 열매가 아닌가?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입술은 유행가나 읊조리는 입술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세상 사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진정 의미있는 인생은 구원받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들에 뜻을 두고 살아가며, 날마다 그분으로 인하여 맺는 열매로 풍성해지는 성도의 삶이 아닐는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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