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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곁에 서 있는 두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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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3월호>
두 증인의 사역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요한계시록 11장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1장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여는 열쇠와 같고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구약은 또한 신약을 여는 많은 예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11장은 마태복음이 구약과 신약의 과도기적인 책이고 사도행전이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과도기적 상황임을 입증해 주며 히브리서가 교회 시대와 환란기의 과도기적인 책임을 시사해 준다.성경을 세대적 전천년 해석 체계로 보지 못하면 성경은 닫혀진 책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많은 성경 학자들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두 증인에 대한 부분에서도 많은 오류를 남기게 된다. 성경은 두 증인이 두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며 온 땅의 주 곁에 서 있는 자들이고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을 하며 목베임당해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학자들은 이들을 상징적인 존재로 보고 증거하는 교회로 일축하는 억측을 내놓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방침에 따른 세대적 진리를 통하여 여러 학자들(후천년·무천년주의자들을 포함한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의 잘못된 오류들을 바로잡게 될 것이다.
우선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들을 들어 보자.
“두 증인은 상징적인 인물들로 증거하는 교회를 대표한다.”(번 포이쓰레쓰의 요한계시록맥잡기, 크리스찬출판사, pp.136-137), “두 증인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때 예언적 사역을 위해 부름받은 교회들을 위한 본보기이다.”(리차드 보쿰의 요한계시록연구, 한들출판사, p.212), “고난받는 교회 두 증인 - 이는 박해받을 때의 교회의 숫자가 적다는 뜻으로 문자적 둘이 아니라 증거하는 적은 교회를 의미한다.”(서달석의 역사로보는요한계시록강해, 생명의서신, p.239),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의 심령을 계승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증인인 교회를 가리킨다.”(박수암의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서회, p.183) “두 증인에 대한 가장 건전한 해석은 모세 같은, 엘리야 같은, 요한 같은 정신을 갖고 모인 교회로 해석하는 것이다. 두 증인은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이다.”(지용수의 역사의주인이신그리스도, 쿰란출판사, p.381) 이외에도 안식일교회(요한계시록연구, p.101)는 두 증인이 하나님의 말씀 곧 구약과 신약을 가리킨다고 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구약이 첫째 증인이고 탈무드가 둘째 증인이라고 믿고 있으며 또한 와치만 니(Watchman Nee)는 그의 계시록연구(p.111)에서 “죽지 않았던 사람은 오직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이기에 이들이 두 증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로버트슨(Robertson)은 원어연구해석(p.277)에서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잘 알려진 인물 같으나 실제로 두 인물이 누구인가를 결정할 도리는 없다.”라고 엉터리 주석을 내놓고 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을 통하여 상고해 보도록 하자.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마흔두 달)을 예언하는데 이 기간은 대환란의 마지막 삼 년 반의 기간이다. 이때 교회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통하여 이미 휴거되어 셋째 하늘로 옮기워진 후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첫째 부활에 대한 오해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을 크게 세 부류로 분류하고 있는데 첫째 부류는 구약 성도들의 첫열매들(그리스도와 함께)로서의 부활이며 두 번째는 교회 시대 끝에 휴거되는 신약 성도들의 부활(추수)이고 세 번째 부류는 대환란 끝부분에서 부활하는 환란 성도들(이삭줍기)이다. 요한계시록 20:4,5에서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고 한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목베임을 당한다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짐승(적그리스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여 목베임을 당할 정도로 열심을 다해 주님을 증거하면 첫째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도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성경은 첫 번째로 교리를 위하여 쓰여졌다(딤후 3:16). 그렇기에 기록된 대로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일차적이라 할 수 있다.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는 휴거되기에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의 유형을 언급한 요한계시록 3장 이후에는 교회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렇기에 두 증인에 대해 그들이 교회라고 지칭하는 대부분의 견해는 성경을 제대로 상고하지 않는 타락한 죄인들의 발상이다.
