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인생의 결론 (전도서 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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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1월호>

성경은 거듭난 사람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깨우침을 얻는 진리입니다. 성경에는 영감이란 단어가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한 번씩 나옵니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도다』(욥 32: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에 관해서 인간에게 알게 해주셨고, 또한 세상과 인간과 죄와 죽음과 지옥과 마귀와 다가올 새 세상과 어떻게 해야 거기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새 생명을 얻는가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성경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원인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났다 하더라도 말씀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알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알려고 하고 믿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영감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6권의 성경 속에서 전도서란 책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이 책을 기록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었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극단적 물질주의와 쾌락에 자신을 맡겨 온갖 것들을 체험하고 나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글로 쓰게 하신 책입니다. 그가 59년의 생애를 그렇게 죄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결론이 무엇인지 쓰게 하셨는데 그 결론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사람은 꼭 어떤 일을 체험하거나 경험해 보고서야 교훈을 얻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살았던 삶의 과정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는 자들은 지상에서의 삶이 죽으면 끝인 줄 압니다. 솔로몬은 인생에 대한 그러한 관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쳐놓고서는 인생을 알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계시를 제쳐놓고서는 죽음 이후의 생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사후의 생을 알 수 없습니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I.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라(13절).
생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사람은 되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사는 것은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목표를 설정하고 산다 해도 그 목표가 진리와 무관한 것이라면 성취를 해도 하나님으로부터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상 경기에서 자기 레인으로 달리지 않았다면 실격입니다. 방향 설정이 잘못된 사람들은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낭비할 만큼 길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한 번쯤 실수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원하지 않은 4년제 대학에 갔다가 졸업하고 나서 다시 2년제 전문대학에 들어가 보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어 백수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술이나 기술도 연마한 후에 결정체가 나옵니다. 수고 없이 나올 수 있는 결정체는 모두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노르웨이의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이었습니다. 그는 해상 약 25,000km를 건너 개썰매로 베이스 캠프를 출발한 지 55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했습니다(1911.12.14). 그의 노고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시기에 영국의 해군 중위 스콧(Robert F. Scott, 1868-1912)도 천신만고 끝에 극점에 도달했지만(1912.1.18) 아문센보다 35일이 늦었습니다. 1912년 3월 29일 그는 귀로에서 악천후로 동행자 4명과 함께 동사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고생을 하고서도 한 사람은 목적을 달성했지만 스콧은 실패했습니다. 잘못된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5에서는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양우리에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설정해 놓은 기준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자연인들은 성경의 절대성을 무시하고 허물어 버리려 합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술과 벗하며 즐거워하다가 개처럼 죽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운에 맡기고 삽니다. 자기 직관과 본능에 따라 살며 지위, 재산, 쾌락을 붙들기 위해 양심을 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시치미 떼며 계속해서 양심을 더럽히고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조언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삶의 실상입니다.
『그때 내가 하나님의 모든 일을 보았노니, 해 아래서 행해진 일을 사람이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라. 이는 비록 사람이 그것을 찾아내려고 수고할지라도 찾지 못하리니, 정녕 현명한 자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전 8:17).
