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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문둥병 그리고 환란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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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8월호>
염해(salt sea, 창 14:3)는 염도가 약 25%로 세계에서 염분이 가장 많은 바다이다. 바닷물은 4-6%의 염도를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염해는 물에 함유된 소금기가 일반 해수의 다섯 배나 된다. 이렇듯 생물이 전혀 살 수 없는 환경이기에 "사해"(dead sea)라고도 불린다. 요세푸스는 "소돔의 바다, 역청의 바다"라 불렀고, 현대 아랍인들은 "바하르 루트"(Bachr Lut), 곧 "롯의 바다"라 부르고 있다. 이곳의 수면은 지중해보다 약 400m가 더 낮을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데, 이렇게 수면이 낮은 사해로 유입되는 물의 양은 계속 줄고 있어서 평균 수면이 1년에 약 80cm씩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비율로 낮아지다 보면 사해는 얼마 안 가 소금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사해에 소금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소돔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주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고 그 성읍들과 모든 평지와 성읍들의 모든 거민들과 땅에 자라는 것들을 뒤엎으셨더라』(창 19:24,25). 여기에서 성읍들이 위치한 지역은 사해 남쪽으로 본래 바다가 아닌 "평지"였다(창 13:10-12). 『싯딤 골짜기』(창 14:3)가 있던 평원이, 유황과 불이 비처럼 떨어지던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뒤엎어지면서 소금기가 가득 찬 바다로 변했던 것이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의 시대는 이곳이 염해로 바뀐 지 이미 400년 정도가 지난 때이므로, 모세는 창세기 14:3을 기록할 때 『이는 곧 염해라.』라는 말씀을 첨언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하여 "불과 유황"이 종종 함께 등장하고(시 11:6, 겔 38:22), 불과 유황이 함께 타는 못을 가리켜 "불못"이라고 말씀한다(계 21:8; 20:14,15). 그리고 유황은 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신 29:23), 중세 암흑시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연금술의 경우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두 가지가 "유황과 소금"이었다. 마가복음 9:49에서는 유황으로 가득 찬 지옥 불을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이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을 것이며, 모든 제물이 소금으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한다. 또한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쏟아질 때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켜 전설이나 신화로 취급하려 하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으로 적어도 네 개의 성읍이 재로 변했고 유황과 불이 이 성읍들 위에 쏟아졌다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발굴된 어떤 집 내부에서는 재로 변한 유황 덩어리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였고 모든 실상을 정연하게 알고 있던(눅 1:1-3) 누가가 창세기의 소돔에 관한 심판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음을(눅 17:29) 주목해야 한다. 성경은 단순히 교훈을 주기 위한 신화나 우화로 구성된 책이 아니고 실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세상에서 오류가 없는 유일무이한 역사책은 성경밖에 없다. 그래서 동일한 저자의 기록인 사도행전 1:3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언급할 때도 『무오한 증거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유대인들이지 교회가 아님) "대환란"에(교회 시대가 아님) 관한 설교를 하시면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눅 17:32)고 경고하셨다. 그녀는 불바다가 되고 있는 소돔 성읍을 빠져나왔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평지에서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소금은 색이 하얗다. 온통 "하얀" 소금 기둥이 된 것이다. 그녀는 소돔에 남겨 둔 주택과 집 안에 놓고 온 귀중품, 보석, 통장, 현금, 가구, 옷, 자동차 등에 미련을 두었었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사라져 버릴 세상의 정욕과 맞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데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씀에 앞서서 누가복음 17:31에서는 『그 날 낮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들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돌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절대 그곳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빨리 산들로 도망해야 하는 것이다(마 24:16). 돌아가게 되면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생명을 잃는다. 왜냐하면 "환란 시대"에(마 24:21)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그 유대 지역의(마 24:16) 여러 집들로 역병, 곧 "문둥병"(leprosy)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문둥병은 사람의 피부에만 생기지 않고, 집과 물건 및 옷에까지 퍼질 수 있는 역병이다(레 13,14장).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곳으로 문둥병을 보내시는 것인가? 많은 유대인들이 짐승의 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짐승의 표를 받은 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대환란 때는 짐승의 표를 받지 못하면 매매가 불가능해서(계 13:17) 굶어 죽을 수 있기에 생명을 유지하려면 짐승의 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면 잃』게 되는 법(눅 17:33), 결국 짐승의 표를 받은 유대인들은 "문둥병"에 걸려 생명을 잃는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6:2에서는 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심한 헌데"가 생긴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가 가서 자기 호리병을 땅에 쏟으니 그 짐승의 표를 가진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 위에 악취가 나는 심한 헌데가 생기더라.』 문둥병에 걸리면 헌데가 생긴다(레 13:42,43).