『이들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촛대니라』(계 11:4).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찾아가 보자. 『“두 금관으로 스스로 금 기름을 쏟아 내는 이 두 올리브 나무 가지들은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말하기를 “이들은 두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니, 온 땅의 주 곁에 서 있는 자들이니라.” 하더라』(슼 4:12-14). 두 증인은 책들이 아니며 상징적인 존재도 아니다. 성경은 이들이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며 주 곁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또한 『이들에게는 하늘을 닫는 권세가 있어서 그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 비를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도 있어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6)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성정에 속한 사람이지만,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삼 년 육 개월이나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약 5:17). 『길르앗 거민에 속한 티셉인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앞에 서서 섬기는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거니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이슬도 내리지 않겠고 비도 오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첫째 증인은 조금도 의심없이 엘리야인데 그는 기름부음 받았으며 예언하는 날 동안 비를 오지 않게 하는 권세가 있고 그의 입에서는 불이 나와 그의 원수들을 불로 살랐으며(계 11:5, 왕하 1:10,12, 왕상 18:38-40) 온 땅의 주 앞에 서 있었다(왕상 17:1). 두 번째 증인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가 주어진 자인데 그는 모세이다. 그는 여수룬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신 33:5) 출애굽 때 첫 번째 재앙으로서 나일 강을 피로 물들게 하였다(출 9:20,21).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 옆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한 바위 위에 설지니라』(출 33:21). 이와 같이 모세 또한 주 앞에 선 자였고 그의 입에서도 불이 나와 그를 대적했던 자들을 불로 멸하였다(민 16:35).
혹자는(와치만 니의 경우) 두 증인이 에녹과 엘리야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히 9:27)라는 말씀 때문에 에녹과 엘리야는 죽지 않고 휴거되었기에 이 땅에 돌아와 한 번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녹은 살아서 주님 오실 때 휴거되는 신약 성도의 모형이기에 그가 다시 땅으로 와서 죽는다면 성경의 예언과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 되기에 안 된다. 그리고 성경에는 두 번 죽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예를 들어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과 엘리사가 살린 수넴여인의 아들, 예수님께서 살리신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 바울이 살린 유두고, 베드로가 살린 도르카 등 이들 모두는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다시 죽었다. 이들은 히브리서 9:27의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 구절의 예외가 되는 사람들 중에 교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에녹과 모세이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사람으로 환란 전에 휴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이다. 모세는 두 번 죽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주의 종 모세가 주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으니라. 주께서 그를 벧프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하셨으니 오늘까지 그의 묘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신 34:5,6). 모세는 죽었지만 그의 몸은 땅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하였다. 그래서 모세의 몸이 미카엘과 마귀의 논쟁 대상이 되었다(유 9). 모세는 대환란 때 증인으로 와서 증거하다가 목베임당해 죽지만 환란 성도들의 부활의 유형으로 다시 살아서 휴거될 것이다(계 11:12).
마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림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모형으로 보여 주셨는데 양 옆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있었다. 이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되는 인물임을 시사해 준다. 변형되신 주님의 모습은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희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재림 때 『그의 머리와 머리털은 눈처럼 희어서 양모처럼 하얗고, 그의 눈은 불꽃 같더라. 그의 발은 용광로에 달군 듯한 빛나는 놋 같고』(계 1:14,15)의 주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주님께서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몇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마 16:28)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영광의 재림의 모습으로 변형산에 나타나신 것이다. 인자가 그의 왕국에 오시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시는 영광스러운 모습이다. 이 위엄의 목격자들 중 한 사람인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은 교묘하게 꾸며 낸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라』(벧후 1:16)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 대환란 기간 중에 지상에 내려오게 될 일은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키에 이미 예언되어 있던 일이다. 『너희는...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말 4:4-6).
