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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교회들 - 사람과 사회를 방탕케 하는 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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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9월호>

오늘날 세상은 술, 술 어디든지 술이다. 기뻐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모여서 마시고, 혼자서 마신다. 술은 술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식당이나 동네 수퍼나 심지어 자판기에도 있다. 술을 선전하는 미디어는 수없이 많아서, 오늘 우리 사회에서 술 없는 곳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처음부터 악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술
술이 언제부터 우리 주변에서 인생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술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일까? 술에 대한 역사를 찾아봤더니 대부분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술을 처음으로 만들거나 마시곤 했다. 중국에서는 옛날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의 딸 “의적”이 하나라 임금 우왕에게 술을 만들어 바쳤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는 “앞으로 반드시 술로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으리라.”(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고 하였다 한다(戰國策). 우리 나라의 술에 대한 최초 기록은 <제왕운기, 帝王韻紀) 『동명성왕 건국담』에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해모수가 압록강변에서 유화부인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주몽을 낳게 되었다. 물론 전설일 뿐이지만, 이 두 기록을 보면 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망하게 하거나 여자를 유혹하는 데에 쓰이는, 말하자면 나쁜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보게 된다.
성경에는 더 분명한 기록이 있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포도를 경작하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는 술 취해 벌거벗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를 본 아들 함이 범죄하여, 카나안이 함족을 대표하여 저주를 받게 된다. 이것은 전설이 아닌 분명한 역사 기록으로, 술에 대한 인류 최초의 상황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여기서도 술이란 사람의 정신을 빼앗아 가고 죄를 유발하게 만들어 누군가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노아는 구시대의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아 방주에 들어갔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인류를 술로 인해 죄악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근거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처럼 술은 그 처음부터 죄악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는 향후 술이 사용되는 것이 대부분의 면에서 악한 모습이라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어쨌든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이래로(창 9:21) 세상에는 술이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로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술로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망치기도 했다. 수많은 술들이 만들어지고 또 개발되어졌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술을 찬미하기도 했다. 술은 인간 사회와 뗄래에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며, 어찌 보면 이 세상의 역사는 술의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술을 미화하는 문화들

이방 종교들은 술과 많은 연관이 되어 있다. 고대 이방 종교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을 그들 제의에 포함시켰다. 한 예가 출애굽기 32장이다.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산자락에 있던 이스라엘은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게 한 후 먹고 마시고 뛰놀았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보았던 우상 숭배에 취해 있었기에 그렇게 행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의 혼령과 접신하기 위해 술을 먹기도 했고, 거대한 술 축제를 벌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축제였다. 특히 여인들이 즐겼던 이 축제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박커스)를 위해 진탕 마시고 춤추는 행사였다.
카톨릭 역시 이방 종교의 풍습들에 많이 오염되어 있기에 악하고 음란한 술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보면 카톨릭 국가들과 동양의 나라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 카톨릭 전통이 가득한 유럽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자연 환경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종교 문화 자체가 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미사는 실제의 포도주를 사용하며, 그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 자체로 간주되기 때문에 미사에서 남은 “피”는 사제가 다 마셔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카톨릭 신부들이 술 취해 있거나 주량이 센 이유이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정착되어 있는 미국은 좀 다르다. 현대에는 많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술 파는 것에 인색하다. 한때 금주령이란 법령이 존재하기도 했던 미국은, 지금도 지역에 따라 술 팔지 않는 곳이 많다. 팔더라도 특정 상점만 팔며, 우리 나라처럼 동네 구멍가게에서까지 마구 팔지는 않는다. 잠언 23장의 술에 대한 경고를 잘 알았던 청교도의 영향 때문이다.
동양의 술 문화는 극히 대중적이다. 문학과 예술에서 술을 예찬하며, 아이들도 술을 꺼리지 않는다. “주도”를 강조한다고는 하나, 그게 어디 강조한다고 될 일인가? 술 취한 사회, 술 취한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문인들은 술을 예찬하며, 그러한 문인들은 사회에서 칭송받는다. 유명한 당나라 시인 이백은 술 취한 상태에서 물에 비친 달을 잡겠다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런 사람을 “시선”(詩仙)으로 존경하는 게 동양 사회다. 남북조 시대에도 자연을 벗삼아 술에 취해 대나무 숲에서 노닌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자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하여 높여 부른다. 우리 나라 조선시대에는 서원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라 하여, 유생들이 마을 어른들을 모셔 놓고 술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술판을 벌인 것이다. 이런 것들을 당연시했던 것이 바로 동양의 사회 문화였다.