전도서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신 자리, 그분이 승인하지 않는 일들은 모두 쓸모없고 헛되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기적인 삶, 수고와 노력, 야망, 쾌락에 몸을 내맡기는 것, 유명하게 되는 것이 헛되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기가 세운 기준으로 사는 삶은 자신을 만족시킬 뿐, 주님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갖지 못한 것을 탐내는 것, 돈을 축적하려고 애쓰는 것, 미래를 위해 계획하는 것, 세상의 지혜, 미래에 대한 허무한 낙관주의가 헛되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진리도 아니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무익할 뿐입니다. 인생은 부정적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 가운데 이것이 한 가지 악이니, 곧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이 있다는 것이며, 또 정녕,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간다는 것이라』(전 9:3).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죽기 싫어할 뿐, 죽음에는 대비하지 않고 삽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솔로몬의 간증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II.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13절)
거듭나지 않은 세상 학자들이 내놓은 것으로, 역사를 바꾼 책 다섯 권이 있다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그것들인데, 이 책들 중에는 성경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관장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성경적 진리를 죽도록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날 수 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혐오합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저항하며 지옥으로 가도 좋다고 말합니다. 명예를 위해 거짓말도 불사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 부정과 불법도 서슴없이 저지르며 쾌락을 위해 성형을 하고 속임수를 쓰며, 온갖 추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위의 다섯 가지 책들이 무엇으로 세상을 바꿔놓았습니까? 누가 그따위 소리를 했습니까? <자본론>은 공산주의를 태동시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고 고통받게 했습니까? <국부론>은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으로 지구가 오염되었고 오존층이 파괴되어서 이제야 뒤늦게 녹색산업을 부르짖게 했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혈세가 쏟아 부어질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 모를 병들로 고통받다가 죽어갔습니까! <종의 기원>은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나왔다고 믿게 하는 현대 교육을 낳았습니다. 많은 미친 사람들을 양산했고 사회가 미쳐 버렸습니다. 전교조는 진화론으로 우리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 해방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그 전까지는 많은 부자들이 흑인 노예를 두지 않았습니다.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했습니다. <침묵의 봄>은 생태계를 파괴시키면 재앙은 인간에게 돌아온다고 했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론은 이해하지만, 인류 전체가 지킬 수는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책을 읽고 살았다 해도 사람들은 죽습니다. 소망 없이 살다가 개처럼 죽어갑니다. 역사를 바꾼 책, 인생을 바꾸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그것이 드러났으니, 그는 죽음을 폐기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히셨느니라』(딤후 1:10). 인류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뒤엎는 책은 성경뿐입니다. 성경은 죽어가는 인간에게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죽음과 심판의 원인인 죄를 제거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기를 원합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영안실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서도 살기를 원합니다. 심지어는 굶고 먹을 것이 없어도 살아남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는 책입니다. 믿고 받아들이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불멸에 대한 욕망을 종교, 과학, 철학, 경제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역사를 바꾸는 5가지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그분이 성경으로 이 사실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생명을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 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그는 죽음을 폐기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히셨느니라』(딤후 1:10).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사망이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니,” 사람으로 영원히 살게 하는 길을 가르쳐 준 책이 성경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III.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와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심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총 32권인데 총 3만 2천 3백 페이지로, 4천 명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책 속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해 주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세계는 매년 노벨상에 관심을 모읍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돈을 벌고 이 상을 제정했으나 63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혼인도 못했습니다. 그의 비서 주트너를 사랑했으나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평화운동가였는데 수학가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에는 수학상이 없습니다. 그 대신 그녀를 위해 노벨평화상을 제정했던 것입니다. 노벨상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까?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까? 기네스북은 1955년에 기네스라는 맥주회사에서 발행한 기록집인데 여기에 기록을 올리려고 사람들은 갖은 애를 씁니다. 거기에 오르면 생명책에 오르는 것입니까?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솔로몬은 60년 가까이 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를 누리고, 부를 지녔고(솔로몬 때에 은은 흙 정도로 여겨졌다), 1천 명의 아내를 두고 가장 많은 쾌락을 누렸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 부문에서 기네스북에 올랐을 것이며 경쟁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상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언, 곧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 선언합니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성경으로 관장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이 있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이유는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반드시 너희의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임을 알라』(민 32:23). 『내가 너희 마음속에 생기는 일들을 일일이 아노라』(겔 11:5). 『사람이 말하는 어떠한 빈말이라도 심판 날에는 그에 관하여 해명하게 되리라』(마 12:36).
현대인들은 잘못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삽니다. 자기들의 지식이 옳은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할지라도 성경대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할 줄 알고 미리 답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0-24).

결론적으로
믿는다는 말의 참 뜻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라』(요 8:47).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또 우리도 그에게 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 정하리라』(요 14:23).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믿겠다고 교회를 찾습니다. 이 나라에도 9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교회로 갑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분 앞에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믿는다는 말을 쓰는 것으로는 믿음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멋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체하는 것입니다. 이 면에서는 솔로몬처럼 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솔로몬이 내놓은 전체 일의 결론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의 조언대로 살고 있습니까?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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