이 부분에서 우리는 침례인 요한에 대해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변형산 사건 이후 제자들이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마 17:10)라고 주님께 묻는다. 이에 대해 주님은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마 17:11,12)고 대답하셨는데 그때서야 제자들은 주님께서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달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제자들은 주님의 재림의 영광의 모습을 보고 구약에서 오기로 예언된 엘리야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신다. 침례인 요한에 관한 기록을 보자. 『이것이 그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니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네 면전에 보내노니, 그가 내 앞서 너의 길을 예비하리라.’』(마 11:10). 이 말씀은 말라키 3:1을 인용한 말씀이다. 침례인 요한은 선지자 엘리야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선지자이다. 그의 임무는 왕이 오시기에 앞서 왕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왕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마 3:2). 자, 성경 전체의 주제가 왕국(천국)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볼 때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세대를 나누어 보자.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으로 탈취되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 모든 선지서와 율법은 요한까지 예언한 것이라』(마 11:12,13). 이 구절을 통해 모든 선지서와 율법은 요한까지임을 알 수 있다. 즉 이때를 천국 예언 기간이라 한다. 누가복음 16:16에서도 『율법과 선지서들은 요한까지요』라고 한 세대를 규정짓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천국에 대한 예언이 주어진 것이다. 그 다음은 천국에 대한 첫 번째 과도기적 시기가 주어지는데 그때가 바로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마 11:12)라고 기록된 부분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기간을 구분하지 못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엄연하게 구분되는 한 세대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은 천국이 폭력으로 탈취되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차지하는 때라고 말씀한다. 이 부분에 대해 사람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천국을 “복음의 확장 개념”으로 잘못 적용하고 있다.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즉 이 기간은 침례인 요한 때로부터 십자가 사건까지로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왕으로 거부당하시고 천국이 불법자들에 의해 폭력으로 탈취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절대로 긍정적인 개념이 아닌데 여기서 불법자들이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율법사들)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 버려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마 23:13)고 힐책하셨다. 만약 그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였다면 주의 날과 천국이 임했을 것이고 침례인 요한은 엘리야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약속된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마 11:14)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연기됨으로 인해 침례인 요한은 엘리야가 되지 못했기에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인 대환란 기간에 두 증인 중의 한 증인으로 와야만 하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두 번째 과도기적인 시기는 천국의 신비라고 불리는 기간으로 천국이 감추어진 교회 시대를 일컫는다. 이는 『율법과 선지서들은 요한까지요, 그후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 안으로 밀려 들어가느니라.』(눅 16:16)고 한 말씀에서 “그후로는”이라고 언급된 기간으로서 현재의 교회 시대를 의미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 기간은 주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재림하셔서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천국을 이루실 기간(천국 현현)인데 대환란이 끝나고 민족들의 심판이 있은 후에 이루어질 천년왕국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벧전 1:11) 사이의 기간을 알지 못한 채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단지 한 번의 오심으로만 이해했었다. 여기에 침례인 요한과 엘리야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침례인 요한은 조건적인 엘리야였다. 그래서 말라키 4:6의 말씀을 성취시킨 침례인 요한에 대해 신약에 와서는 『그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을 예비시키리라.』(눅 1:17)고 말씀한다. 침례인 요한은 마태복음 11장에서 감옥에 갇혀 있다가 14장에서 헤롯에 의해 목베임당해 죽는데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요한은 엘리야의 유형인데 이는 엘리야도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목베임당해 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세와 엘리야는 하늘을 닫는 권세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를 가지고 삼 년 반 동안 예언하다가 증거를 끝마칠 즈음에 죽임을 당하는데 그들의 죽은 몸은 사흘 반 동안 예루살렘 도성에서 수치를 당하다가 사흘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영이 들어감으로 인해 떨어져 나갔던 그들의 목이 다시 몸에 붙어 그들의 발로 서게 될 텐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심히 놀라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원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환란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예표를 이룰 것이다. 이 일은 환란의 끝부분인 일곱째 나팔이 일어나는 상황 가운데 일어날 것이다.
이제까지 두 증인에 대한 부분을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많은 학자들이 오류를 범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바른 성경을 상고하지 않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말씀하신다.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이런 일들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세대를 구분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초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 대한 부분은 성경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계획을 무시하고 성경 전체를 영적으로 교회 시대에 접목하여 적용할 때 많은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