술에 대해 경고하는 성경
하지만 성경은 술 자체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특히 잠언 23장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술에는 슬픔과 다툼과 불평과 상해가 있다(29절). 또한 정신을 잃게 되고(“충혈된 눈,” 29절), 음란하게 되고(33절), 더러운 말들을 하게 되고(33절), 만용을 부리게 된다(34,35절).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기운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의지를 술에게 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에 이끌림을 받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마귀가 원하는 것이다. 마귀는 술을 통해 그에게 온갖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집단을, 국가 사회를 병들고 멸망케 한다.
모든 경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술에 대한 경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마저도 말씀의 경고를 무시한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소위 “보수적” 교인들은 술을 멀리했다. 보수주의냐 자유주의냐를 나누는 것이 그 교회는 술을 마시냐 안 마시냐 하는 것일 정도였다. 청교도적 신앙에서 자랐던 선교사들이 술을 금지한 이래로 금주는 한국 기독교의 그나마 있는 좋은 전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열심있는 권사님”도 “술 한 잔”쯤은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버렸다. 교회 청년부가 호프집에서 공식적인 모임을 갖는 경우도 빈번하다. 심지어 목사와 장로가 술집에서 대작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하니, 이쯤 되면 최후의 보루인 교회마저도 술에 오염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술에 대해서도 경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술은 죄와 충분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에 유혹당하는 사람들은 술의 해악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마치 마귀가 빛의 천사로 나타나듯이 술 역시 너무도 좋은 모습으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주류회사들의 광고들을 보라. 예전에는 술 광고를 남자들이 하거나, 아니면 음란한 모습의 여자들이 했다. 술과 음행을 남성들에게 상품으로 연결시키는 마귀의 술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들도 충분히 술을 마시기 때문에 전략을 바꿨다. 전혀 야하지 않은, 참으로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여자가 맑고 밝은 웃음으로 광고를 한다. 그러나 술이 어찌 순수할 수 있겠는가? 이 광고들을 통해 사람들은 술이란 것을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수한 미소 뒤에는 사망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전체 사망자 중 10% 정도는 술이 원인이다. 국내 성인의 100명 가운데 6명이 알코올성 장애 질환자이고(알코올 중독), 술 때문에 매일 12.9명이 사망한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한 해 28조 원이 넘는다. 수백 가정들이 술 때문에 파괴되었고, 또 파괴되고 있다. 술은 자신만 망가뜨릴 뿐 아니라, 그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러한 술이 교회들 안에도 가득 차 있다. 술은 이제 교회들마저 취하게 했다. 술 취한 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온전한 말을 하지 못한다. 술 취한 교회들은 죄를 경고하지도 의를 전파하지도 못한다. 교회들은 영적으로도 세상에 취해 있고, 실제적으로도 술에 취해 있다. 『술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는 말씀은 “술 취하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는 먹어도 된다.”는 궤변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구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성경은 술이 “방탕”케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술과 연관해서 조지프 케네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대에 걸친 양조업자로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장남 조지프 2세는 2차 대전 중 사망했고, 차남 존 F. 케네디는 암살당한 대통령이 되었고, 3남 로버트도 선거 유세 도중 암살되었으며, 딸인 캐슬린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었다. 그 외에도 케네디 가문에 속한 여러 명이 비명에 죽었다. 조지프 케네디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한다. “내가 술을 만들어 수많은 가정을 멸망시켰더니, 이제는 내 가정이 멸망당하는구나.” 이처럼 케네디가의 불운이 술과 연관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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