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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소망이 주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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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2월호>
"소망"은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서 큰 힘을 준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비록 형편과 처지가 어렵더라도 하루하루를 힘있게 살아간다. 특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의 소망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이는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산 소망』(벧전 1:3)을 주셨기 때문이다.거듭남이라는 새로운 출생을 경험한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요일 3:9)이기에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로서 하늘을 바라는 새로운 성품이(고후 5:17) 내재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위해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벧전 1:4) 두셨는데, 이것이 바로 『하늘에 쌓여 있는 소망』(골 1:5)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소망이므로, 이 소망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소유하려고 힘쓴다(행 24:15,16).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재림의 소망"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소망으로서 성경은 이것을 『복된 소망』(딛 2:13)이라고 말씀하는데, 바로 이 재림의 소망이 악한 현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능력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
우선 재림의 소망은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해 준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느니라』(요일 3:2,3).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천한 몸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모된다. 더 이상 죄를 짓지도 않고, 면역력이 약화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영원히 겪지 않을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약속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완전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현재 입고 있는 몸과 혼과 영을 주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게 드리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를 위한 좋은 방법이 골로새서 1:22,23에 제시되어 있다. 『이제는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의 육신의 몸 안에서 그가 화해케 하셨으니 그가 보시기에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드리고자 함이라. 만일 너희가 자리잡고 정착된 믿음 안에 계속 있으며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것은 너희가 들었고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된 것이니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그리스도인의 현실은 죄나 악과의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죄와 악의 길에서 돌이켜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동기는 다름 아닌 "재림의 소망"이다. 특히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이 모두 불타 버릴 것을 아는 성도로서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느냐?』(벧후 3:11)라고 묻고 있다.
신실한 섬김
다음으로 재림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길 수 있게" 해 준다.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된 사람으로서(엡 2:10)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복된 소망을 간직하고 있을 때 생겨난다.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3,14).
또한 이 복된 소망은 악한 현 세상이 주는 모든 정욕들을 거부하고 이 세상을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게 하는(딛 2:12) 능력도 주는데, 결국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성도의 모든 믿음과 섬김은 재림의 소망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재림에 대한 소망도 없이 행하는 모든 일은 비록 그것을 순수한 동기에서 행했다 하더라도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된 소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성도는 그렇지 않은 성도보다 주님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깨어 있는 기도 생활
재림의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항상 기도로 깨어 있게" 해 준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씀은 "재림의 문맥"에서 주어진 명령이다. 즉 온 세상이 『평안하다, 안전하다.』(살전 5:3)라고 말하면서 거짓 평안에 속아 멸망의 잠에 취해 있을 때,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살전 5:5,6)는 명령을 주신 것이다. 특히 그런 기도에 관한 명령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영과 혼과 몸을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해 주시라는(살전 5:23) 간구로 이어진다. 또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빌 4:6)라는 권면 역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라는 재림의 문맥에서 주어졌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신다는 로마서 8:26,27의 말씀도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롬 8:23) 재림의 문맥과 관련되어 있다. 그때가 되면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롬 8:21) 것인데, 바로 이 "몸의 구속"을 가리켜 성경은 "소망"(롬 8:24)이라고 말씀한다.
이러한 소망을 인내로 기다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중보를 통해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방향"을 조정하신다. 즉 우리가 가장 좋은 것들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수하고 흠 없게 되기를(빌 1:10) 기도하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의의 열매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빌 1:11) 기도하시며, 우리가 담대히 입을 열어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엡 6:19) 기도하시는 것이다.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성도는 반드시 기도하게 되어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 4:7).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롬 13:11)을 아는 성도는 결코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않는다. 모든 음란과 방탕과 어두움의 행위들을 벗어 버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만 옷 입을 뿐이다.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워진 만큼, 진지한 기도를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성경적으로 올바른 결정과 실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지한 성경 공부
재림의 소망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 1:19). "성경"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으로서, "샛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삶의 목적을 잃지 않게 해 준다. 우리를 "영광의 나라"로 안내해 주는 가장 정확한 지도인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이렇듯 『빛나는 새벽별』(계 22:16)이 떠오르기를 기대하는 소망은 주님께서 우리를 본향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 나타나실 때까지 예언의 말씀에 주의할 수 있게 해 준다.
반면에 마귀는 재림에 관한 교리를 입으로만 고백하게 하고 그 참된 소망을 성경적인 진리를 따라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재림에 관한 진리를 왜곡시켜 아주 엉성하게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성경의 교리와 반대되거나 무관하다면, 그것이 아무리 매혹적으로 보여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런 자들의 실행이 사람들에게 상당한 덕을 끼치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성경적인 재림의 소망과 무관하다면 딱 부러지게 거부해야 한다. 성경에서 후(무)천년주의 거짓 교리를 저주한 이유가 무엇인가?(딤전 1:20, 딤후 2:17,18) 이는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귀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믿음의 선한 싸움은 "성경의 예언들"을 따라서 싸우는 싸움임을(딤전 1:18) 잊지 말아야 한다.
신실한 증인으로서의 삶
마지막으로 재림의 소망은 "신실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해 준다. 이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시면 "구원의 문"은 닫히게 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던 모든 죄인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벧후 3:9) 하는 데 있다. 재림의 소망을 지닌 성도는 바로 그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에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임무를(빌 2:15)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생명의 말씀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헛되이 달리지도, 헛되이 수고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나타내기 위해(빌 2:16)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살전 2:19) 하지만 세상에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한답시고 신실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다면 『자랑의 면류관』은커녕 부끄러움만 당하게 될 것이다. 설령 온 세상을 다 얻었다 해도 그는 결코 "유익한 삶"을 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막 8:38).
구원받은 우리가 이 세상을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재림의 소망" 때문이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악한 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참된 위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이 주는 이 소망은 없어져 버릴 세상이 주는 헛된 소망과 확연하게 다르며, 변화무쌍한 주위 환경이나 우리 마음의 상태와 무관하게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실하고 견고한 소망』(히 6:19)이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위에 있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골 3:2)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