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그들의 문둥병에 전염된 집 안으로 물건과 옷들을 가지러 돌아간 자들 역시 문둥병에 전염되어 죽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역병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롯처럼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리고 있다든지(창 19:16)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본다든지 하면서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육신으로 더럽혀진 그 옷』, 곧 문둥병이 생긴 『그 옷조차도 증오』하는(유 1:23)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레위기 13:13에 의하면 문둥병이 몸 전체에 퍼진 사람은 하얗게 된다. 『제사장은 숙고할지니, 보라, 만일 문둥병이 그의 온 몸에 퍼졌으면 제사장은 질환을 가진 그를 깨끗하다고 선언할지니 모두 희어졌으므로 그는 깨끗하니라.』 탐욕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나아만의 문둥병이 옮겨진 게하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너와 네 씨에게 영원히 붙어 있으리라." 하더라. 게하시가 눈처럼 하얀 문둥병자가 되어 그의 면전에서 나갔더라』(왕하 5:27). 이는 마치 하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래서 "롯의 날"에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환란 시대"에 집 안의 물건을 가지러 돌아갔다가 "구원을 잃어버린 자들"의 예표가 된다. 그녀는 소돔 성읍을 빠져나와 불의 형벌을 받는 소돔으로부터 구원받았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끝까지 유념하지 못한 채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란 시대에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설령 구원받았다 해도 그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환란 시대는 오늘날 교회 시대처럼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끝까지 견디는 인내의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 24:13). 여기에서 "끝"은 문맥적으로 『대환란』(마 24:21) 기간의 끝을 의미한다. 결코 교회 시대가 아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과연 우리나라 교회와 신학교들에서 이상 언급한 "환란 성도"에 대해 알고 있는 목사나 교수 및 신학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의 전무하다! 심지어 구약 성도와 신약 성도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성경에서 성도라고 하니까 다 같은 성도인 줄로 착각해 버린다. 언약신학에 세뇌된 자들은 "구약 성도는 다가올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았고 신약 성도는 뒤에 있는 십자가를 보고 구원받았기에, 구약이든 신약이든 구원받는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는 헛소리를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뇌까리는 것인데 이보다 더 무식하고 답답한 자들도 없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운 신학을 성경 구절로 입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 거짓 신학의 틀에 성경 구절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 얼마 전 이 부분에 대해 전화를 해서 논쟁을 걸어 온 모 교회 부목사라는 자가 있었다. 필자는 그에게 물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구약 성도들 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나요? 성경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나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는 답변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구약 성도는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4장 이래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어떤 성도도 "거듭나지" 못했다. 구약에서 교회 시대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정말 그러한지 성경을 "상고"해 보라!(행 17:11) 이 나라에는 게으르고 무지한 목사들과 신학자들 태반이다. 도무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 뒤로 숨어 자신의 무지를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일들에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정당화하기만 한다. 설령 공부했다 해도 성경을 올바르게 나누어 공부한 적이 없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딤후 2:15). 여기 밑줄 친 부분이 변개된 개역성경 및 개역개정판에서는 각각 "옳게 분별하라"와 "드리기를 힘쓰라"로 변개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 그래서 진리에 관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 3:7).
소돔의 멸망과 연관해서 이들 무지한 자들이 결코 깨닫지 못하는 한 가지 진리가 더 있다. 롯의 날에 불과 유황으로 심판받은 성읍들 남쪽의 인접 지역이 "에돔"인데, 환란 시대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서 천년왕국이 세워지면 이 지역에 지상의 불못이 존재하게 된다. 이사야 34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보스라와 이두메로(6절) 대표되는 에돔 지역의 『시내들은 역청으로 변하게 될 것이요, 그곳의 흙은 유황으로 변하고, 그곳의 땅은 불타는 역청이 되리라. 그것은 밤낮 꺼지지 않을 것이며, 그 연기들은 영원히 올라가리라. 대대로 그것은 황폐하게 남아, 그곳을 통과하는 자가 영원무궁토록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다(9,10절, 사 66:24). 천년왕국 기간에 죄인들을 산 채로 던져 넣는 지상의 불못이 될 텐데, 혼뿐만 아니라 몸까지 그곳으로 던져지게 된다(마 5:29,30; 10:28).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고 돈을 사랑하며 직분을 사고팔고 교회 건물과 부동산 및 교인수를 자랑하는 목사들은 이런 진리를 결코 깨달을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구원받지도 못했다. 그런 소경 된 자들에게 목사라는 직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벌을 받을까 두려워 그들을 떠나지도 못한 채 맹목적으로 따르는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장차 그들이 머무를 영원한 거처는 불못이다. 유황으로 가득하고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는 장소 말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들에게는 불로 소금치듯함을 받는 끔찍한 형벌의 장소에 가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너희의 말이... 소금으로 맛을 내듯 하라.』(골 4:6)는 말씀대로, "소금의 말"로 그들의 아픈 데를 건드려 설령 고통이 뒤따른다 해도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성경대로 전함으로써 그들을 주님께로 이겨와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