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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전쟁들을 통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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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5월호>

광야의 전쟁들을 통한 교훈
민수기는 광야 생활 전반을 다루는 책이다. 시내 산에서 모압 땅, 즉 요단 강 동편에 이를 때까지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다루는데, 이는 출애굽기에서 시작한 광야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민수기의 후반부는 약속의 땅으로 진군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이 진군은 물론 전쟁을 말한다. 민수기에는 여러 번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는데, 광야 생활 자체가 고난과 시험의 기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전쟁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수기라는 광야의 책을 통해서 영적 전쟁의 교훈을 받는다.
영적 전쟁의 교훈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한 번의 실패를 제외하고는 항상 승리했다. 전쟁은 약속의 백성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협상이나 외교는 없다. 전쟁 외에는 하나님의 이 뜻을 이루는 방법이 없다. 이 방법은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였으며, 오히려 그들이 이 뜻을 온전히 행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받는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피를 통해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도덕적인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 것으로서, 그 땅의 백성이 매우 악하기 때문이다. 그 악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거민들을 멸하셔야 했다. 또 하나는 영적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서, 마귀를 완전히 멸하시는 재림의 예표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차지하시는 방법은 현재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와의 거래나 협상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분은 마귀에게 어떤 자비도 보이지 않으시고 완전히 멸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과 어떠한 타협도 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운데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1) 아말렉(출 17장)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실 때 필리스티아 지역으로 곧장 올려 보내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전쟁을 겪을 때 후회하여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할까 함이었다(출 13:17). 그러나 전쟁을 겪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전쟁을 겪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시내 산에 도착하기 전부터 전쟁을 겪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닛시”의 하나님이 되셨다. 이것은 출애굽 초기 사건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광야 생활에서 승리를 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특별히 아말렉은 “육신”을 상징하는데, 육신은 성도가 가장 빈번히 싸우게 되는 적이며, 성도들을 쉽게 죄 아래로 사로잡는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우리의 육신을 죽은 것으로 여기라고 했다(롬 6:11).
(2) 카나안(민 14장) : 이것은 카데스 바네아에서의 사건이다. 그들이 여호수아와 칼렙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이 전쟁은 최초의 정복 전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열 명의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진군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어 40년의 방황을 선포하시자, 그제서야 전쟁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패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셨음에도 그들 멋대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거절하셨다. 전해진 복음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판결이 내려진 후에 회개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원리가 잘 드러난다. 백보좌 심판석에서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 그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전 3:12). 판결을 뒤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주어진 기회 속에서 영적 전쟁을 승리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교리적인 상황은, 버림받은 후에는 다시 회개해도 회복할 수 없다는 환란 교리와 연결된다.
(3) 카나안(민 21장) : 이 전쟁은 긴 광야 생활을 끝내고 그 땅으로 전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첫 전쟁이다. 아론은 이미 죽었고, 이스라엘은 전진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그들은 아직 에돔 경내에 있었고, 남쪽 지역의 카나안 사람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은 이겼으며, 그 지역을 “호르마”라 했는데, 이곳은 카데스에서 멋대로 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스라엘이 패주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민 14:4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친 자들의 죄를 갚으신다.
이들은 이제 믿음의 전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한없이 징계 아래 두지 않으신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것을 해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힘을 주시어 승리케 하신다. 물론 승리의 조건은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믿음으로 진군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패배했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금 승리케 하시어 더 능력있게 사용하실 수 있다.
(4) 헤스본과 바산(민 21장) : 이때부터 본격적인 정복 전쟁이 시작된다. 헤스본 지역의 왕 시혼과 바산 지역의 왕 옥은 아모리 족속들을 다스리던 왕들이다. 요단 동편 지역이었던 이들 왕국에 대한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 후대에게 매우 중요한 전쟁으로 자리잡았다. 이 지역들은 결과적으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유업이 되었다. 성경은 이 전쟁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여 자주 강조한다(느 9:22, 시 68:22; 135:11; 136:20).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사건을 반복하여 기억해야 했다. 이처럼 승리한 전쟁은 대대로 기억된다. 당신이 승리한 영적 전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항상 기억해 주신다. 또한 우리의 승리한 경험은, 후에 다시 전쟁을 치를 때 힘을 얻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전쟁들을 기억할 때, “주께서 우리 조상들을 그처럼 도우셨듯이 우리도 도우소서.” 하는 기도를 드렸다. 우리가 승리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본 것이다. 승리를 맛본 성도는 또 승리하기 원한다. 그리고 혹 실패할 때에도, 과거에 나와 함께한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금 승리하게 된다. 당신은 승리해 본 영적 전쟁이 있는가?
