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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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담긴 끔찍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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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1월호>

피터 럭크만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가 교회의 휴거 이후에 국제연합(UN)에서 벌어질 ‘식인 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끔찍한 진실” 앞에서 어떤 목사나 신학 교수도 이 “엄청난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감히 성경적으로 파헤치고 연구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지 않고, “문자적인 해석의 원칙” 속에서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는(딤후 2:15) 명령을 거부한 결과,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통찰력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키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을 때다. 멜키세덱은 “의의 왕”이요, “화평의 왕”으로서(히 7:1,2)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예표”가 되는 이방인 제사장이다. 『살렘 왕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며 말하기를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을 복 주시옵소서. 너의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리더라』(창 14:18-20). 그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낳은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피해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던 길에서 하나님께 서원했을 때이다(창 28:20-22). 그 이후로는 모세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자주 강조된다.

한편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으로 간주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도둑질하였도다.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니, 십일조와 제물들이라』(말 3:8). “십일조”는 『주의 것이니, 그것은 주께 거룩한 것』(레 27:30)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소유”로서 “십일조”를 요구하신다. 보통은 가축과 씨앗이 십일조로 드려졌고(레 27:30-32), “레위인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대하 31:4-10) 십일조들을 창고들 안으로 들여왔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장소가 없으리라』(말 3:10). 이렇듯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치약 ․ 비누 회사 설립자 “윌리엄 콜게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성공의 비결은 십일조에 있습니다. 저는 수입 중 십분의 일을 항상 구별하여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 두고 나머지 십분의 구를 가지고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래도 사업은 더욱 번창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도 십일조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가 제가 받은 복의 근원이었으니까요.” 맨소래담으로 유명한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도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진 빚보다 하나님께 진 빚이 먼저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자, 아름다운 복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명령에 넘치도록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출 16:31), 특히 그 “만나”의 일정량을 항아리에 담아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과 더불어 언약궤 안에 넣어 보관했다. 보관된 양을 보니까 “한 오멜”(출 16:32), 곧 “십분의 일” 에바였다(출 16:36). 교회가 휴거되고 나면 유대인들은 대환란 기간에 출애굽 때처럼 1,260일 동안 광야로 피신한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부양받게 될 것이다(계 12:6). 하지만 미처 광야로 피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먹힐”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아직도 십분의 일이 있을 것이요 그것이 돌아와서 먹힐 것이니 잎이 떨어져 줄기가 남아 있는 보리수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거룩한 씨도 그 줄기가 되리라』(사 6:13). 이렇듯 “먹히는 대상”은 “거룩한 씨,” 곧 “사람들”인데, 그들은 “경건한 씨”로서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스 9:2, 느 9:2, 말 2:15). 특히 그 유대인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 대환란 기간에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있을 것이다. 『백성의 치리자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였고, 백성의 남은 자들을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데려와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고, 아홉 부분은 다른 성읍들에 거하게 하였으며』(느 11:1).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로 “사람들”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일종의 “씨”(seed), 곧 “씨앗”(seed)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 당시에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 예루살렘에 거했듯이, 장차 대환란 기간에도 그들의 본토로 돌아온 유대인들 가운데 “십분의 일”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먹힐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환란 기간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제단”에서(계 6:9)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계 20:4). 적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은 짐승들이 아닌 “사람들,” 곧 참수형 당한 유대인들로 환란 성전의 번제단 위에 희생제사를 드릴 것이고, 유대인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것이다(계 16:6). 이 끔찍한 “인신 제사”와 “살육” 그리고 “식인 행위”에 관해서는 다윗이 선지자가 되어(행 2:30) 이렇게 예언하기도 했다. 『다른 신을 급히 쫓는 자들의 슬픔이 커지리니 나는 그들이 바치는 피의 술제물을 바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름들도 내 입술에 두지 아니하리라』(시 16:4). 『피의 술제물』은 오랫동안 로마카톨릭에서 소위 “성만찬”이란 이름으로 자행해 왔던 의식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실제 피”로 바뀐다고 믿으면서 먹고 마신다. 일종의 “피의 술제물”을 바치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들은 그러한 “피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다.

『너희가 또 내 백성의 살을 먹고 그들에게서 가죽을 벗겨 내는도다. 그들이 백성의 뼈를 부수어 잘게 다지기를 마치 솥과 가마솥 안에 넣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 3:3). 『정녕, 그들이 자기 아들들과 자기 딸들을 마귀들에게 제물로 바쳐 무죄한 피, 즉 자기 아들들과 자기 딸들의 피를 흘려 카나안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쳤으니 그 땅이 피로 오염되었도다』(시 106:37,38). 살육을 당한 유대인들이 마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쳐질 뿐만 아니라 잡아먹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지구를 떠나고 나면, 멸망의 아들이라 불리는 적그리스도가 세상 전면에 등장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의 자비석 위에 앉아 하나님으로 자처할 것이고(살후 2:3,4), 그의 “살인 특공대”에 붙잡힌 유대인들을 희생제물로 받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흘린 실제 피를 통해 “로마카톨릭 미사”를 대대적으로 집전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적인 의미”(요 6:63)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문자적인 의미로” 왜곡하면서 다음의 구절들을 낭독하게 될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이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임이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하느니라』(요 6:54-56).

한편 선지자 이사야는 그렇게 유대인들이 박해당하는 상황을 『잎이 떨어져 줄기가 남아 있는 보리수나무와 상수리나무』(사 6:13)의 모습에 비유한다. “상수리나무”는 겨울을 맞아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말하자면 나무들이 잎이 다 떨어져 줄기만 남더라도 그 뿌리가 땅속에 남아 있는 한 다시 소생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역시 그렇게 소생한다는 것이다. 한때 이스라엘이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이나 그와 비슷한 자들에 의해 완전히 잘렸어도 다시 한 나라로 소생한 것처럼, 미래의 대환란 기간에도 적그리스도에게 박해당하고 잡아먹힌다 해도 그들은 또다시 소생할 것이다. 곧 재림 때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구상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무렵에 그러한 유대인들을 부활시키셔서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으로 복귀시키실 것이고, 주님과 더불어 공동 치리자로 삼으시어 민족들을 통치하게 하실 것이다(욥 14:7-9, 사 4:3, 계 20: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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