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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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으로 비교해 본 "율법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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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 곧 "마태복음"에는 구약적인 경륜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신약적인 경륜도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교리적인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죄사함과 구속의 차이," "유대인과 교회의 차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본지 272호, pp.26-31 참조), 무엇보다도 "율법과 은혜"를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17에서는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새로운 중보자로서 새 언약(new testament)의 피를 흘리시기 전까지는 여전히 율법 시대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엡 2:8) 교회 시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마태복음을 비롯한 사복음서에는 대부분 구약적인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씀들이 "구약적"이라는 것은 "율법 중심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전체 929장으로 구성된 구약에서 110개의 장 1) 이것은 율법 이전 시대의 경륜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50장), 출애굽기 일부(18장), 욥기(42장)를 구성하는 장(chapter)의 개수를 합한 숫자인데, 구약 전체의 약 12%에 불과하다. 즉 2,500년 정도의 기간(율법 시대의 기간은 약 1,500년임)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분량이다.

을 제외한 모든 장이 믿음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율법 시대의 경륜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은 대부분 율법 중심적이고 율법적인 의를 강조한다. 따라서 구약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태복음이 제시하는 의는 신약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의 의"나 "믿음을 통해 얻는 의"가 아니다. 그래서 신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내용들을 담고 있는 사복음서는 "율법(계명)을 행하고 지킬 것"에 대해 강조한다. 말하자면 율법의 행위를 통한 구원의 교리가 등장하는데, 이것을 신약의 구원의 교리로 가져오면 안 된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가져오신 분이지만,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신 이상(갈 4:4) 율법을 지키셔야 했다. 또한 믿음을 통한 은혜로 구원받는 교회 시대를 시작하시려면 율법을 온전히 이루셔야 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죄도 없으시고 회개할 필요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굳이 침례인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침례를 받으신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는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알리시기 위해서였다(요 1:31-34). 둘째는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시니, 이에 그가 허락하더라』(마 3:15).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적인 의"를 이루셨다. 죄에 속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으로 오셔야 했듯이, 율법에 속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왕이 되시기 위해 "율법 아래로" 들어가셨다. 이렇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면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알려 주셨고, 침례에 순종하심으로써 율법의 의가 요구하는 모든 의를 이루신 것이다(피터 S. 럭크만의 주석서 <마태복음>, pp.73-76 참조). 물론 침례를 통해 의를 이루는 것은 교회 시대의 교리가 될 수 없다. 이는 성경이 물(침례)은 구원하는 모형일 뿐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벧전 3:21). 이처럼 십자가 사건 이전과 이후는 교리적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오셨다(마 5:17).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두 구절과 비교해 볼 때 모순처럼 보인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셨으며』(골 2:14). 『원수 된 것, 곧 법령 안에 속한 계명들의 율법까지도 그의 육신 안에서 폐기하셨으니』(엡 2:15). 물론 모순이 아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셨고 온전히 이루셨다. 그리고 그 완성하신 율법을 "그분의 육신 안에서" 폐기하시고 지워 버리셨으니, 십자가를 통해 하신 것이다. 이로써 구약의 율법 시대는 마감되고 신약의 교회 시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교회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계획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곧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신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성도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든,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더 이상 율법의 행위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미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율법은 무조건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폐기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는 여전히 율법이 왕성하게 살아 있다. 따라서 믿음에 의한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죄인은 여전히 율법의 정죄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 율법(계명)을 강조하는 마태복음

마태복음 27장에 이르기까지 아직 "새 언약의 유언자"께서 죽지 않으셨으므로, 율법과 계명은 계속해서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마 5:18) 율법의 완성을 강조하셨다. 심지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뛰어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실 만큼 율법적인 의를 주장하셨다(마 5:20). 또한 천국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조건으로 계명들을 행하라고 말씀하셨고(마 5:19), 인간적인 전통으로 율법에 명시된 계명을 폐기시키는 바리새인들을 강력하게 책망하셨다(마 15:3-9). 그분께 경배드리며 낫기를 간구하는 문둥병자를 직접 치유해 주셨을 때는, 문둥병을 깨끗하게 하는 율법의 규례(레 14:1-3)를 따라 "제사장들에게 나은 몸을 보여 주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증거를 삼으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마 8:2-4). 이 모든 내용은 구약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 율법의 행위를 통한 구원

특히 어리석은 부자였던 젊은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건에서 율법의 행위를 통한 구원의 교리를 발견하게 된다(마 19:16-26, 막 10:17-27, 눅 18:18-27). 이 관원이 예수님께 드렸던 질문에 유의해야 한다. "선한 선생님,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 19:16) "제가 영생을 상속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막 10:17, 눅 18:18) 이 관원은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떤 선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만일 신약의 교회 시대였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행 16:30) 말하자면 이 부자 관원은 구약적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율법의 행위들에 관해 물었던 것이다. 특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영생의 상속"에 관해 묻는다. 상속에는 유업의 개념이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유업은 행위와 연결된다. 따라서 영생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행위를 통해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약적인 관점이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행위를 따라 영생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선물로 받게 된다(엡 2:8).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역시 구약의 율법적인 특징을 보여 주는데, 곧 실제적인 율법의 행위들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네가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네가 계명들을 아나니』(막 10:19). 계명들을 알고 있다면 지키라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눅 18:20).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계명은 신약에 등장하는 "새 계명"(요일 2:7,8)이 아니라, 구약에 등장하는 율법의 십계명을 말한다(마 19:18,19). 만일 이 상황이 신약적인 상황이라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예수님께서는 이 관원에게 "성령으로 거듭나라."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으라."든지, "은혜로 구원받으라."든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오직 영생을 온전하게 얻기 위해서는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자였던 세리장 삭캐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눅 19:1-10). 그때 주께서는 "구원이 삭캐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삭캐오가 거듭났거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율법을 따라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부정한 방법으로 착취한 것에 대해서는 네 배로 갚겠다."고 말했을 때 하신 말씀이었다.

이렇듯 마태복음에서는 율법의 행위와 그에 따른 구원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만나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한다. 결국 혼란에 빠지게 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어떤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이상한 거짓 교리를 주장하게 된다.

■ 믿음을 통해 얻는 생명

그러나 우리는 사복음서가 과도기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많지는 않지만 신약적인 교리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도 보게 된다. 교회 시대의 교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복음서들보다는 보다 더 교회 시대의 교리적 기반 위에서 과도기적인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에서 그런 내용을 본다. 이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서 잘 나타난다. 『실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나,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0,31). 요한복음 1:29에서도 예수님을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믿음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이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6:36,40), 이것은 초림 당시의 구약적인 모습이다. 교회 시대에는 주님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십자가 이전의 상황에서 예수님을 보고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구약 성도이다. 이들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과 다르다. 교회 시대에 성도들의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벧전 1:8,9). BB

(각주)-------------------------------------------------------------------------------------------------------------

1) 이것은 율법 이전 시대의 경륜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50장), 출애굽기 일부(18장), 욥기(42장)를 구성하는 장(chapter)의 개수를 합한 숫자인데, 구약 전체의 약 12%에 불과하다. 즉 2,500년 정도의 기간(율법 시대의 기간은 약 1,500년임)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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