(5) 미디안(민 31장) : 이 전쟁은 민수기 25장에서 있었던 바알프올의 범죄와 연관된다. 이스라엘은 모압 땅에서 그 땅의 종교 행위에 가담함으로써 음행을 저질렀다. 이 죄는 발라암의 계략으로 일어난 것이었으며(민 31:16), 하나님께서는 큰 진노로 24,000명을 죽이셨었다(민 25:9). 이제 3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범죄가 미디안 족속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미디안을 치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아온 여인들에 대해서도, 남자를 모르는 여자 아이 외에는 다 죽이라 하셨다. 이는 이 전쟁이 음행의 죄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음행은 우상 숭배와 더불어 신구약 성경을 통해 가장 강조되는 죄이다. 이 죄를 저지른 사람은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싸울 수가 없다. 음행은 (영적 음행이든 육신적 음행이든) 위대한 대장이신 우리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놓게 만드는 죄이다. 그러므로 이 죄 가운데 있는 성도는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철저한 돌이킴으로 그리스도께 밀착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승리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
율법 자체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성품은 거룩과 정결,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하나 더 강조되는 것은 바로 자비와 은혜인 것이다. 그렇게도 범죄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그 땅으로 들이시는 것은 바로 이 성품으로 인함이다.
민수기 13,14장 사건은 이 성품이 작용한 매우 큰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범죄로 인해 그들에게 긴 방황이라는 고난을 주셨지만, 사실은 그들을 모두 멸하려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전체 민족을 멸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철회해 주시기를 간구하는데, 이는 이 성품에 근거하여 용서를 비는 것이다(민 14:18,19). 모세는 출애굽기 34:6,7에서 친히 약속하신 그 약속, 즉 하나님의 자비의 성품이 반영된 그 약속을 주장했다. 이 약속은 시편 103:8-10에서도 반복되는 성품인 바, 우리 하나님을 더욱 위대하시게 하는 성품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가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22-24장, 즉 발라암 사건이다. 발라암은 명성이 나 있는 선지자였으나,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니었다. 성경은 그를 점쟁이(민 22:7)라고 부른다. 모압 왕 발락은 발라암의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물질에 눈이 어두운 발라암은 어떻게든 그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막으셨다.
발라암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발락의 요구를 세 번 받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막으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신다. 그의 축복의 예언은 이스라엘이 크게 번성한다는 것(23:7-10), 이스라엘의 죄악을 간과하시며 자비로써 그들을 복주시겠다는 것(23:19-24), 이스라엘은 부강할 것이며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24:5-9), 그리고 이스라엘의 복은 메시야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24:17-19) 등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위대한 예언을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자기 백성의 입을 통해 높임을 받으심도 위대하지만, 원수들의 입을 통해 높임을 받으시는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이 더 실제적임을 보여 준다. 이것은 그분의 왕국이 이방 왕국들을 제압하고 높이 서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그 영원한 유업의 땅을 주시는 과정을 다루는 책이다. 민수기의 대부분은 광야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광야 생활의 궁극적 목적은 약속의 땅을 향해 있고, 또 민수기의 뒷부분은 실제적으로 그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전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은혜와 자비라는 법칙으로 이끌고 계신 것이다. 카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지만, 실제적으로 민수기에서는 그 방황의 세월을 불과 여섯 장밖에 할애하고 있지 않다(15-20장). 그 여섯 장에서만이 광야 생활의 목적이 징계일 뿐, 나머지에서 보는 광야 생활의 목적은 약속의 땅을 향한 진군이다. 또 그 징계의 광야 생활을 다루는 첫장(15장)도 그 땅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전제로 서술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민수기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성품, 즉 자비와 은혜인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광야이다. 우리는 이 광야 생활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가운데 행하고 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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