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 분류
왜 여자는 갈비뼈로 만들어졌는가?
컨텐츠 정보
- 1,725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5월호>
흙으로 최초의 인간, 곧 아담을 만드신 주 하나님께서는 그를 “돕는 자”(help meet)인 여자(이브)를 지으시기 위해 그의 “갈비뼈”를 사용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드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 중에서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거기를 채우시더라』(창 2:21). 이것은 현대 “첨단 과학과 의학”을 6천 년 이상 앞지르는 최첨단 수술로서, 오늘날 행해지는 어떤 “복제 기술”도 하나님의 이 마취 수술을 흉내 낼 수 없다.한번은 소위 고등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어떤 진화론자가 피터 럭크만 목사를 향해 빈정대면서 이렇게 물었다. “설마하니 당신은 대학 교육도 받고 박사 학위까지도 받은 마당에 하나님께서 고작 ‘갈비뼈’ 한 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설화를 정말로 믿는 건 아니겠죠?” 그러자 럭크만 목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뜨거운 바위에서 인간이 우연히 진화되어 나왔다는 그 말도 안 되는 난센스도 믿지 않겠군요?”
사실 진화론은 실험적 관찰과 과학적 증거를 통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fact)이 아니라 “허구”(fiction)이다. 그래서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은 허구를 믿는 종교적인 광신자들일 뿐이다.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우프”(David Raup)는 “순전히 환상에 불과한 것(진화론적인 가르침)들이 아이들의 교과서 안에 버젓이 수록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Loren Eiseley)는 진화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학(진화론)은 과학(진화론)만의 신화를 창안해 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정직하게 시인했다.
이처럼 진화론자들은 과학이 아닌 허구를 믿는 사람들이다. 사실 뜨거운 바위처럼 생명이 없는 무기물에서 생명을 가진 유기물로 진화했다고 하는 이 “우연의 기적”을 믿는 데는 실로 “대단한” 믿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학적으로 계산해 봐도 그런 우연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101,360분의 1이기 때문이다. 101,360이란 수는 숫자 “1” 뒤에 “0”이 1,360개가 붙은 수로서 한 개도 아닌 열 개의 우주 공간에 있는 전자의 수를 모두 합해도 그만큼의 수에 못 미친다. 아무것이나 무턱대고 믿는 광신도가 되지 않고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런데도 진화론자들은 이런 허구는 곧잘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거짓 환상은 무턱대고 믿으면서 “지옥으로 향해 가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진화론과 같은 미신 따위를 믿느니, 차라리 성경을 믿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하여 “역사적인 사실”로서 철저하게 입증된 48가지의 예언이 나온다. 이 48가지의 예언이 그분의 생애에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일이 일어날 수학적 확률은 10157분의 1이다. 10157은 숫자 “1” 뒤에 “0”이 157개 붙은 수다. 말하자면 진화론자들이 믿고 있는 허구가 일어날 확률보다 “0”이 무려 1,203개나 더 적은 확률인 것이다. 수학적인 확률로 보더라도 진화론의 허구보다 성경의 진리를 믿는 편이 훨씬 더 쉽다.
특히 이것은 진화론처럼 우연이나 추측 또는 가설에 기반을 둔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입증이 되었고 실제로 그것을 목격한 다수의 증인도 있는바,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일어날 확률이다. 이에 반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우연의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일례로 우주가 138억 년 전에 우연히 대폭발하여 형성된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당대에 500명이 넘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 그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고전 15:3-6). 따라서 다윈의 허구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경이라면 무조건 피하려 하는 “기피증 환자”이자,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완고한 “고집쟁이”인 것이다.
갈비뼈는 인간이 가진 206개의 뼈 중에서 탁월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
1986년 한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연료를 가득 실은 탱크차와 시속 약 180km로 정면충돌한 대형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연설가인 “칼 빌란트”(Carl Wieland)로서, 그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수개월 동안 신체 여러 부위에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었다. 이식 수술을 위해 종종 그의 “뼈”가 사용되었는데, 담당 성형외과 의사는 수술할 때마다 그의 흉곽 오른편에 난 상처 구멍을 통해 수술을 위한 뼈를 취했다. 어느 날 칼 빌란트는 그 의사에게 “이식 수술을 위해 뼈를 계속 취하는데도 왜 뼈가 바닥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이식 수술을 위해 취하는 뼈가 “갈비뼈”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뼈를 취하되 ‘골막’(뼈를 감싸 주는 막)은 손상되지 않도록 남겨 둔답니다. 그러면 보통의 경우 갈비뼈는 다시 그 자리에서 자라납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골막에는 새로운 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포가 들어 있으며,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갈비뼈의 골막이 다른 어떤 뼈보다 뼈를 더 잘 재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성형외과에서 시행하는 수술 중에 “아담의 수술”(Adam’s Oper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교통사고 등으로 아래턱이 손상된 환자 등을 치료할 때, 7번과 8번 갈비뼈에 붙어 있는 연골과 근육, 피하 지방층, 피부를 한 번에 다 떼어 내어 턱뼈를 비롯하여 턱의 피부까지 복원하는 수술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갈비뼈 하나로 “한 사람”을 만드셨던 것처럼 갈비뼈와 그 주변 조직을 가지고 다친 부위를 완벽히 복원하는 수술인 것이다. 이처럼 다른 부위의 치료를 위해 멀쩡한 뼈를 떼어 내는 부위는 인체의 뼈 중에서 갈비뼈가 유일하다. 그렇게 해도 뼈는 스스로 치료되고 재생된 뼈는 원래만큼 단단해진다고 하니, 그 어떤 현대 의학도 감히 성경을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의사”이시다. 어떤 질병이든지 항상 위대한 의사이신 주님께 먼저 나아가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한다. 『아사가 치리한 지 제삼십구년에 그의 발에 병이 생겼는데 그 병이 심히 중하게 되었더라. 그런데도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사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 16:12).
