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 분류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
컨텐츠 정보
- 1,316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4월호>
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에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큰 복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이 성경, 곧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교회사와 순교자들의 피 흘린 발자취를 따라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특히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하나님께서 승인해 주신 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이 현재 우리의 손안에 들려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종종 “이 성경이 내 손에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자문해 보곤 한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지상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이 성경을 단 한 번도 소유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읽어 본 적도 없고, 공부해 본 적도 없으며, 단 한 번도 믿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성경을 사랑해 본 적도, 깊이 묵상해 본 적도, 암송해 본 적도 없다면, 또는 이 성경으로 예배를 드려 본 적도 없고, 이 성경대로 살아 본 적도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삶은 “불행”을 넘어 “비극”이다!바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의미와 가치를 아는 성도라면, 이 성경을 사랑하고 굳건히 수호하는 데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암송하면서 성경 말씀 있는 그대로를 실행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번은 피터 럭크만 목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났을 때 그의 손에 들려진 <킹제임스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책 한 권,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갖게 되었다. 그 성경은 나의 생활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내가 그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로마카톨릭과의 관계를 청산한 것은 물론, 내가 마시던 맥주와 위스키를 치워 버렸고 그다음으로는 담배를 버렸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게 무언가 이로움을 주는 책 한 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와 동일한 권위를 지닌 성경이 지금 우리의 손안에도 들려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이 성경이 어떤 책인가? 여러분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러분은 성경을 사랑하고 있는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책인가? 이 세상 그 어떤 책들보다도 가장 신뢰하는 책인가? 과연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는가? 항상 성경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고, 집중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잠언 22:19에서는 『너의 신뢰가 주께 있게 하려고 오늘 내가 너에게 이것을 알게 하였으니, 바로 너에게라.』라고 말씀한다. “바로 너에게라!” 다른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지체들이라고 하지 않았다. 육신적인 성도들이나 회개할 필요가 있는 성도들, 또는 힘과 위로가 필요한 성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바로 너에게라!” 지금 이 책과 대면하고 있고, 이 책 앞에 앉아 있는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이 성경은 영원히 살아 있는 책으로서 항상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고 우리의 발걸음을 살피고 있다. 우리가 앉고 서는 것은 물론, 우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안다. 우리의 길과 우리의 눕는 것을 샅샅이 알고 있고, 우리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다 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은 『바로 너에게라.』(잠 22:19)라는 말씀대로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임을 기억해야 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여러분은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가? 하루 중에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기회가 닿는 대로 성경을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자리에 항상 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서 깨달았다고 말할 때 성경 말씀을 깨달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나는 지금 무슨 복잡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주 쉬운 일이며,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관한 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자기들만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우쭐대는 “영지주의자들” 또는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신학 용어와 히브리어, 헬라어 등의 원어를 써 가며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길 좋아하는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들처럼 그 안에 감추어진 어떤 복잡한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과정이 아니다. 복잡한 수학 공식들을 이용하여 무슨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 풀 듯이 하는 것을 성경 공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현학적이고 어려운 신학 용어들을 배우고,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성경 공부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성경을 공부하여 깨달아 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를 암시해 주는 내용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번역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주고 거룩한 땅이 보이도록 장막을 걷어 주며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의 덮개를 치워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번역된 성경의 가치”다. 말하자면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읽기만 해도 성경의 풍성한 진리들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의 진가”인 것이다.
한편 이렇게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고 출간된 그 배경에는 “윌리엄 틴데일”
(1494-1536)의 역할이 매우 컸다. 중세 암흑시대에 로마카톨릭이 성경 번역을 금지했을 때, 틴데일은 누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여 깨달을 수 있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려고 했다. 그때 한 카톨릭 신학자가 틴데일을 비아냥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지한 백성들에게는 성경이 필요 없소! 그들에게는 교황이 내려 주는 ‘교시’나 교황이 제정한 ‘교회법’으로도 충분하오. 교황의 교시나 교회법 없이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없이 사는 게 더 낫소!” 이 말에 틴데일은 이렇게 응수했다. “자, 보시오! 영어로 성경이 바르게 번역되고 나면, 반드시 수년 내에 쟁기를 끄는 저 무지한 소년이 잘난 체하는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오.” 물론 틴데일은 신약성경을 출간했지만, 구약성경까지는 번역을 완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1536년에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40세의 나이에 화형을 당해 순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이렇게 외쳤다.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이 순교자의 마지막 기도를 들어주셨는데, 그로부터 75년만인 1611년에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눈을 열어 주셔서 <킹제임스성경>을 번역 출간하게 하신 것이다.
바른 성경의 가치는 무엇인가? 바르게 번역된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해 주는가?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바르게 번역된 성경을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읽기만” 해도 성령 하나님을 통해 언제든지 그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성경은 성경 스스로 해석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구절의 의미를 해석하려 들기 전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의미를 이미 성경 안에 해석해 놓으셨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성경 안에 이미 주어진 진리나 해석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 기록하시고 감추어 두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캐내는 일인 것이다. 『그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그러므로 성경을 안다는 것은, 어떤 진리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어떤 책, 몇 장, 몇 절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또한 그 구절이 다른 연관된 구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구절이 그 연관된 구절과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 성경 공부이고, 그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성경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성경을 부지런히 많이 읽은 사람이 성경을 많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킹제임스성경>을 150번 이상 읽은 피터 럭크만 목사가 성경 지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을 잘 알고 싶은가? 그러면 성경을 읽으라. 매일 정해진 분량을 규칙적으로 읽으라. 그리고 반복해서 읽고 또 공부하라. “반복”은 성경을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진리를 사고, 그것을 팔지 말라.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하라』(잠 23:23). 진리를 위한 투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 투자다. 이는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빛나게 해 주고, 우리의 현 생애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성경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