한편 인간에게는 총 12쌍(24개)의 갈비뼈가 있지만, 성경에서는 유독 “다섯 번째 갈비뼈”(the fifth rib)에 대한 언급만 총 네 번 나온다(삼하 2:23; 3:27; 4:6; 20:10). 『그러나 그가 옆으로 돌이키기를 싫어하니 아브넬이 창 뒤 끝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를 찌르니 창이 그 뒤로 나온지라, 그가 거기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아사헬이 쓰러져 죽은 곳까지 온 모든 자들이 가만히 섰더라』(삼하 2:23). “다섯 번째 갈비뼈”는 오직 바르게 보존된 성경에만 나오는데,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네 구절 모두 “다섯 번째 갈비뼈(또는 갈비뼈 아래)를 찔렀다.”라고 말씀하는 반면,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단순히 “배를 찔렀다.”라고 변개시킴으로써 “다섯 번째 갈비뼈”에 담긴 중요한 진리를 모르게 만들었다.
인간의 몸에서 다섯 번째 갈비뼈는 “심장”을 보호하고, 성경에서 숫자 “5”(다섯)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을 때 그는 실제로 죽은 것이었고,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비뼈는 다섯 번째 갈비뼈였음이 분명하다. 여자는 아담의 “죽음의 원인”이었으며, 그녀는 아담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던 다섯 번째 갈비뼈에서 나왔다. 초림 당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찔리신 옆구리(요 19:34) 역시 다섯 번째 갈비뼈 부근이었으며, 로마의 병사들이 어그러진 뼈들(시 22:14) 사이로 창을 찔러 넣었을 때 이미 밀초같이 녹아내린(시 22:14) 심장이 관통되면서 피와 물이 모두 쏟아졌다(요 19:34).
마지막 만찬에서 주의 품(가슴)에 기대어 있었던(요 13:23; 21:20) 요한은 바로 그 다섯 번째 갈비뼈로 보호받고 있던 심장 부근에 기대고 있었던 것인데, 그때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고동치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피”(행 20:28)를 힘 있게 뿜어내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느꼈던 그 감회를 우리에게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태초부터 계셨고, 우리가 들었으며, 우리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여 살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졌던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라』(요일 1:1).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한 사도 요한은 “교회”의 예표가 되는데, 교회는 여자와 아담의 관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원인이었고, 옆구리, 곧 다섯 번째 갈비뼈 아래가 강타당했을 때 교회가 나올 수 있었다(시 22:30,31).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사 53:10).
이제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그의 죽음을 통해 보여 준 “여자를 향한 위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다. “내 뼈들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여!”(창 2:23). 또한 이것은 그분의 죽음을 통해 보여 주신 “교회를 향한 위대한 사랑”의 고백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임이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서 한 몸이 될지니라.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엡 5:30-32). 이러한 사랑의 고백과 관련하여 영국의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다음과 같은 영적 교훈을 덧붙였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데는 깊은 뜻이 있다. 남자의 발로 만들지 않은 것은 짓밟히지 않도록 하심이고, 옆구리로 만든 것은 나란히 함께하라 하신 것이요, 팔 아래 있는 것으로 만든 뜻은 보호받으라고 하신 것이며, 심장 옆의 것으로 만드신 것은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최초의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지만, 이후로는 모든 사람이 여자에게서 태어난다. 심지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도 여인 마리아가 낳았다.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는 진심으로 여인들을 돕고 싶어 하셨고 때로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도 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여인들은 물질로 주님을 섬겼고, 특히 이들 중에는 줄곧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도 있었는데 “십자가”와 “무덤”까지 따라가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최초로 알린 사람들이 되었다. 주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막 16:9-11, 요 20:11-17). 그렇게 보면 “구속”에 관한 좋은 소식을 첫 번째로 알린 사람도 “여인”이었고(아셀 지파의 여선지자 안나, 눅 2:36-38), “부활”에 관한 좋은 소식을 첫 번째로 알린 사람도 “여인”이었다(눅 24:10, 막 16:10,11).
신구약을 막론하고 여인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남자들을 “돕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돕는 자”(help meet)로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신 목적은 “남자를 위해 돕는 것”에 있었다(창 2:18, 고전 11:8,9). 현대의 “돕는 배필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이에 관해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성경 본문이 현숙한 여인을 다루는 잠언 31장이다. 돕는 자는 결코 “방해자”나 “우두머리”가 아니다. 또한 여자의 “바람”은 남편에게 있고 남편은 여자를 “주관”한다(창 3:16).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매사에 복종해야 한다(엡 5:24).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오늘날 진보적인 좌파 성향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이 이런 어리석은 주장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남편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외출할 때는 머리에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남자가 그녀를 강간한다 해도 그는 처벌받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과 이혼할래.”라고 그저 말로만 세 번 해도 언제 어떤 이유에서든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 심지어 남편에 의해 이혼당한 여성에게는 자녀들에 대한 어떤 양육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을 존중하고 읽고 사용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세상 어떤 나라에서도 받지 못하는 지위와 권리 및 특권을 누린다. 반면에 성경을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슬람 사회처럼 여성들이 짐이나 나르는 짐승들이 된다. 그들은 노예들이며 그저 성적인 욕구와 번식을 위한 대상이 될 뿐이다. 성경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